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문학선(文學善) |
일본식 이름 | 文岩學善 |
생몰 | 1919년 11월 12일 ~ ? |
출생지 | 황해도 연백군 연안면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포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1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문학선은 1919년 11월 12일 황해도 연백군 연안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2년 5월 3천 명의 청년들과 함께 ‘군속’이라는 명목으로 연합군 포로감시원이 되었다. 부산에서 2개월간 훈련을 받은 뒤 1942년 9월 14일 인도네시아 자바의 딴중 쁘리옥 항에 도착했다. 그는 그곳에서 연합군 포로 감시원으로 근무하다가 일제의 패망을 예견하고 한인 동료들과 연합군을 돕는 항일운동 조직을 결성하기로 계획하였다. 당시 자카르타지구에서 근무하던 문학선은 이억관(李億觀),김현재(金賢宰), 임헌근을 포섭했으며, 세마랑지구에서는 이상문(李相汶), 암바라와지구에서는 노병한, 민영학, 손양섭,조규홍(曺奎洪) 등과 접촉을 꾀하였다.1944년 12월 29일 한인 군속들은 세마랑주 스모워노 교육대에서 재훈련을 받던 중 교육대 취사장 뒤편에서 고려독립청년당(高麗獨立靑年黨)을 결성하였다. 고려독립청년당의 조직은 총령에 이억관, 군사부장에 김현재, 조직부장에 임헌근, 세마랑지구 책임자에 이상문, 암바라와 지부장에 손양섭, 암바라와 부지부장에 조규홍, 자카르타 지부장에 문학선, 자카르타 부지부장에 백문기, 반둥 지부장에 박창원, 반둥 부지부장에 오은석 등이 선임되었다.
1945년 1월 4일, 중부 자바 암바라와에서 손양섭, 민영학, 노병한 등이 일본군 군속, 어용상인을 살해한 뒤 자살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후 일본군은 한인 군속들의 저항이 또 다시 일어날까 두려워 대규모의 전속을 실시하였다. 이때 고려독립청년당에서는 딴중 쁘리옥 항구에 정박 중인 수송선을 탈취하기로 계획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계획은 일본군에 발각되어 고려독립청년당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리하여 1945년 1월 28일 총령 이억관과 함께 체포된 그는 자카르타로 압송되었고, 1945년 7월 21일 자카르타의 일본군 제16군 군사재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일제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후인 9월 4일에 석방되었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문학선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