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cd0000><colcolor=#ffe400,#ffe300> 소비에트 연방 제9대 내무장관
보리스 카를로비치 푸고 Бори́с Ка́рлович Пу́го Boris Karlovich Pug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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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37년 2월 19일 | ||
소련 러시아 SFSR 칼리닌주 (現 러시아 중앙 연방관구 트베리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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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91년 8월 22일 (향년 54세) | ||
소련 러시아 SFSR 모스크바 | |||
재임기간 | 제9대 내무장관 | ||
1990년 12월 1일 ~ 1991년 8월 22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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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d0000><colcolor=#ffe400,#ffe300> 부모 | 아버지 카를 야노비치 푸고 | |
배우자 | 발렌티나 이바노브나 푸고 | ||
자녀 | 아들 바딤 | ||
학력 | 리가 폴리테크닉 연구소 | ||
종교 | 무종교 (무신론) | ||
소속 정당 |
[[소련 공산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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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무 | 국가보안위원회 | ||
1976년 ~ 1984년 | |||
최종 계급 | 상장 (국가보안위원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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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련의 정치인이자 제9대 내무장관.2. 생애
1937년 2월 19일 칼리닌주(지금의 트베리주)에서 라트비아인이었던 카를 야노비치 푸고의 아들로 태어났다.1960년부터 리가 폴리테크닉 연구소[1]를 졸업하고 1961년 콤소몰에 가입하고 1963년부터 소련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1974년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조사관을 지내다가 동년부터 1975년까지 라트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부서장을 지냈다.
1975년부터 이듬해까지 리가 시위원회 제1서기를 지냈다.
1976년부터 국가보안위원회에 몸담기 시작했으며 1977년부터 라트비아 SSR 국가보안위원회 제1부의장을 역임했다.
1980년에 소장(원스타)로 진급했으며 1984년부터 1988년까지 라트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를 지내다가 1989년에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출, 1990년부터 소련 공산당 중앙통제위원회 의장에 임명되었다.
1990년 12월 1일부터 미하일 고르바초프에 의해 해임된 바딤 바카틴 전임 내무장관의 후임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2.1. 8월 쿠데타
1991년 8월, 당시 KGB 의장이었던 블라디미르 크류치코프에 의해 8월 쿠데타가 발발하면서 수립된 국가비상사태위원회에 합류하였다.그러나 8월 21일 쿠데타가 실패하면서 소련 검찰청에 의해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구성원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고, 다음날에 빅토르 이바넨코 러시아 SFSR KGB 의장, 빅토르 에린 러시아 SFSR 내무부 제1차관, 예브게니 리소프 러시아 SFSR 검찰차장, 그리고리 야블린스키 러시아 SFSR 장관회의 부의장으로 구성된 일행이 체포하러 옥죄어 오자 자택에서 권총으로 자살하였고 아내인 발렌티나의 시신과 함께 화장되어 1992년 2월에 트로에쿠롭스코예 묘지에 안장되었다.
[1]
지금의 리가 기술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