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1 12:43:45

박동선

<colbgcolor=#000><colcolor=#fff> 박동선
朴東宣
파일:기업인 박동선.jpg
출생 1935년 3월 16일
평안남도 순천시
사망 2024년 9월 19일 (향년 89세)
직업 기업인
학력 서울교동초등학교 (졸업)
배재중학교 (졸업)
배재고등학교 (졸업)
조지타운 대학교 (행정학 / 학사)
경력 미국 한남체인그룹 명예회장
민주정의당 고문
민주정의당 당무위원
미국 거류 대한민국 차인연합회 이사장
한국차문화협회 이사장
가족

1. 개요2. 생애3.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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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기업인.

2. 생애

그는 1935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났으며 17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타운대학을 졸업했고, 워싱턴 시내에서 ‘조지타운클럽’이라는 사교클럽을 만들어 인맥을 쌓았다. 1960년대 말에는 리처드 해너 당시 미 하원의원의 영향력을 이용해 한국 정부로부터 쌀수입 중개권을 따내는 등 사업가로 활동했다.미국의 주한미국 감축과 박정희 정권의 인권 탄압으로 한미관계가 악화일로에 있던 1975년, 미 하원의 한국 인권청문회에서 전 중앙정보부 요원이 “한국의 중앙정보부가 미국 내 반박정희 여론과 활동을 무마하려고 대규모 회유·매수·협박·공작을 벌이고 있다”는 증언을 했고, 1976년 10월 워싱턴포스트에서 그가 미국 시민권자인 사업가 김한조(2012년 별세)씨와 함께 중앙정보부의 지원을 받고 리처드 해너 등 미국 정치인 90여명에게 박 정권 지지의 대가로 50만~100만달러의 뇌물을 건넸다고 보도했다.이 사건은 ‘코리아게이트’라 불리며 미 의회에서 관련 청문회인 ‘프레이저위원회’가 열리는 등 파장을 일으켰고, 미 의회가 요구한 그의 소환을 박 정권이 거부하면서 한미관계가 한때 최악으로 치달았다. 결국 그는 사면을 조건으로 1978년 청문회에 출석해 32명의 의원에게 85만달러 상당의 선물을 제공했다고 인정했으나 한국 정부와의 관계는 부인했고, 끝내 기소를 면했다. 이 사건으로 그는 되레 워싱턴 로비계에서 더 명성을 얻어 로비스트로서의 활동을 이어갔다. 2005년에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의 자금을 받아 유엔을 상대로 불법 로비를 벌였다는 혐의로 미국 검찰에 기소되어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2008년 9월 조기 석방되어 귀국했다. 2013년에는 ‘한국차문화협회’ 이사장 자격으로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중국어판 자서전 출판 기념회에 참석해 이목을 모으기도 했다. 당시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14년여를 일하며 박근혜 대통령이 자라는 것을 지켜봤다. 아버지가 어려운 나라의 경제를 살리려 죽기살기로 힘쓰는 장면을 옆에서 봤기 때문에 대통령직을 잘 수행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3. 사망

2024년 9월 19일 오후 6시 45분 지병이 악화되어 입원 중이던 서울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