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53:13

박문홍

성명 박문홍(朴文泓)
생몰 1887년 4월 8일 ~ 1957년 12월 9일
출생지 경상북도 경주군 부내면 노동리
사망지 경상북도 경주군
추서 건국포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문홍은 1887년 4월 8일 경상북도 경주군 부내면 노동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경주노동리교회의 영수로, 1919년 3월 9일 경산의 기독교 목사 김기원(金基源)으로부터 3월 8일의 대구 만세운동 소식을 들었다. 이에 그는 박내영 목사, 윤기효(尹琪涍) 목사 등과 함께 경주에서도 독립만세시위를 벌이는 문제를 논의했다. 이들은 우선 믿음있는 청년 5, 6인을 포섭하여 3월 11일과 12일 밤 두 차례에 걸쳐 노동리교회에서 모임을 갖고 선언서와 태극기를 인쇄·제작하였다. 이 때 태극기는 3월 12일 밤 박문홍이 책임을 맡아 자신의 집에서 3백여 개를 만들었으며, 3월 13일 새벽을 기해 각처에 배포하였다.

그런데 태극기의 배포 사실이 일제의 경계망에 포착되면서, 일제 경주경찰서에서는 3월 13일 새벽에 4대로 편성한 기동대를 투입하여 만세주동자들을 체포하였다. 결국 박문홍은 거사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체포되면서 3월 13일 시위 계획은 불발로 그쳤다. 하지만 군중은 3월 15일 자발적으로 경주읍내에서 시위를 전개했다. 이후 박문홍은 1919년 4월 15일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목회 활동에 전념하다 1957년 12월 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박문홍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