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문명국(文明國) |
생몰 | 1878년 ~ ? |
출생지 | 전라북도 함열군 동일면 장선리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문명국은 1878년생이며, 전라북도 함열군 동일면 장선리 출신이다. 그는 1907년 음력 9월 김운익(金雲益) 외 4명과 함께 전북 임피군 동이면 관원리의 민가에 들어가 엽전 1백 냥, 백미 20말, 명주 7척, 갑사(甲紗) 4척 등을 모집하고 그 집을 소각했다. 그리고 같은해 10월 3일에는 김성천(金聖天)ㆍ김창현(金昌鉉)ㆍ 심상희 등 2백 여 명의 의병과 함께 전북 금산읍내 경무고문분견소, 우편취급소, 세무서 및 일본 거류민과 한국인 가옥을 공격해 화승총 2정, 순사도 2자루, 탄약, 관복, 피복 등 천여 원의 금품을 노획했다.1908년 음력 2월, 문명국은 의병 7명과 함께 충남 임천군 민가에 들어가 현금 17원 50전을 모집하였고, 같은 해 음력 8월에는 전북 김제군 월단태(月丹台)에서 현금 20원을 군자금으로 모집했다. 이어 1908년 9월 전북 부안군의 민가에서 현금 20원, 1909년 음력 3~4월경 의병 10명과 함께 전북 김제군 해창시장의 객주에 들어가 상인들로부터 백목(白木) 1백 필을 군수품으로 모집했다.
그러다가 헌병대에게 체포된 그는 1909년 11월 22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모살, 강도, 방화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1910년 1월 18일 경성공소원에서 기각되었다. 이후 1912년 9월 은사에 관한 조서에 의해 징역 12년으로 감형되었고, 1914년 칙령 제 104호에 의해 징역 9년으로 감형되었으며, 1915년 칙령 제205호에 의해 징역 7년 4월로 감형되었다. 이후 그의 행적과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문명국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