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사천(泗川). 증조할아버지는
고려에서 대호군(大護軍)으로 치사한 목군경(睦君慶)이고, 할아버지는 성균관 진사 목충달(睦忠達)이다.
아버지는 정용 낭장을 역임한 목손검(睦孫儉)이며, 어머니는 능직 박천상(朴千祥)의 딸인 창원 박씨(昌原朴氏)이다.
부인은 면천 군사 안습(安習)의 딸인
안산 안씨(安山安氏)로 목보남(睦寶男)과 목계남(睦繼男) 두 아들을 낳았다.
목진공(睦進恭)[?~1426]은 고려 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조선 전기
태조·
태종·
세종 대의 문신으로 활동하였다.
태종의 원종공신(原從功臣)으로 순금사 대호군(巡禁司大護軍)·판전사시사(判典祀寺事)·우부대언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평부사(富平副使)를 지내던 1417년(태종 17) 우희열(禹希烈)이 들판을 개간하겠다고 신청하자 태종의 윤허를 받아 이를 실행하도록 하였다.
이때의 개간으로 수전(水田)이 450결(結)에서 1000결로 늘어남으로써 농업에 크게 기여하였다.
1422년(세종 4)
호조참판으로 부임하였고, 같은 해 북방을 평정한 데 대해 하례하기 위해
명나라 북경(北京)에 다녀왔다.
1425년(세종 7) 진하사(進賀使)로서 다시 한 번 명나라에 파견되었다.
묘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사천 목씨 묘역 내 6세손 목서흠(睦叙欽), 8세손 목임일(睦林一), 9세손 목천현(睦天顯)의 묘와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
묘는 단분 단독장이며 남쪽을 향해 있다. 오른쪽에 1426년(세종 8)에 건립된 묘표(墓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