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문화와 가치 Culture and Value |
|
|
|
<colbgcolor=#dddddd,#010101><colcolor=#373a3c,#dddddd> 장르 | 철학 |
저자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
최초 발행 | 1970년 |
언어 | 독일어와 영어 |
[clearfix]
1. 개요
문화와 가치(Culture and Value)는 게오르크 헨리크 폰 라이트(Georg Henrik von Wright)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개인 노트에서 Vermischte Bemerkungen를 발췌하여 편집한 책이다.2. 상세
2.1. 과학과 문명의 진보
"……구역질 나는 비눗물 같은 과학……." (평전, 691)
"케임브리지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한 서점을 지나쳤다. 창문에는 러셀, 프로이트, 아인슈타인의 초상화가 있었다. 조금 더 떨어진 음악 상점에서는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의 초상화를 보았다. 이 초상화들을 비교하면서 나는 불과 100년이란 기간에 걸친 인간 정신의 무서운 타락을 강렬하게 느꼈다." (평전, 429)
"원자폭탄에 대하여 세상은 지금 발작적인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으나 그것은 「실제로 드디어 여기 유효한 것이 발명되었다」는 신호와 같다."
비트겐슈타인 자신이 과학과 친밀한 공학도 출신이고, 게다가 2차 세계 대전 당시 상당히 훌륭한 의학 연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과 진보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심지어 역겨워까지 했다는 것은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 그의 비관주의는 너무 신랄해 일면 유머러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세계가 뉴턴 역학으로 기술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그 세계에 관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것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 세계가 실제로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기술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논리-철학 논고 6.342)
비트겐슈타인의 과학관을 드러내는 한마디이다.
인류학자 J.G.프레이저가 저술한 황금가지의 주술과 종교, 과학의 진화론적 해석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주기도 했다.
( # Remarks on Frazer's Golden Bough, Humanities Pr. (1987))
2.2. 음악
음악에 관해서는 보수적인 정도를 넘어 반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비트겐슈타인은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와 같은 고전 음악가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음악가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특히, 쇤베르크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바그너 같은 현대 음악가를 선호하지 않았다 -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맹인 음악가 요제프 라보가 있다. 말년에 가서는 비트겐슈타인 저택에 자주 들러 음악을 들려주던 브람스의 음악마저도 "기계음이 난다."며 싫어하는 모습을 내비쳤다.●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전주곡에 대해 "얄팍한 천재는 재주가 투명하게 보인다."며 혹평했다.
●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에 대해서는 아예 "무가치"하며, 심지어 "나쁘다"고 평했다.[1]
2.3. 문학
제자 엘리자베스 앤스콤이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추천해주자 그것을 읽고는 "이 자는 자신의 곤경에 관해 쓰지 않으려다 오히려 자신을 곤경에 빠뜨린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오토 바이닝거의 「성과 성격」을 앤스콤에게 역으로 추천해주었다. "바이닝거는 그의 단점이 무엇이든지 간에 정말로 그 자신의 곤경에 관해 썼던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여성인 앤스콤에게 당대 여성혐오주의 사상가의 대표격으로 여겨졌던 바이닝거의 책을 추천한 점은 의미심장하다.스트리트앤스미스 출판사가 발행하는 탐정 잡지를 좋아했다. 비트겐슈타인은 당대의 유명한 철학 잡지 「마인드」에 대해 혹평하면서 "왜 사람들이 탐정 잡지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데도 굳이 「마인드」를 보는지 알 수 없다."는 투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요한 루트비히 울란트의 「에버하르트 백작의 산사나무」라는 시를 좋아했다. 파울 엥겔만이 1차 세계 대전 기간 중 보내어 알게 된다. 시의 내용은 십자군 원정에 참가한 에버하르트 백작이 팔레스타인에서 산사나무 가지를 꺾어 오는데, 그것을 땅에 심자 커다란 나무가 자라났고 그 아래에서 백작이 휴식을 취했다는 얘기다.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바스락거리는 수염의 에버하르트 백작은 뷔르템베르크의 영지로부터 신성한 부름을 받고 떠났네 저 팔레스티나 지역으로. 천천히 말을 타고서 숲속에 난 길을 따라가다가 백작은 산사나무 덤불에서 작고 생생한 초록색 가지를 꺾었네. 그러고는 자신의 쇠 투구에 그 작은 가지를 꽂았네 산사나무 가지를 지닌 채로 전쟁터를 누비고 드넓은 불모지를 건너기도 했지. 그리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그 가지를 땅에 꽂았네 거기서 작은 잎들과 싹들이 부드러운 봄의 부름을 받아 돋아났네. 백작은 해마다 그곳을 찾았네 그는 너무나 용감하고 진실했네 그리고 아주 기뻐하며 가지가 자라는 걸 보았네. 백작은 나이 들어 지쳤고, 그 가지는 이제 나무가 되었네 그 나무 아래서 노인은 종종 앉은 채로 꿈꾸곤 했네. 높은 나뭇가지는 아치를 이루고 저 메마른 휘파람 소리는 백작의 과거를 떠오르게 하네 저 팔레스티나 지역을.[2] |
비트겐슈타인은 울란트의 시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울란트의 시는 정말로 대단하다. 다음과 같은 식으로 말이다. 만일 당신이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말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그러나 그 말해질 수 없는 것은 -말해질 수 없이- 말해진 것에 포함되어 있다!"[3]
라빈드라나스 타고르의 「암실의 왕」을 재미있게 읽다. 요릭 스마이시스와 함께 영어로 번역하였다. 또한 레프 톨스토이의 「크로이체르 소나타」 「하지 무라트」 「세명의 은자」에 대해 극찬을 한 적이 있다. 특히 「하지 무라트」는 평생에 걸쳐 지인들에게 추천했으며 톨스토이의 「짧은 민담」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1]
Duncan Richter. (Continuum, 2004) Wittgenstein at His Word, 147. "……Among his favourite composers were J.S. Bach, Beethoven, Brahms, Bruckner, Haydn, Labor, Mendelssohn, Mozart, Schubert and Wagner. If his sounds too much like a list simply of famous composers, it might be helpful to add that he did not like the 'worthless' and 'bad' music of Mahler. See Culture and Value p. 67e (from 1948)."
[2]
윌리엄 바틀리 3세, 이윤 옮김. (필로소픽, 2014) 비트겐슈타인 침묵의 시절 1919~1929, 77~78.
[3]
같은 책, 42,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