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54:15

박보국

성명 박보국(朴甫局)
성명 박금석(朴金石)
생몰 1876년 2월 19일 ~ 1944년 1월 5일
출생지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성수리
사망지 전라북도 임실군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 생애

박보국은 1876년 2월 19일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성수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7년 9월 13일 진안 마이산에서 동지 수십명과 함께 "대한제국 만세'를 삼창한 뒤 이석용 의병장의 부대에 들어가 보급책(補給責)으로 활동했다. 1912년 10월 22일 이석용의 지시로 필주(金必珠)·김운서(金雲瑞)와 같이 무장하고 장수군 내진면 월파리에 있는 면사무소에 돌입해 공금 수금원인 이용구(李龍九)[1], 육동기(陸東基) 및 면장 이순영(李順榮)을 구타하고 그들이 거둔 세금 133원과 면비 50원, 개인 소지금 28원 및 손 금고 2점 등을 거두었다. 그리고 1912년 12월에 임실군에 살고 있으면서 학교를 운영한다고 하면서 고을 사람들로부터 돈을 긁어 모아 자기 재산에 넣어 원성이 자자했던 강정수(姜正秀)의 집으로 찾아가 복부에 총격을 가하고 군자금을 거두었다.

그러나 1914년 헌병대에 체포된 그는 광주지방재판소에서 10년형을 언도받고 이에 불복해 대구공소원에 항소했지만 기각되어 원심대로 확정되었다. 이후 대구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징역 7년 6개월로 감형되었고, 1915년에는 징역 5년 7개월로 감형되었다. 출소 후 고향에 은거했고, 1944년 1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박보국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친일 반민족 행위자 이용구와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