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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복스/활동/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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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국에서의 성과2. 7집 제작 비화, 미국 진출 계획3. 7집 활동4. 미아리복스 파문, 심은진의 탈퇴

1. 태국에서의 성과

베이비복스는 2004년 1월 말 태국의 음악전문채널 '채널 [V] 타일랜드'가 2003년 한 해동안 집계한 '인터내셔널 아티스트 [V] 어워즈'에서 파퓰러 아시안 아티스트 부문 1위에 올랐다. 베이비복스는 대만의 인기그룹 'F4', ' 주걸륜' 등을 제치고 아시아 최고 인기가수의 영광을 안았다. 또 2004년 3월 25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시상식에 참석했는데, 당시 시상식에서는 2003년의 히트곡 <나 어떡해>에 영어제목을 붙인 <What Should I Do?>가 1위를 수상하게 되었다. 2002년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태국에 진출했던 베이비복스는 2004년까지 현지에서 음반 세 장을 발표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태국의 최대 음반사인 GMM을 통해 태국에 진출했던 베이비복스는 현지에서 원빈, 손예진 등과 함께 '한국 붐'을 일으키고 있는 주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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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채널 [V] 타일랜드 어워즈에서

또 태국에서 베이비복스의 춤과 노래를 태국의 한 성인쇼에서 무단 모방한 사건도 벌어졌다. DR뮤직은 2004년 3월 21일 태국 파타야를 방문했다가 그곳의 유명한 트랜스젠더쇼였던 '티파니 쇼' 공연 중 일부가 베이비복스의 안무를 그대로 모방한 것을 발견하고 저작권 침해 여부를 검토했으며, 윤등룡 대표는 "'티파니 쇼'를 보다가 트랜스젠더 5명이 베이비복스의 안무를 그대로 흉내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트랜스젠더 쇼 '티파니 쇼'는 세계적인 관광전문지 '트래블컴 매거진'이 꼽은 세계 10대 쇼 중 하나로 29년의 역사를 갖고 있었으며, '티파니 쇼'는 트랜스젠더들이 미국 프랑스 일본 중국 한국 등의 주요 문화 및 대중 스타들의 이미지를 소재 삼아 10여개의 공연이 연이어 진행되는 형식의 쇼로서, 당시 '티파니 쇼'에 등장했던 베이비복스 '표절 무대'는 부채 춤, 사물놀이 등 한국과 관련 된 공연의 마지막 코너에 등장했다. DR뮤직측은 처음에는 저작권 문제를 거론하려고 했으나 그냥 좋은뜻에서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태국의 유명 골프장에는 베이비복스의 이름을 딴 '베이비복스 홀'이 등장하기도 했다. 베이비복스 소속사 DR뮤직과 인근 방콕CC측은 골프장 내 파3인 10번홀을 베이비복스 홀로 명명하기로 합의했다. 태국의 명문 골프클럽인 방콕CC는 PGA 볼보클래식대회가 열렸던 곳이었다. 최양호씨는 태국 최초의 한국인 골프클럽 대표로, 태국인 회장과 또 다른 태국인 사장을 보좌하고 있었다. 베이비복스 홀은 당시 태국 등 동남아를 중심으로 불기 시작했던 '한류'의 성과물 중 하나였다.

이로써 베이비복스는 외국의 유명 골프클럽에 이름을 새긴 한국 최초의 가수가 됐다. DR뮤직과 방콕 CC는 아일랜드 홀인 10번 홀 정면에 대형 '베이비복스' 입간판을 세우기로 했다. 베이비복스 홀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홀에서 나온 홀인원 골퍼(1년에 4명으로 제한)에게는 베이비복스의 협찬으로 서울-방콕 왕복 항공권을 주고, 연말에 열릴 '베이비복스 회원들의 밤'에도 초청할 예정이었다. 방콕 CC는 이 곳에서 열리는 국제 규모의 골프 행사에 베이비복스 초청해 세계적인 골퍼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이와 함께 방콕에서 열린 베이비복스의 이벤트를 협찬하였다.

당시 대표였던 최양호씨는 "태국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베이비복스가 우리 골프장에서 골프를 배우고 즐긴다면 한국과 태국의 골퍼들에게 큰 화제가 될 것"이라면서 "방콕CC 회장, 골프장 경영진 등과 구체적인 상의를 거쳐 곧 최종 확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방콕 골프계는 한국의 유명 그룹이 골프장에서 스타 마케팅을 벌여 골프대중화에 큰 힘을 실어줄 것을 기대했으며, 베이비복스가 태국 상류층에 강한 인상을 남겨 새로운 형태의 '한류 모델'을 제시할 것으로 전망했다. DR 뮤직의 윤등룡 대표는 "계약이 성사되는 대로 한국의 유명인사와 기자단을 초청해 새로운 형태의 한류 성과물에 대해 알릴 것이다. 베이비복스라는 브랜드가 이제 중국을 넘어 동남아까지 진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 7집 제작 비화, 미국 진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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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데뷔 이래 꾸준히 활동해 오면서 중국, 대만, 베트남, 태국, 홍콩, 일본에 진출해 맹활약을 하며 명실상부한 아시아의 스타로 부상한 베이비복스는, 6집 앨범을 내고 후속 음반에 대한 장르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2003년 11월 미국의 벙갈로 뮤직(2pac, Snoop dog, Dr. dre 등) 에서 수많은 웨스트 코스트 힙합 팀을 제작 및 홍보하고 있던 회사로부터 제의를 받았다.

벙갈로 뮤직의 사장이었던 John이 직접 한국을 방문하여, 2003년에 조사를 해보니 중국, 대만, 홍콩, 태국, 베트남 등등 아시아권 전 차트에 베이비복스라는 팀이 전체 상위권에 순위가 올라있어, 어떤 팀인가 조사를 하여 만나게 된 것이었다. 당시 미국의 음악시장 또한 불황이었고, 미국의 음악형태가 한 앨범의 여러 뮤지션들이 참여하여 피쳐링을 해주고, 서로 도와주면서 음반 불황을 돌파해나가는 때였기 때문에 베이비복스도 그런 형태로 기획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또한 힙합이나 R&B가 기타 아시아 시장에 베이비복스와 함께 진출하는 형태가 좋겠다는 생각과, 반대로 베이비복스의 7집 앨범을 영어버전으로 바꾸어 미국 시장에 라디오 스테이션에 플레이를 하면서 아시아권 가수가 미국 시장에 도전하는 프로모션에 대한 제의도 받았던 것이었다.

베이비복스는 새롭게 선보일 7번째 정규앨범을 위해 수록곡 전곡을 우리말과 영어로 녹음했으며, <Ride West>라는 앨범 타이틀이 말해주듯이 힙합의 본 고장인 미국을 겨낭하고 있는 앨범으로서 해외 뮤지션이 대거 참여하였다. 타이틀 곡 <Xcstasy>에는 웨스트 코스트 힙합의 전설이자 1997년 총기 난사 사건으로 요절한 투팍(2Pac)이 생전 녹음해뒀던 랩핑을 샘플링했고 헐리우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제니퍼 로페즈의 노래 <Play>를 새롭게 리메이크해 수록했다. 특히, 중국, 대만, 홍콩, 태국, 베트남, 싱가폴, 몽골 등 범아시아 무대로 활동을 하던 베이비복스로서는 이제 서서히 빌보드에 문을 노크해야 될 때라 생각하여 미국의 메이저 레코드사였던, 미국 힙합의 메카인 벙갈로 뮤직을 통해 팝의 본 고장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었다.

또한 미국 시작을 겨냥한 앨범이니 만큼 <Xcstasy>, <Play>의 영어 버전과 한국어 버전을 동시 수록하였고, 미국 웨스트 코스트 힙합의 대부인 닥터 드레(Dr. Dre) 사단의 작곡가 플로스 피(Floss P)가 그녀들의 검은 옷을 코디 해주며 음악적 후견인을 자처해 화제를 몰고 왔다. 앨범 작업을 함께 한 플로스 피는 에미넴, 50 센트, 백스트리트 보이즈, 메리 제이 블라이즈 등 수많은 아티스트를 올려 놓은 프로듀서인 닥터 드레 사단 내 작곡가였다. 또한 미국 현지 유명 프로듀서의 지휘로 작곡과 편곡 모두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이 맡았다. 미국의 사운드를 생생히 담기 위해 2003년 12월에 녹음해 둔 음원을 미국에서 3달동안 후반 믹싱 작업을 하는 심혈을 기울였다. 7집 앨범에는 베이비복스 음악 13 트랙과, 투팍이 1996년 9월 13일 총격 피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의 그와 가까웠던 많은 연예인들이 등장하며 곳곳에 공연 장면이 삽입된 2pac forever DVD 등 2CD로 구성되어 있었다. 작업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신곡수가 적어 스페셜 앨범 (6.5집)으로 발매하는것도 검토됐었지만 정규 7집으로 발매하는 것으로 최종적으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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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집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

베이비복스는 7집 앨범 발표에 앞서 대한항공 측에서 러브콜을 보내게 된다. 이는 한류스타로서 베이비복스가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 이었다. 대한항공측은 2004년 1월 7집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베이비복스측에 대한항공 활주로과 김포공항 격납고등을 제공했다. 뮤직비디오는 청소년 문화에 유행인 힙합, 자동차 등을 콘셉트로 대한항공 활주로에서 'Street racing' 을 주제로 백스트릿 보이즈, 엔싱크 등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앨런 칼자티(Alan Calzatti)의 지휘 하에 고가의 스포츠카 70~80대가 동원 된, 40억여 원의 제작비가 들어갔던 메머드 급의 뮤직비디오였다.[1] 우리나라 전통 격자문 모양에 회사 로고가 새겨진 초대형 대한항공 격납고의 문이 좌우로 열리면서 람보르기니, 페라리 등 각종 고급 자동차 30여 대가 베이비복스와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1996년 요절한 전설적인 흑인 래퍼 투팍의 생전 모습, 래퍼 플로스 피, 기타리스트 말로 핸더슨(Malro Han-derson) 등도 베이비복스와 함께 출연하여 이 비디오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대한항공 격납고는 B747-400과 같은 대형 항공기 2대와 중형기 1대가 동시에 주기할 수 있는 큰 공간으로, 자동차 레이싱을 하는 광장에서 베이비복스가 흥겹게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을 무리 없이 소화해 내어 촬영 팀 모두 만족을 표했다.

2004년 새해 첫 뉴스 로 미국 진출 소식과 7집 컴백 소식을 전하면서, 그 해 봄에 중화권, 동남아, 일본뿐만 아니라 나아가 <Ride West>는 미래에 있을 베이비복스의 미국 연착륙을 겨냥해 내놓은 앨범[2]이었으며, 데뷔 7년째이자 승부수를 던졌던 7집이 행운의 `럭키 세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3. 7집 활동

파일:베이비복스_Ride West.jpg
베이비복스 최후의 앨범 7집 <Ride West>
2004년 4월 16일 발매

2004년 4월, 7집 앨범으로 돌아온 베이비복스는 SBS 인기가요에서 첫 무대를 가지며 국내 무대에 컴백했다. SBS측에서는 <Xcstasy>라는 제목이 선정적인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며 수정을 요구했고 결국 <환상>으로 급하게 수정해서 방송을 해야 했다. 1월 뮤직비디오 촬영으로 대한항공과 인연을 맺은 베이비복스는 7집 활동 재개와 동시에 소지섭과 함께 대한항공 홍보대사로 임명되었고 이들은 베이비복스의 해외진출을 적극 후원하기로 했는데 그 시작이 바로 뮤직비디오 촬영이었다. 그리고 앨범 발표 직전이었던 3월에 열린 베이비복스 태국 일정에 대한항공이 적극 지원하기도 했다. 이것은 민간 기업과 한류스타의 '윈윈 전략'이었다. 이로써 자연스럽게 7집 역시 대한항공과 DR뮤직이 공동 마케팅을 통해 프로모션을 하게 되었는데 6월 한달동안에는 중국과 동남아 노선 기내에 베이비복스의 7집 뮤직비디오와 인삿말등을 방영하기도 했다. 참고로 7집 앨범에는 대한항공 마크가 찍혀있다. 앨범에 대한항공 스폰서 마크가 찍힌건 최초가 아닐지.


2004년 4월 18일 SBS 인기가요 《Xcstasy》+ 《Play Remix》

타이틀 곡 <Xcstasy>는 힙합을 좋아하던 마니아들에게 '힙합의 신'이라 칭송 받고 있는 투팍이 피쳐링을 한 듯한 기법으로 녹음되어 발매 전부터 수많은 이견을 불러왔다. 그 덕에 팬들 사이에서도 곡에 대한 평이 크게 엇갈렸는데 '도대체 후렴구가 언제 나오는거냐', '기대 이하였다'라는 혹평이 있었지만 곡 스타일은 사실 오히려 2010-17년도에 맞는 곡퀄이다. 물론 이 노래를 좋아하는 대중들도 많았다. 오히려 한국어 버전보단 영어 버전이 사랑받았다. 가요치고는 대중성도 없고 쉽게 귀에 익는 멜로디도 아니었기 때문에 베이비복스 측도 이 곡을 통해 상업적인 히트를 얻기보다는 도전에 의의를 두기 위해 활동도 2주 정도로 짧게 선보였고 곧바로 서브 타이틀 곡 <Play Remix>로 전환할 예정이었다. <Xcstasy>는 발표 3주만에 SBS '인기가요'에서 'Take 7'까지 오르는 등, 가요 차트 중상위권에 안착하며 그런대로 괜찮은 순위를 기록했지만 확실히 전 앨범들에 비해서는 미적지근한 반응이었다.

무대위에서는 7집 앨범의 프로듀서 Floss P가 베이비복스의 활동을 위해 내한하여 함께 무대에 올랐는데 원래는 2주 정도만 무대에 서기로 계획했지만 한국 특유의 열광적인 팬 문화와 스탭들의 친절한 대우에 감동받아 본인의 앨범 작업까지 미뤄놓고 5주 동안 머무르며 <Xcstasy> 퍼포먼스에 함께 참여했다. 그리고 Floss P는 자신의 미국 앨범에 실릴 신곡의 피쳐링을 심은진에게 제의해 5월 경 국내에서 녹음을 마쳤다. 이 곡은 KMTV 쇼뮤직탱크에서도 선보였었다.[3] 5월 중순, <Xcstasy> 활동을 마치고 <Play Remix>로 활동을 이어간다. 그리고 6월, 이들의 앞길을 가로막은 결정적인 사건이 터진다.

4. 미아리복스 파문, 심은진의 탈퇴

여기 참고. 이 사건으로 이미지 타격과 활동에 치명타를 입은 베이비복스는 호주에서의 스케줄을 끝으로 7집베이비복스활동을 결국 중단했다. 이 후 태국에서 6-25 참전 용사들을 위한 공연에 UN등과 참여했고 베트남과 친선교류의 날 행사에 참여하는 등 해외에서의 활동을 이어가다 10월 경 KBS 열린음악회에 출연했다. 그리고 이 모습이 베이비복스 다섯명에서의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이 날 무대를 끝으로 심은진이 없는 4인조 체제로 활동했는데 사실 2003년 하반기에도 심은진이 없는 4인 체제로 잠시 활동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4] 팬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11월 열린 대규모 베이징 콘서트에서도 4인 체제로 무대에 올라 탈퇴설이 불거졌다. 이어 2004년 서울가요대상에서도 심은진의 모습은 볼 수 없었고 결국 2004년 12월 27일, 베이비복스의 소속사 대표 윤등룡이 소속사 홈페이지를 통해 심은진의 탈퇴를 공식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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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지만 결과물을 보면 40억이 들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다(...) [2] 7집 앨범은 실제로 월드 레이블 EMI에서 담당하기도 했다. [3] Floss P의 미국 앨범은 개인적인 사정이었는지 결국 발매되지 않았고 이 곡도 자연스럽게 묻힐뻔 했지만 2007년 태국과 일본 등지에서 발매된 베이비복스 베스트 앨범에 수록되었고 제목도 당시 가제였던 'Hot'에서 'Fire'로 바뀌었다. [4] 이 때는 심은진의 건강악화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