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09-21 02:46:15

살라미야

1. 개요

아랍어 سلمية
영어 Salamiyah

시리아 중부 하마 주의 도시. 하마에서 동남쪽으로 15km, 홈스에선 동북쪽으로 25km 떨어진 평지에 위치한 인구 7만의 도시이다. 인접한 두 대도시 외에도 동북으로 라카, 동남으로 팔미라 등과도 이어져 옛날부터 여러 교통로가 교차하는 요충지였다. 9세기 일곱이맘파의 '숨겨진' 이맘들이 거점으로 삼았으며 그들이 결국 파티마 왕조를 세우고 수도 카이로를 건설하기에 살라미야의 별명은 '카이로의 어머니'이다.

다만 도시는 903년 카르마트의 파괴를 겪은 후 쇠락하였고 18세기 무렵 버려졌다. 그러던 1849년 일곱이맘파 무슬림들이 이주해 재건되었으며 현재까지도 도시는 주민의 절반을 차지하는 니자리 이스마일리와 타이야비 무스타일리 등 시아파의 중심지이다. 시리아의 이스마일리 쉬아 위원회 및 니자리 이맘인 아가 칸 4세의 부친 알리 칸의 영묘 등이 시내에 위치한다.

2. 역사

파일:Shmemis1.jpg
홈스의 에메사 왕국이 지은 셰메미스 성채. 현재 시내에서 서북쪽으로 3km 정도 떨어져 있다.

기원전 3500년부터 일대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상고대에는 수메르인, 아모리인, 아람인이 연이어 거주하였고 기원전 720년 아시리아 제국이 도시를 파괴한다. 이후 재건된 도시에는 아랍계 나바테아 인들이 거주하였고 로마 제국기에는 에메사 왕국이 지배하였다. 이후 동로마 제국기에 살라미야는 큰 도시이자 기독교도 비율이 높아 에메사와 독자적인 대주교가 있을 정도였는데 7세기 초반 사산 제국의 침공 시에 이란 장수 키스라 이브라위즈에 의해 두번째로 파괴되었다. 그후 한세기 이상 버려졌던 도시는 압바스 왕조의 홈스 총독이던 압둘라 이븐 살레 이븐 알리 알 압바시에 의해 재건되었고 하심 가문이 정착하였다. (754년) 한편 압둘라의 아들 무함마드는 살라미야를 무역 중심지로 성장시켰다.

한편 그무렵 일곱이맘파의 전승에 따르면 이스마일 이븐 자파르 (6대 이맘 자파르의 요절한 장남, 7대 이맘 무함마드의 부친)가 이곳에 매장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서기 800년경부터 일곱이맘파 (이스마일리)는 살라미야를 본부로 삼아 활동했으며 각지에 다이 (선교사)들을 파견해 세력을 넓혔다. 882년 미래의 압둘라 알 마흐디인 사이드가 후제스탄에서 당도하였고 그는 899년 스스로 마흐디라 선언, 무함마드 이븐 이스마일의 재림을 믿던 카르마트 파의 이탈로 이어졌다. 903년 야흐야 이븐 지크라와이의 카르마트 군대가 살라미야를 습격해 이맘 가문을 학살하였고 이에 압둘라는 도시에서 태어난 아들 알 카임과 이집트를 거쳐 이프리키야로 향하는 여정 끝에 파티마 조를 세우게 된다.

카르마트의 점령 이후 살라미야는 작은 마을로 쇠퇴하였고 홈스의 아미르에게 지배되었다. 12세기엔 십자군 영토였다가 아이유브 왕조에게 점령되었다. 1247년 홈스의 아이유브 왕가 아미르 알 아슈라프 무사는 살라미야를 이집트의 술탄에게 할양하였다. 이듬해 알레포 (할랍)의 아미르 유수프가 홈스를 포위하자 이집트 군이 살라미야를 중심으로 그에 대적하기도 하였다. 이후 도시는 하마의 아미르가 지배한 것으로 보이는데 1260년 1차 홈스 전투에서 패배한 몽골군이 이곳에 재집결한 후 알레포로 철수하였다. 같은해 맘루크 술탄 바이바르스는 자신에게 복속한 베두인 부족장 ('아미르 알 아랍') 샤라프 앗 딘 이사 이븐 무한나에게 도시를 하사하였다.

이후 오스만 제국기에 중앙 통제력이 약화되자 살라미야는 베두인들의 공격에 시달리다 결국 버려졌다. 그러던 1849년 7월 오스만 제국의 압둘 하미드 2세의 칙령으로 살라미야로의 이스마일리 재정착이 승인되었다. 이에 시리아 북부 카드무스의 아미르 이스마일 이븐 무함마드와 마시아프의 이스마일리 등 16개 가족들이 이주하였다. 그후 1919년까지 이스마일파의 이주가 이어졌고 현재까지도 아랍권에서 이스마일파 무슬림이 가장 많은 도시이다. 20세기 중반에 들어서야 수니파 사원이 세워졌고 카드무스의 열두이맘파도 이주해오며 그들의 사원도 설립되었다. 1991년엔 예멘의 다우디 보하라 계열 이스마일리 참배객들이 이맘 이스마일 사원을 세웠는데 현재는 수니파 사원으로 쓰인다고 한다.

시리아 내전기에 살라미야는 반군이 장악한 서북쪽 대신 하마/홈스/다마스쿠스에서 알레포로 향하는 거점으로서 중요한 요충지였고 2017년 ISIS의 공세를 이겨내었다. 다만 2018년 시리아 정부군이 중북부 일대를 평정하며 살라미야는 이름처럼 후방의 평화를 누리고 있다. 알라위 지역과 함께 내전의 참화를 거의 겪지 않은 동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