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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형 루이 3세이고, 오른쪽이 샤를로망 2세이다. |
|
이름 | 샤를로망(Carloman) |
출생 | 864년 / 866년경 |
사망 | 884년 12월 12일 (향년 17~20세) |
생 드니 | |
재위기간 | 879년 ~ 884년 12월 12일 |
1. 개요
라틴어: Carlomannus II (카를로마누스 2세)프랑스어: Carloman II (샤를로망 2세)
서프랑크 왕국 카롤루스 왕조의 제4대 왕으로 카롤루스 대제의 현손이었다.
같은 이름의 샤를로망 1세는 카롤루스 대제의 동생이었던 '네우스트리아의 카를로마누스'로, 죽기 이전 네우스트리아와 부르고뉴, 알레만니아, 아키텐, 프로방스의 왕이었다. 그는 평생을 형 카롤루스와 대립하며 지냈으나 형을 꺾지 못하고 병사하면서 프랑크 전체의 왕이 되지는 못했으나 넘버링은 이어졌다.
2. 생애
'말더듬이왕' 루이 2세(Ludovicus II Balbus)의 아들로 태어났다. 짧은 치세 끝에 루이 2세가 승하한 이후, 샤를로망 2세는 친형 루이 3세와 함께 공동 국왕으로 즉위했다.이듬해인 880년 아미앵에서 영토를 분할해 남부의 아키텐과 셉티마니아, 부르고뉴를 차지했다. 882년 형 루이 3세가 미녀를 쫓다가 낙마해 두개골 골절로 급사하자(...) 형이 다스리던 북부의 네우스트리아와 일드프랑스도 합쳐 서프랑크 왕국의 단독 왕이 되었다.
왕이 된 이후 노르드계 바이킹 및 서프랑크의 영토를 탐내는 동프랑크 왕국의 '청년왕' 루트비히 3세(Ludwig III)의 침공을 받았다. 바이킹에 대해선 수차례 대승을 거둬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냈고, 청년왕 루트비히 3세와의 전쟁에선 패배해 항복을 하기도 했다.
884년 겨울, 오트노르망디의 레장들리(Les Andelys)에서 사냥을 하다가 멧돼지의 공격을 받고 낙마했다. 그런데 이때 시종이었던 베르톨드가 실수로 샤를로망 2세의 다리를 창으로 찔렀고(...) 며칠 뒤 결국 상처가 덧나 승하했다.[1] 사망 당시 적자가 없었고[2], 배다른 동생인 '단순왕' 샤를 3세도 나이가 어렸으므로 동프랑크 왕국의 '비만왕' 카를 3세가 서프랑크 왕국의 왕위를 계승했다. 비만왕 카를 3세는 서프랑크의 공식 왕계로 인정하지 않는 견해가 많다.
형 루이 3세와 사이가 좋은 편이었는지 그들을 묘사한 주화나 초상화를 보면 위의 초상화처럼 같이 나온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