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박병건(朴炳建) |
본관 | 밀양 박씨 |
생몰 | 1896년 7월 18일 ~ 1949년 5월 1일 |
출생지 | 황해도 서흥군 내덕면 상석리[1] |
사망지 | 황해도 서흥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박병건은 1896년 7월 18일 황해도 서흥군 내덕면 상석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전국 각지에서 3.1 운동이 전개되자 이에 고무되어 김응률(金應律)·김제원(金濟元)·박병익(朴炳益) 등과 함께 모의했다. 그들은 4월 4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동지들을 규합하며 동민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만세시위에 참가하도록 권유했다. 이윽고 4월 4일 150 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독립선언식이 열렸고, 군중은 박병건의 주도로 독립만세를 외치고 시위를 전개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6월 28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서흥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9년 5월 1일에 사망했다.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박병건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