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름 | 박재석 |
출생 | 1961년 6월 20일 |
경기도 평택시 | |
사망 | 1996년 6월 13일 (향년 35세) |
경기도 용인시 기흥읍 | |
가족 | 아내 송명옥[1][2] 딸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소방공무원 묘역 7호 |
소속 | 경기 용인소방서 |
임용시기 | 1992년 11월 21일 |
최종 계급 | 소방교 |
담당업무 | 화재진압 |
[clearfix]
1. 개요
1996년 경기도 용인시 기흥읍 구갈리 드림랜드 아파트 지하 LPG탱크 안에서 구조작업중 순직한 소방공무원이다.2. 생애
박재석 소방관은 1992년 소방관으로 처음 임용된 뒤 평택소방서 팽성파춝소를 거쳐 경기 용인소방서 소속 기흥소방파출소에서 근무하였다.사고 당시 소방경력 4년차였던 그는 보통 근무경력이 3년 이상이면 관리직으로 전환됨에도 굳이 현장에 앞장서 “나는 직접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게 제일 적성이야”라며 실전형 소방관을 자처했던 인물이다.박재석 소방관의 ‘남다른’ 희생정신은 소방관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박재석 소방관은 평소“아버지라면 이렇게 했을 거야”라며 아버지의 희생정신을 새겨 행동으로 실천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4년차 경력에도 모범표창이나 공로상을 받으며 지역에서 꽤 유명한 소방대원으로 이름을 알렸었다.
3. 사망
1996년 3월 13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읍 구갈리 드림랜드 아파트 지하 LPG 탱크 안에서 배관 해체작업을 하던 서울 동부가스 직원이 잔여 가스에 질식되어 쓰러졌다는 신고가 119로 접수되었다. 도시가스가 공급되기 시작하면서 필요없게 된 LPG 탱크를 철거하기 위해 지름 50cm 가량의 맨홀 뚜껑을 열고 작업중 질식한 것이였다.신고를 받고 10분여만에 현장에 도착한 박재석 소방관은 30분짜리 비치용 공기호흡기만이 갖고 있는 장비의 전부라는 것을 알았지만 지체하지 않고 맨홀 안으로 자진해 뛰어들었다.[3]
박재석 소방관은 자신이 쓰고 있던 산소 호흡기를 씌워 밖으로 밀어올린 뒤 그래도 실신하였다. 박재석 소방관은 동료 소방관들에게 구조되어 인근 영동병원으로 후송되었지만, 20여분뒤 2명 모두 숨졌다.
4. 여담
이 사건으로 각 소방서의 열악한 환경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박 소방교의 순직과 직접 연관된 방독 장비의 양적·질적 부족함이 문제시되면서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전국 121개 소방서에 근무하는 대원들 1만 6000명 전원에게 공기호흡기를 지급하라는 특명을 내리기도 했다. 이때 기존의 30분짜리 산소마스크가 현재의 1시간짜리 신형으로 교체됐다.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인제는 박 소방교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5000만원의 예산을 책정해 경기 소방학교 내 추모공원을 조성, 박재석 소방교의 마지막 구조 활동을 묘사한 동상을 세웠다.
소방관이던 아버지를 본받아 그 자신도 소방관이 됐던 박씨는 공교롭게 아버지의 생일에 숨을 거뒀다.
박재석씨가 세상을 떠난 이후 유가족에게 청와대에서 명절 선물을 보내온 것은 이 전 대통령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