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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9B928><colcolor=#000000> 잉글랜드 왕국 헨리 5세의 왕비 카트린 드 발루아 Catherine de Valois |
||
|
||
이름 | 프랑스어 |
발루아의 카트린 (Catherine de Valois) |
영어 |
발루아의 캐서린 (Catherine of Valois) |
|
출생 | 1401년 10월 27일 | |
프랑스 왕국 파리 | ||
사망 | 1437년 1월 3일 (향년 35세) | |
잉글랜드 왕국 런던 | ||
배우자 | 헨리 5세 (1420년 결혼 / 1422년 사망) | |
오언 튜더 (1428년 결혼) | ||
자녀 | 헨리 6세, 에드먼드[1], 재스퍼, 에드워드, 이름 미상의 딸[2] | |
아버지 | 샤를 6세 | |
어머니 |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 |
형제 | 이자벨, 잔, 마리, 미셸, 루이, 장, 샤를 7세 | |
종교 | 가톨릭 |
[clearfix]
1. 개요
프랑스 왕국 샤를 6세의 막내딸이자 샤를 7세의 누나로 잉글랜드 왕국 헨리 5세의 아내다.헨리 5세와의 사이에서 헨리 6세를 낳았고 두번째 남편 오언 튜더와의 사이에선 에드먼드 튜더를 낳았는데 그는 헨리 7세의 아버지다. 즉, 카트린은 헨리 7세의 친할머니로 튜더 왕조 이후의 모든 잉글랜드 왕실은 카트린의 후손이다.
2. 생애
프랑스 왕국의 샤를 6세와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의 5녀로 태어났다. 카트린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잉글랜드 왕국과 프랑스 왕국은 백년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1415년, 아쟁쿠르 전투에서 잉글랜드가 대승을 거두면서 잉글랜드의 헨리 5세는 프랑스에 카트린 공주와의 결혼과 거액의 지참금을 요구했다. 1420년 5월, 영국과 프랑스 사이 간의 평화 협정인 트루아 조약이 체결되었다. 조약에 따라 헨리 5세는 카트린과의 결혼을 통해 훗날 샤를 6세의 뒤를 잇는 자격을 얻게 되었다. 1420년 6월 2일에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정략결혼이었지만 헨리 5세는 첫눈에 카트린에게 반했다고 한다.비록 평화 조약을 맺었지만 샤를 6세에게는 엄연한 후계자인 도팽 샤를이 있었고, 외국인인 헨리 5세가 프랑스의 왕이 된다는 것에 반발하는 프랑스 귀족들로 인해 전쟁은 계속되었다. 1421년 6월에 헨리 5세는 임신한 카트린을 두고 프랑스 원정을 떠났다. 1421년 12월에 아들 헨리가 태어났지만 헨리 5세는 아들을 보지 못하고 프랑스에서 이질로 사망했다. 카트린은 20살의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
어린 헨리 6세가 즉위하고 헨리 5세의 동생인 베드퍼드 공작 존을 위시한 섭정단이 꾸려졌다. 카트린은 프랑스의 공주라는 이유로 경계받았기에 섭정단에 포함되지 못했고, 너무 어려 자신의 세력을 갖지 못했다. 어린 왕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카트린은 아들을 쉽사리 볼 수도 없었다. 그러나 프랑스의 공주이며 선왕의 왕비라는 카트린의 신분은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젊은 카트린은 얼마든지 재혼할 수 있었고, 재혼한 남편과 함께 잉글랜드에서 권력을 쥘 수도 있는 일이었다. 과거 에드워드 2세의 왕비 프랑스의 이자벨이 왕이 죽은 뒤 애인 로저 모티머와 함께 국정을 농단한 사례도 있었기에 의회는 카트린의 행보를 주시했다. 결국 잉글랜드 의회는 모후가 국왕의 허락없이 재혼할 경우 재혼한 남성의 지위를 빼앗고 재산을 몰수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모든 정치적 판단은 섭정단이 결정했기에 이는 카트린의 재혼을 절대 허락하지 않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카트린은 의회의 눈을 피해 비밀리에 재혼했다. 상대는 헨리 5세의 종자였던 웨일스 출신의 기사, 오언 튜더였다. 카트린은 오언과 함께 지내며 1430년에 에드먼드 튜더를, 1431년에 재스퍼 튜더를 낳았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최소 3명 이상의 아이가 태어났다고 하는데, 두 아들 외에는 확실한 기록이 없다. 1437년 1월 3일, 카트린은 막내아이를 낳고 출산 후유증으로 숨을 거두었다.
헨리 6세의 숙부 글로스터 공작 험프리는 카트린이 재혼했었다는 소문을 듣고 조사에 착수했다. 오언은 감옥에 갇히고 벌금형을 받았다. 그러나 1439년에 헨리 6세에 의해 사면받고 연금을 받게 되었다. 헨리 6세는 이부형제들을 궁으로 데려와 자신의 형제로 인정했다. 그리고 에드먼드와 재스퍼에게 각각 리치먼드 백작과 펨브로크 백작 작위를 수여하고 잘 대해주었다고 한다. 또한 헨리 6세는 이부동생인 에드먼드 튜더를 랭커스터 가문의 방계인 보퍼트 가문의 유일한 후손인 마거릿 보퍼트와 결혼시켰다.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훗날 반정으로 왕위에 올라 튜더 왕조를 개창하는 헨리 7세이다.
3. 여담
카트린과 오언 튜더는 1428년 또는 1430년 경에 결혼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혼 문서나 다른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기에 실제 혼인 관계였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존재한다. 튜더 왕조가 들어서면서 당대 역사가들은 두 사람이 확실한 혼인 관계였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왕조의 정당성을 굳히기 위한 주장으로 보인다.4. 가족
4.1. 조상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발루아의 카트린 (Catherine of Valois) |
<colbgcolor=#fff3e4,#331c00>
샤를 6세 (Charles VI) |
<colbgcolor=#ffffe4,#323300>
샤를 5세 (Charles 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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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2세 (Jean I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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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나의 보나 (Bonne of Bohem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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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봉의 잔 (Jeanne de Bourb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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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봉 공작 피에르 1세 (Peter I, Duke of Bourb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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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루아의 이자벨[3] (Isabella of Valoi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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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Elisabeth of Bavar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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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 공작 슈테판 3세 (Stephen III, Duke of Bavar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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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 공작 슈테판 2세 (Stephen II, Duke of Bavar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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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리아의 엘리자베타[4] (Elisabeth of Sici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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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데아 비스콘티 (Taddea Viscont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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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 공 베르나보 비스콘티 (Bernabò Visconti, Lord of Mil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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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체 레지나 델라 스칼라 (Beatrice Regina della Scala) |
4.2. 자녀
자녀 | 이름 | 출생 | 사망 | 배우자/자녀 |
헨리 5세(Henry V) | ||||
1남 |
헨리 6세 (Henry VI) |
1421년 12월 6일 | 1471년 5월 21일 |
앙주의 마르그리트 슬하 1남[5] |
오언 튜더(Owen Tudor) | ||||
2남 |
1대 리치몬드 백작 에드먼드 튜더 (Edmund Tudor, 1st Earl of Richmond) |
1430년 6월 11일 | 1456년 11월 3일 |
마거릿 보퍼트 슬하 1남[6] |
3남 |
베드포드 공작 재스퍼 튜더 (Jasper Tudor, Duke of Bedford) |
1431년 11월 | 1495년 12월 21일 | 캐서린 우드빌[7] |
5. 대중매체에서
로런스 올리비에가 연출, 출연한 1944년 영화 헨리 5세에서 르네 애셔슨이 연기했다.1989년 케네스 브래너의 영화 '헨리 5세'에서는 엠마 톰슨이 연기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킹: 헨리 5세에서 똑부러지는 공주로 등장한다. 릴리로즈 뎁이 연기했다.
마법소녀 타루토☆마기카의 미누의 모델로 추정된다. 단 캐릭터의 행적과 이 인물의 행적은 전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