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24 10:21:06

미트리다테스

파일:미트리다테스.jpg
왕호 미트리다테스
( 조지아어: მითრიდატე, 아르메니아어: Միհրդատ)
출생 미상
사망 51년
아버지 콜키스의 카르탐
어머니 파르나바즈 2세의 딸
재위 기간 1차 재위: 35년 ~ 37년
2차 재위: 42년 ~ 51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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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메니아의 군주. 이베리아 왕국 파르나바지드 왕조의 왕족으로, 35~37년, 42~51년까지 로마 제국의 속국인 아르메니아를 다스렸다.

2. 생애

콜키스 왕 카르탐과 이베리아 왕국 군주 파르나바즈 2세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파르나바지드 왕족이다. 형으로 파라스마네스 1세가 있었다. 34년 아르메니아 국왕 아르탁세스 3세가 사망하자, 파르티아 샤한샤 아르타바노스 2세는 장남 아르사케스 1세를 아르메니아 왕으로 선포하고 그에게 대군을 맡겨 아르메니아로 보냈다. 그러나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는 파르티아가 로마의 아르메니아 왕 선임권을 인정해놓고 또다시 아르메니아 왕위를 노리는 것에 분개하여 시리아 총독 루키우스 비텔리우스에게 반격하라고 명령했다.

비텔리우스는 이베리아 왕자 미트리다테스를 왕으로 세우기로 했다. 이에 이베리아인들이 호응하여 중앙 유라시아 출신의 유목민족들을 용병으로 기용하여 아르메니아로 진격했다. 또한 비텔리우스는 3군단 갈리카, 6군단 페라타, 10군단 프레텐시스, 제12 풀미나타 군단에게 파르티아와의 일전을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던 35년 아르사케스 1세가 돌연 사망했다. 하인들이 미트리다테스의 사주를 받고 그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사실 여부는 불명확하다.

그리하여 미트리다테스가 아르메니아 왕에 오르자, 아르타바노스 2세는 또다른 아들 오로데스를 아르메니아 왕으로 세우고자 아르메니아에 대규모 원정군을 파견했다. 하지만 미트리다테스는 알바니아인 및 사르마티아 지원군과 함께 이들을 물리쳤다. 그 사이에 비텔리우스의 군대가 유프라테스 강 너머의 파르티아 영토에 군대를 진주시켰고, 파르티아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크테시폰에서 티리다테스 2세를 왕위에 올렸다. 결국 아르타바노스 2세는 티리다테스 2세와 내전을 치러야 했고, 미트리다테스는 그 사이에 아르메니아를 수월하게 장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37년 3월 16일 티베리우스 황제가 붕어한 후 새 황제가 된 칼리굴라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미트리다테스를 폐위시켜 로마로 소환했다. 마침 내전을 수습하고 파르티아 전역을 장악한 아르타바노스 2세는 이때를 틈타 오로데스를 아르메니아 왕에 앉혔다. 이후 시리아 총독 루키우스 비텔리우스와 아르타바노스 2세가 유프라테스 강둑에서 만나 협상했다. 협상 결과, 파르티아는 로마와 동등한 주권을 갖는 걸 인정받고 오로데스의 집권을 인정받았으나 아르메니아 왕이 로마를 섬겨야 한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이에 더해 다리우스라는 이름의 왕자를 로마에 인질로 보내야 했다.

42년 오로데스가 사망하자, 클라우디우스 1세 황제는 미트리다테스를 복위시키고자 로마군을 아르메니아에 파견했다. 당시 정치 혼란이 극심했던 파르티아에 어떠한 제지도 하지 못했고, 미트리다테스는 아르메니아에 무사히 돌아왔다. 로마 수비대는 아르메니아 수도 아르탁사타 인근의 고르니(Gornae) 요새에 주둔하여 미트리다테스의 왕위를 보장했다.

그러나 미트리다테스는 입지가 여전히 불안하다고 여기고 위험인물로 간주된 인사들을 학살하고 백성을 폭압적으로 다스렸다. 결국 51년, 미트리다테스의 통치에 반감을 품은 아르메니아 백성들의 추대를 받은 이베리아 왕자 라다미스투스가 이베리아인들을 이끌고 아르메니아로 쳐들어왔다. 그는 아르메니아군을 격파하고 고르니에서 미트리다테스를 포위했다.

라다미스투스는 폴리오에게 뇌물을 줘서 게르니의 성문을 열게 하려고 했다. 폴리오는 이에 따르려 했지만, 카스페리우스는 강하게 반대하면서 카파도키아 총독 율리우스 파엘리그누스에게 개입을 요청했다. 그러나 폴리오는 결국 카스페리우스의 반대를 물리치고 성문을 열어 이베리아군이 성안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로마군의 배신으로 체포된 그는 가족과 함께 목이 졸려 질식사했다. 율리우스 파엘리그누스는 아르메니아 탈환을 위해 출정했지만, 도중에 계획을 바꿔 라다미스투스를 아르메니아의 왕으로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