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Boesmansgat, 영어 이름은 부시맨즈 홀(Bushman's Hole).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는 수심 283m의 싱크홀이다. 입구에는 1994년 사망한 데온 드라이어의 추모판이 있다.2. 1994년 사망사고
1994년, 데온 드라이어(Deon Dreyer, 1974-1994)는 크리스마스 휴가 중에 평소 즐기던 스포츠인 다이빙을 부시맨의 홀에서 하다가 돌아오지 못했다.함께 다이빙을 하던 남아공 동굴 다이버 협회 다이버들은 다이빙을 마치고 상승하던 중에 수심 50m 지점에서 한 명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리더였던 디트로프는 아래쪽의 불빛을 발견하고 불빛을 따라갔으나 그 불빛과의 거리는 멀어졌다. 계속 불빛을 따라갔다간 또 다른 사고가 일어날 것은 불 보듯 뻔했기에 다시 상승했다. 그리고 심해로 사라진 다이버가 데온 드라이어라는 것을 확인한다. 사인은 이산화 탄소 누적으로 인한 블랙아웃으로 추정. 그 후 시신 인양 작업을 하나 실패하며 그의 시신은 해저에 남게되었고, 입구에 그를 추모하는 추모비가 세워졌다.
3. 2005년 사망사고
이 사건에 대해 설명하는 영상 |
2004년,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다이버 데이비드 쇼(David J. Shaw)는 클로즈드 서킷(리브리더 장비)으로 심해를 잠수해 세계 기록을 세우기 위해 다이버들과 부시맨의 홀에서 다이빙을 하는 중 부시맨의 홀 바닥에서 한 잠수복을 입은 시신을 발견했다.
그 시신을 본 데이비드는 그가 1994년 사망한 데온 드라이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인양을 시도했다간 사고가 일어날 위험이 높았기에 일단 철수 한 뒤 시신 인양 계획을 세웠고, 6개월 뒤인 2005년, 친분이 있던 돈 셜리(Don Shirley)를 포함한 다이빙 경력이 오래된 다이버들과 함께 인양 작업을 실시했다.
모든 다이브 계획은 반드시 지켜져야 했으며 한 치의 일탈도 있으면 안 되었다. 데이비드 팀은 모든 돌발상황을 대비하며 시뮬레이션을 하고 계획을 잡았다. 계획상 80분 후 시신이 물 위로 올라올 것이었으며, 유족인 드라이어 부부도 인양 작업을 관전했다.[1]
데이비드는 제일 먼저 잠수 후 약 10분만에 부시맨의 홀 바닥에 도달하여 데온의 시신을 확인하여 수습작업을 시작했고, 이후 돈 셜리가 잠수하여 그의 위쪽에서 대기하며 데이비드를 기다렸으며, 그 위에서는 다른 다이버들이 아래의 다이버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돈이 이상상황을 감지한다. 예상 시간이 지났음에도 데이비드는 올라오지 않았고, 아래에 보이는 그의 손전등 불빛이 움직이지 않았다. 손전등을 놓쳤거나, 데이비드가 움직이지 않는 상황인 것.[2] 바로 위에서 대기하던 돈은 사고가 일어났음을 직감했지만 데이비드의 생사 확인을 위해 내려간다. 그 위에서 대기하던 다이버들 역시 상황이 계획에서 벗어났음을 깨닫고 'D&D(데이비드와 돈)를 만나지 못했음. 아래쪽에 1개의 빛이 보이는지 확실하지 않음.'라는 슬레이트 메세지를 건낸 뒤 지상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대기 백업 다이버 중 한 명인 허베스트(Peter Herbst)가 데이비드와 돈 셜리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잠수했고, 수심 100m가량에서 감압중인 돈 셜리를 발견했다. 허베스트는 돈으로부터 '데이브[3]는 돌아오지 않아(Dave not coming back)'라는 슬레이트 메세지를 받곤 충격을 받은 채 지상으로 올라왔다. 뭍에서 아들을 기다리던 드라이어 부부와 동료 다이버들은 불안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돈 셜리가 상승도중 50m 지점에서 감압을 해야했는데 34m 지점에서 감압을 해버렸다.[4] 그는 의식을 잃기 직전 간신히 로프를 잡았고, 감압이 안 된 몸에 의해 구토가 밀려왔다. 입에 물고 있는 레귤레이터를 빼고 토하고 다시 물고를 반복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로프를 붙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버티며 감압[5]을 했다. 그 후 상승하여 3m 지점에서 2시간 20분이나 감압을 한 후 물 밖으로 나왔다. 돈 셜리는 살아서 나왔지만 잠수병으로 인해 감압챔버에 들어가서 한 달정도 고압산소치료를 받았으며 회복까지 매우 오랜기간이 소요되었다. 그럼에도 평생 약간의 어지러움증을 느껴야하는 영구적인 뇌손상을 입었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다이버인 데이비드가 목숨을 잃은 이상, 데이비드와 데온의 시신을 다른 다이버들이 회수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 판단한 그들은 두 사람의 시신을 인양하지 않고 부시맨의 홀 아래에 두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일주일 후 인양을 위해 설치했던 로프를 회수하러 간 다이버 일행은 놀라운 것을 발견한다. 두 사람의 시신이 부시맨의 홀 밑바닥이 아닌, 엉킨 채로 수심 50m 높이까지 떠올라 있었던 것. 로프를 당겨 두 사람의 시신을 건져올리는 것에 성공한다. 그렇게 데이비드는 자신의 생명을 바쳐가면서 임무를 완수했고 데온은 약 10년 만에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데이비드의 시신에서 회수한 비디오를 동료들이 확인한 결과, 충격적인 장면이 찍혀있었다. 해당 영상 자료.[6]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공개되었는데, 영상 내용에 의하면 데이비드는 데온의 시신에 도달하여 시신 수습을 시도했지만, 시신의 상태가 예상과는 달랐다. 데이비드를 비롯한 이들은 10년간 물속에 있던 데온의 시신이 뼈만 남았을 거라 생각했지만, 데온의 시체는 생각만큼 부패가 되지 않았고, 데이비드가 시신에 손을 대자 젤리와 같은 형태로 흐느적거리며 움직였다. 데이비드는 손전등까지 내려놓는 위험한 행동을 해가면서 어떻게든 잡히지 않는 주검을 수습하는 데까지는 성공하기는 했으나 구명 로프가 엉켜서 그대로 심해에서 사망하게 된 것임이 밝혀졌다. 가위로 로프를 자르려던 시도조차 실패하고 그대로 의식을 잃은 것. 데이비드는 동료에게서 안전을 위해 임무를 과감히 포기할 수 있다고 평가받는 프로였으나 심해에 가라앉은 안타까운 젊은이의 시신을 포기하지 못했고,[7] 극한 상황에서 흐려진 판단력으로 일어난 사고였다. 돈 셜리에 의하면 당시 데이비드는 잠수의 영향으로 인해 마티니 6~7잔을 마신 것과 같을 정도로 의식이 혼미해졌을 것이라고 한다.
2020년 위 사건을 영화화한 <Dave Not Coming Back>이 개봉했다.
[1]
참고로 이집트 다합 블루홀에서의 다이브 사망 사고로 유명했던 유리 립스키가 심도 90m에서 원인불명으로 속수무책으로 사망했다. 그런데 부시맨의 홀은 63빌딩 높이보다 깊은 283m로 그 위험성은 엄청나게 높았다.
[2]
다이버는 절대 장비를 둥둥 떠다니게 두면 안 된다. 그리고 움직임이 없는 다이버는 죽은 다이버로 간주한다. 돈은 어째서인지 가만히 내려져있는 데이비드의 손전등 빛을 보고 문제를 직감했다고 한다.
[3]
데이비드의 애칭
[4]
데이비드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계획에 없던 하강을 진행했는데(30m 정도 더 내려갔다고 한다.), 압력에 못 이겨 컨트롤러가 파괴되었고, 이에 위험을 느낀 돈 셜리가 확인을 포기하고 복귀를 결정했다. 컨트롤러가 파괴되면 산소농도를 수동으로 조정해야 하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겨 자기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한 것으로 추정된다.
[5]
위험한 상황 속에서 더 깊은 심도로 돌아가는 재감압은 응급상황에 최후의 수단으로 시도해야하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기 때문에 돈 셜리는 그 자리에서 고통을 감내하고 벼텨야만 했다.
[6]
데온의 시신은 모자이크 처리 되어 있다. 다만 모자이크 처리되지 않은 영상에서도 잠수복을 입은 상태라 잠수복만 보일 뿐 내부의 시신이 보이지는 않는다.
[7]
시신을 건드리자 고정되어 있던 것이 풀렸기 때문에 포기한다면 다음에는 그 자리에 시신이 없었을 것이다. 즉, 이번에 수습하지 못하면 넓은 부시맨의 홀 다른 지점으로 시신이 흘러가 버리기 때문에 찾기가 거의 불가능해질 것이고, 이것이 무리해서 시신 수습을 강행한 원인 중 하나일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