최근 수정 시각 : 2021-11-17 05:25:37

설성삼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족보명 설정섭(薛正燮)
성삼(成三)
본관 순창 설씨[1]
출생 1878년 7월 15일
전라도 순창군 풍남면 소촌리
(현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삼촌리 소촌마을)
사망 1941년 2월 18일
미상
묘소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삼촌리 소촌마을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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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설성삼은 1878년 전라도 순창군 풍남면 소촌리(현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삼촌리 소촌마을)에서 아버지 설기흥(薛基興, 1845. 4. 19 ~ 1913. 2. 3)과 어머니 도강 김씨(1841. 9. 24 ~ 1906. 8. 28) 김계규(金溪奎)의 딸 사이의 6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9촌 삼종숙(三從叔) 설기발(薛基發, 1848. 9. 2 ~ 1898. 6. 5)에 입양되었다.

그는 1908년 9월 21일 의병 20명을 이끌고 전라북도 옥과군 화면 화대리(현 곡성군 오산면 봉동리 화대마을)에 거주하는 김판금(金判金)의 집에서 군자금을 요구하다가 김판금이 거절하자 그의 집 헛간을 소각했다. 이에 옥과주재소 순사 및 옥과주재소 소속 수비대 하사 이하 4명이 이튿날인 9월 22일부터 그를 추적했다. 이에 설성삼과 휘하 의병들은 산중으로 탈출하여 옥과군 겸면(현 곡성군 겸면) 운교리에서 식사를 준비하다가 일본군 및 일본 경찰들이 조직한 추적대의 공격을 받고 교전했으나 휘하 의병 8명이 전사했다. 설성삼은 탈출했지만 1909년경 체포되었다.

이후 1909년 3월 1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강도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4월 24일 기각되었고 5월 6일 상고도 기각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1913년 2월 1일 형집행이 면제되어 출옥했다. 그 뒤 1941년 2월 18일 별세했다고 하는데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설성삼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문숙공파 59세 섭(燮)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