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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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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관련 문서

1. 개요

고려에는 중앙 고관 출신이 자기 고향의 사심관이 되게 하는 제도가 있었다. 목적은 지방 호족들의 통제로, 얼핏 보면 호족들을 밀어주는 제도 같아 보이지만 사심관이 다스리는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날 경우 명분을 세워 숙청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견제 제도이다. 사심관은 부호장 이하의 향리를 임명할 수 있었으며 호장에 대한 추천권이 있었다.

최초의 사심관은 신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 김부(金傅)로, 경주에 부임해 주변 일대를 담당했다. 고려가 망할 무렵까지도 신라 타령을 하던 동네[1]에 신라의 마지막 왕을 딱 꽂아준 인선은 사심관 제도의 저의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다.

충선왕 대에 폐지되었다.

2. 관련 문서



[1] 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지역 유지의 자치가 비교적 활성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경주 일대가 신라로부터의 향수에서 벗어나 완전히 한 국가라는 인식으로 편입된 것은 중앙에서 모든 지역에 지방관을 직접 파견하고 전 국토를 직할령으로 삼아 지역 유지의 자치권을 약화시켜 강력한 중앙 집권화를 꾀한 조선 시대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