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5 15:21:57

바바라 콜비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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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바바라 콜비는 누구인가?3. 의문의 죽음4. 이후

1. 개요

1970~80년대 미국 시트콤계의 뛰어난 성격파 배우인 바바라 콜비가 1975년 7월 24일 두 명의 흑인들에게 묻지마 살인을 당한 사건.

2. 바바라 콜비는 누구인가?

파일:바바라콜비.jpg

1939년 뉴욕에서 태어나 뉴올리언스에서 성장한 바바라 콜비는 고등학교 시절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 연기에 관심을 가졌고 동부 명문대 중 하나인 바드 칼리지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엔 프랑스 파리의 소르본느에서 한 학기 동안 공부하기도 했다. 학업을 마친 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을 시작한 그녀는 25세 되던 1964년 루이지 피란델로 희곡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에서의 연기가 호평을 받으며 브로드웨이로 진출했고 곧 각광받게 되었다. 입센의 <인형의 집>을 비롯해 다양한 스타일의 연극 무대에 선 그녀는 1966년 <줄리어스 시저>의 포르티아 역으로 연극계의 스타덤에 올랐다.

큰 키에 웃을 땐 잇몸이 활짝 드러나는 소탈한 이미지의 콜비의 특기는 타고난 유머 감각이었다. 브룩클린 억양과 허스키 보이스가 결합된 독특한 목소리를 지녔던 그녀는 촌철살인의 감각을 지닌 연기자였다. 그녀는 자신의 개성이 영화나 TV 드라마에도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1970년대부터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처음 주목받은 건 1971년에 출연한 < 형사 콜롬보> 시리즈였다. 이후 <FBI>, <형사 맥밀란>, <메디컬 센터>, <쿵푸>, <건스모크> 등 1970년대 인기 TV 시리즈에 두루 등장했고 연극과 영화를 병행했다. 뉴욕과 할리우드를 오가는 바쁜 삶이었지만 힌두교 구루(스승을 의미하는 성직자)인 스와미 묵타난다의 추종자였던 그녀는 명상으로 내면을 다스렸고 채식과 금주를 통해 육체를 단련했다. 심령 연구와 타로에도 관심 있었던 그녀는 외향적인 이미지와 달리 정신적 가치와 영적 세계를 중시했던 인물이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메리 타일러 무어 쇼>였다. 그녀는 세상 물정 밝은 매춘부인 셰리 역으로 인기를 끌었고 1975년에 스핀오프인 <필리스>가 기획되었을 땐 최초로 고정 배역을 따냈다. 여주인공 클로리스 리치먼의 보스인, 포토 스튜디오 사장 줄리 어스킨이 그녀의 역할이었다. <필리스>는 9월 8일부터 방영 예정이었고 촬영은 7월부터 시작되었다. 세 개의 에피소드 촬영을 막 마쳤을 즈음인 7월 24일 그녀는 LA의 베니스 지역에 있는 연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남편 밥 레비트와 별거 상태였던 그녀는 한 살 아래의 연인이자 연기 코스를 수강하는 학생이었던 제임스 키어넌과 함께 있었다. 키어넌은 당시 시트콤 단역으로 갓 데뷔한 늦깎이 연기자였다.

3. 의문의 죽음

밤 11시 50분 즈음이었다. 매주 목요일 밤마다 수업이 있었기 때문에 주차장으로 향하는 밤길이 낯설진 않았다. 주차장에 도착해 자신의 차로 다가가던 그녀 앞에 갑작스레 밝은 톤의 밴 한 대가 달려왔고 그 안에 타고 있던 두 명의 흑인이 총을 쏘았다. 아무런 경고도 없었고 지갑이나 귀중품을 훔쳐가지도 않았다. 그냥 쏘았고 총에 맞은 그녀는 즉사했다. 잠시 후 경찰이 달려왔을 때 역시 총에 맞은 제임스 키어넌은 숨을 헐떡거리며 범인의 인상착의를 이야기했지만 명확하게 본 건 아니었는데 자정이 가까운 밤이었기 때문이다. 밴에 탄 두 명의 흑인 남자. 그것이 전부였다. 잠시 후 키어넌도 절명했다. 검시 결과 22구경 총알이 콜비의 왼쪽 가슴과 폐를 관통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경찰은 그 어떤 원한 관계도 찾아내지 못했다. 강도 사건도 아니었고 몸싸움 같은 걸 벌이다가 총을 쏜 것도 아니었다. 마치 아무 목적 없는 사냥을 하듯, ‘살인 유희’를 즐기듯 밴을 타고 가면서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한 것이다. 경찰은 결국 ‘ 묻지마 살인’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고 40년 동안 그녀의 죽음은 영구 미제 사건 파일 속에 묻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날 밤 LA의 베니스와 바로 옆 지역인 산타 모니카는 매우 흉흉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바바라 콜비가 암살당하기 40분 전인 11시 10분 산타 모니카의 한 거리에선 글로리아 위티라는 57세의 중년 여성이 살해되었다. 그녀는 록히드 마틴의 간부인 남편 롤랜드 위티와 함께 인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이때 근처 풀숲에 숨어 있던 3인조 복면강도가 위티 부부와 뒤에서 오던 존 J.존슨, 엘리자베스 스미스라는 20대 커플 앞에 나타나 총을 들이대면서 잔디밭에 엎드리라고 명령한 후 귀중품을 챙겼는데 글로리아 위티는 틈을 타 도망가다가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절명했고 범인들은 노상강도를 끝낸 후 노란색 밴을 타고 사라졌다.

그들만 당한 것이 아니었다. 산타 모니카에서 비슷한 시간에 다른 세 건의 강도 사건이 있었다. 콜비의 살인 1시간 10분 전인 10시 40분쯤 산타 모니카의 (구)상가거리에서 이사벨라 힐과 낸시 홀트라는 24세 두 여성이 3인조 강도에게 습격을 당했다. 극적으로 힐과 홀트는 소지품은 빼앗겼으나 범인들이 잠시 이야기하던 중 옆 골목으로 도주해 생존했다.

10시 55분 쯤에는 이사벨라와 낸시가 습격을 당한 곳에서 멀지 않은 다른 거리에서 가게를 정리하고 돌아가던 맥스(당시 48세), 아만다(당시 46세) 데이비스 부부 앞에 4인조로 추정되는 강도가 나타나 부부를 폭행한 뒤 돈을 빼앗고 총을 난사한 뒤 달아났다. 이 사건으로 아만다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맥스도 1시간 뒤 사망했다.

콜비가 사망한 지 고작 5~10분 뒤 바이올렛 메이라는 70세 여성과 윌리엠 브라운이라는 71세 남성 지인이 산타 모니카에서 3인조 강도에게 공격을 받았다. 범인은 두 사람의 돈을 빼앗고 저항하던 브라운의 머리에 총을 대고 브라운을 살해했다. 바이올렛 메이도 범인들의 총에 맞았으나 큰 부상을 피한 덕분에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당시 살아난 바이올렛 메이는 브라운과 함께 길을 가던 중 콜비의 살해 당시 난 총소리를 듣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습격을 받았으며 3인조 중 2명만 복면을 쓰고 있었다고 했다.

콜비의 사망으로부터 45분 후인 오전 12시 35분 52세의 크리스틴 마르티네즈라는 여성이 산타 모니카에서 좀 떨어진 베니스의 다른 거리에서 흰색 밴을 탄 2인조에게 총격을 당했다. 다행히 마르티네즈는 총알이 빗나가 팔을 살짝 긁히는 찰과상 정도에 그쳤다.

이 사간으로 총 세 명이 죽고 일곱 명이 살해 위협을 받거나 폭행을 당하거나 물건을 빼앗겼다. 콜비와 위티, 키어넌까지 합하면 그날 밤 LA에서 여섯 명이 총에 맞아 사망한 것이다. 이후 경찰은 여섯 명의 용의자를 검거했지만 조사 결과 그들은 콜비와 키어넌의 죽음과는 무관했다.

4. 이후

한참 재능을 인정받고 기지개를 켜던 엔터테이너의 죽음에 많은 팬들은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필리스>의 제작사인 ‘메리 타일러 무어 프로덕션’은 콜비가 출연한 세 에피소드를 폐기하고 줄리 어스킨 캐릭터에 새 배우를 영입할 계획도 세웠지만 추모의 의미로 그녀가 출연했던 세 에피소드를 모두 방영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리즈 토레스라는 배우가 콜비의 뒤를 이어 줄리 역을 맡았다. 콜비와 <필리스>에서 호흡을 맞추었던 클로리스 리치먼은 장례식에서 조사를 읽으며 “뛰어난 배우이며 가장 유쾌하고 너그러운 사람”이었던 콜비를 추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