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21 21:58:53

서단파

파일:서단파.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서상덕(徐相悳)
자 / 호 윤오(潤吾) / 단파(檀坡)
본관 대구 서씨[1]
출생 1891년 3월 18일
충청도 목천현 수신면 해정리
(현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해정리)
사망 1937년 12월 8일
중화민국 장쑤성 난징시
묘소 미상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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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서단파는 1891년 3월 18일 충청도 목천현 수신면(현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해정리에서 아버지 서철순(徐喆淳, 1845 ~ 1900. 8. 6)[2]과 어머니 신안 주씨 주만동(朱晩東)의 딸 사이의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서철순은 1870년( 고종 7) 식년시 진사시에 3등 108위로 입격하여 1887년 영회원 수봉관(永懷園守奉官:종9품), 1889년 현륭원 참봉( 顯隆園參奉:종9품), 1900년 의릉 참봉( 懿陵參奉:종9품), 1902년 중추원 의관(中樞院議官) 등을 역임했다. 조부 서영보(徐穎輔, 1823. 9. 14 ~ 1882. 2. 25)는 1882년 부사용(副司勇:종9품)과 훈련원 능마아 낭청(訓鍊院能麽兒郞廳:종9품) 등 무관직을 지냈다.

그는 일찍이 북간도로 망명했고, 1914년 국내로 잠입해 연락 활동을 맡았다가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검거되었다. 이후 출소한 그는 1920년 상하이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했고, 중국 내 주요 지역을 왕래하면서 독립운동단체 조직과 동지 규합에 힘을 보탰다.

1926년 중국 광동 19로군에 고문 자격으로 입단했고, 1927년 국민혁명군이 상하이를 장악하는 데 가담했으며, 1930년 국민혁명군 중앙군 육군 제87사단 군의처장(대령)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중일전쟁 중이던 1937년 12월 3일 난징 전투에 참가했다가 12월 8일에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서단파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도위공(都尉公) 경주(景霌)파. 24세 상(相) 항렬. 서청원 전 국회의원과 같은 파이다. [2] 대구서씨세보 7권 289쪽에는 1847년 2월 22일생으로 등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