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브라이언 스티븐 자일스 Brian Stephen Giles |
|
출생 | 1971년 1월 20일 |
캘리포니아 주 엘카혼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80cm / 88kg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입단 | 1989년 드래프트 17라운드 전체 437번 ( CLE) |
소속팀 |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95~1998) 피츠버그 파이리츠 (1999~2003)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2003~2009) |
[clearfix]
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약했던 야구선수.2. 선수 시절
1989년 드래프트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17라운드로 지명되어 프로 생활을 시작한다. 마이너 시절부터 뛰어난 선구안을 바탕으로 한 높은 출루율로 주목을 받았지만, 처음 몇년간은 장타력이 거의 없는 리드오프 스타일에 가까웠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파워가 붙어 두 자릿수 홈런을 때려내기 시작했고, 1995년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어 6경기를 뛰었다.그리고 1996년에서도 메이저에서 51경기를 뛰는 동안 0.355의 높은 타율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줬고 이듬해인 1997년부터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뛰기 시작한다. 하지만 당시 클리블랜드에는 케니 로프턴, 매니 라미레즈, 데이빗 저스티스 등의 스타급 외야수들이 있었기에 자일스의 위치는 애매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1998시즌 종료 후 자일스는 리카르도 린컨과의 맞트레이드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로 이적한다.
피츠버그로 이적한 후, 자일스는 자신의 진가를 과시하는데, 이적 첫 시즌인 1999시즌에 타율 0.315, 39홈런, 115타점의 맹활약을 펼쳤다. 이듬해인 2000시즌에는 타율 0.315, 35홈런, 123타점으로 생애 첫 올스타에 뽑혔고, 2001시즌에서도 타율 0.309, 37홈런, 95타점으로 활약하며 두 번째 올스타 시즌을 맞았다. 2002시즌에서도 타율 0.298, 38홈런, 103타점으로 꾸준한 모습을 보이며 일약 메이저리그 정상급 타자로 군림한다.
출루능력과 장타력을 모두 보유한 그에게 많은 팀들이 군침을 흘렸는데, 2003시즌 중반, 새 홈구장인 펫코 파크의 개장을 앞두고 있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제이슨 베이와 올리버 페레즈를 내주고 자일스를 데려오게 된다.
자일스는 샌디에이고에서도 전매특허인 높은 출루율과 더불어 매년 두 자릿수 홈런을 때려내는 등 준수한 활약을 했지만, 2004년 개장한 펫코 파크가 광활한 외야 덕에 타자들의 지옥으로 드러나며 웬만한 거포들도 홈런 숫자를 까먹는 최악의 투수 친화구장이 되었고, 자일스도 30대 중후반을 향해 달려가면서 벅스 시절만큼의 폭발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이 브라이언 자일스 트레이드에서 해적단으로 향한 대가는 올리버 페레즈가 핵심이고 제이슨 베이는 겉절이나 다름없었는데, 오히려 베이가 해적단의 슈퍼스타로 컸고 올리버 페레즈는 2004년 외에는 성적이 바닥쳐버렸으니 결국 파드리스는 케빈 타워스 단장이 데이브 리틀필드에게 패배한 최악의 흑역사로 기록되었다.
이후 2008년에 전 약혼녀를 폭행한 혐의로 거액의 소송에 휘말리는 등, 한 차례 구설수에 오른 그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까지 말썽을 일으키면서 2009시즌에 61경기 출장, 타율 0.191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게 된다. 결국 시즌 후 파드리스에서 나오게 되었고, 2010시즌을 앞두고 LA 다저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하며 부활을 노렸으나 무릎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으면서 결국 은퇴를 선언한다.
여담으로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라운드 대비 차원에서 대한민국 국대가 파드리스와 연습경기를 가졌는데, 김광현을 상대로 3타수 3안타를 기록했다. 결과는 파드레스의 10대 3 승리.
빅리그 통산 성적은 타율 0.291/출루율 0.400/장타율 0.502, 1897안타, 287홈런, 1078타점.
3. 기타
피츠버그 파이리츠는 2001년 7월 28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전에서 8-2로 끌려가던 9회말 2아웃에서 7점을 내서 9-8로 역전승했는데 이때 자일스가 끝내기 만루 홈런을 쳤다.친동생인 마커스 자일스도 2000년대 초중반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활약하던 메이저리거였다. 100득점을 두 번이나 기록하는 등 A급 2루수이자 공격첨병으로 촉망받았으나 2006년 말 갑작스러운 심장판막증 의심 증상과 기량하락을 겪으면서 끝내 7시즌만에 은퇴하고 만다.[1] 문제는 이 선수 역시 2009년 아내를 폭행한 혐의로 체포됐는데, 이후 파드리스 팬들이 이들의 행적을 문제삼자 구단은 공식적으로 파드리스 동문행사에서 두 사람을 배제한다. 다만 동생인 마커스는 2015년에 터너필드 덕아웃까지 방문한 것으로 보아 브레이브스 측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
은퇴시즌인 2007년에는 형과 함께 파드리스에서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