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완공된 봉천의과대학의 첫 건물. 1990년대 후반에 철거되었다. |
중국어: 奉天医科大学
영어: Mukden Medical College[1][2], Christie Memorial Medical Colleg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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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봉천의과대학은 1912년 중화민국 봉천 (현 중화인민공화국 선양시)에 개교한 의과대학이다. 스코틀랜드의 선교사인 듀갈드 크리스티가 세우고 1923년까지 초대 교장으로 지냈으며 현재는 중국의과대학으로 흡수되었다.2. 역사
듀갈드 크리스티는 에든버러 왕립 의과 대학과 에든버러 왕립 외과 대학에서 수학한 장로회 선교사로 1882년 묵던(심양)으로 의료봉사 차 보내졌다. 심양에 도착한 크리스티 선교사는 그곳에 "성경병원"을 설립했고 1883년-1884년이 되어서 성경병원은 12개의 병상을 갖춘 어엿한 병원이 되었었다. 또한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의 지원을 받은 크리스티는 본국에서 파견된 인원들을 교육시켰다.이에 더 나아가서 1892년 8명의 인원에 5년 과정으로 가르치며 "성경의학원"으로 개원한 것이 추후 봉천의과대학으로 발전한 것의 시초였다. 1892년에서 1910년 사이 심양에서 활동하면서 크리스티 선교사는 이 성경의학원을 더 본격적인 의과대학으로 발전시키고자 하여 영국에서 모금운동을 벌여 5000파운드를 학교 건설 자금에 확충했고 당시 동삼성 총독 서세창 등의 지지로 1911년 학교 건물 완성, 1912년 1월 첫 학생 입학과 1912년 3월에 개교를 하게 된다. 이는 만주 지역 최초의 서구식 고등의과학교이자 최초의 외국인 설립 고등의과학교였다.
크리스티 선교사는 1923년까지 교장으로 제직하며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연합장로교회들 및 만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덴마크인 선교단의 모금 및 지지를 받으며 확장해 나갔다. 다만 학교의 교수들은 대부분 스코틀랜드, 특히 에든버러 출신 의원들이 맡았으며 이 때문인지 봉천의과대학 학위는 1934년 에든버러 대학교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이는 에든버러 대학교 의과대학이 해외 소재 대학교의 학위를 인정하는 첫번째 사례였다.
하지만 만주사변 이후 봉천의과대학의 많은 교수들이 떠나면서 만주국 시절에 봉천의과대학은 사실상 중국인 교수들이 주역이 되었고 자주 일본 당국의 조사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만주국 시기 봉천의과대학에 관한 자료는 다수가 소실되어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일본의 패망 이후 봉천의과대학은 잠시 "요녕의과대학"이라 불리다 1949년 중국의과대학으로 흡수된다. 봉천의과대학의 전신이자 부속병원은 성경병원은 중국의과대학 제2병원이 되었다 현재는 "성경병원"이란 이름으로 다시 환원되어 운영중이다.
3. 기타
- 초대 학장인 듀갈드 크리스티의 아들인 로날드 크리스티가 추후 맥길 대학교 의과대학의 학장이 되었기에 봉천의과대학에 관한 많은 자료는 맥길 대학교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예시
- 종종 만주의과대학과 혼동되기도 한다. 둘 다 같은 봉천에 위치한 의과대학이었으며 일본의 패망 이후 중국의과대학에 흡수되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