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03 18:25:17

배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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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90년 2월 17일
경상북도 의성
사망 1943년 7월 26일
묘소
본관
가족
학력
서훈 대통령표창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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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 생애

1890년 2월 17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안평면(安平面) 대사리(大司里)에서 태어났다. 기독교인으로 1919년 만세운동 당시 집사였다. 3월 15일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대사리에서 거행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의성군 안평면 대사리에서는 평소 조직화되어 있었던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준비되었다. 특히 이북술(李北述, 혹은 이화실(李華實))이 만세운동 조직을 주도하며, 적극적으로 독려하였다.

1919년 3월 12일 이북술은 김옥돈(金玉頓)을 이종출(李鍾出)의 집으로 보내 전국적인 만세운동 동향을 전하면서, 대사리의 독자적인 만세시위 준비를 제안하였다. 이 자리에서 이종출은 거사에 동참하기로 약속하고, 3일 후에 있을 주일 예배에서 관련 사항을 논의하기로 결정하였다.

3월 15일 대사동 교회에서 주일 낮 예배를 위해 교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북술을 위시하여 김옥돈·이종출·이양준(李良俊) 등은 전국의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면서, 이러한 절호의 기회에 우리 마을에서도 만세운동을 거행하자고 제의하였다. 이에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그들의 제안에 찬성하고, 곧바로 주변 마을 주민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면서 거사에 동참할 것을 독려하기로 결정하였다.

마을로 돌아와 이웃 주민들에게 거사 준비 계획을 알리며, 저녁에 있을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하였다.

그날 오후 7시 100여 명의 대사동 주민들과 함께 마을 뒷산에 올라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출동한 일제 군경에 의해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1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