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샤를 세뇨보스(Charles Seignobos) |
출생 | 1854년 9월 10일, 라마스트르 |
사망 | 1942년 4월 24일, 플루바즈라넥 |
1. 개요
샤를 세뇨보스는 프랑스 실증사학(Ecole méthodique)의 대부이자 중세, 근세사학자다.2. 생애
1854년에 라마스트르의 개신교 정치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샤를 앙드레 세뇨보스로, 아르데쉬 공화파 시의원이었다. 에꼴 노르말 쉬페리외르에 입학해서, 교수임용고시(Agrégation)을 수석으로 통과한다. 1877년에서 1879년 사이에 독일 괴팅겐, 베를린, 뮌헨, 라이프치히로 여행을 갔고, 1879년부터 프랑스로 돌아와 디종 대학에서 교편을 잡는다. 1882년에 중세 부르고뉴의 봉건제도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따고, 1883년에 소르본 대학교에서 유럽 제도들에 대한 자유 수업을 연다.1898년에 프랑스 역사학계의 거물이자 근세사학자 에르네스트 라비스의 후임으로 들어가고, 1904년에 통사 교수로 임명된다. 1907년에 역사 방법론을 가르치고, 1921년에는 근세 정치사 교수가 된다. 프랑스 실증사학의 얼굴마담으로써, 사건들을 과학적으로, 엄정하게 연구하고, 증명할 수 없는 인과관계는 언급하지 않는 방법론을 사용했다. 경제사, 사회사, 심리사는 정치사에 비해 객관적으로 연구하기 어려우니 연구를 포기해야 한다고 했다. 제자로는 같은 연구방법을 계승한 퓌스텔 드쿨랑주가 있었다.
아날 학파의 뤼시앵 페브르는 그를 실증사학 문제점들의 원흉으로 보았으며, 집중적으로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