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29 19:56:46

모라비안 형제회


1. 개요

모라비안 형제회 또는 모라비안 교회는 18세기에 설립된 개신교 교회로, 그 기원은 15세기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의 후스파 운동에서 시작된 Unitas Fratrum ("형제단의 연합”유니타스 프라트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해 카톨릭 반종교개혁 에 의한 종교적 박해가 중단되었는데, 카톨릭의 이러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숨겨진 씨앗"이라고 불리운 충성스러운 신도들에 의해 보헤미아에서 그 명맥을 유지 보존할 수 있었다. 17세기 후반 독일의 경건주의는 모라비아와 보헤미아의 숨어있는 개신교도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이들은 독일의 개신교 지역으로 도피하게 되었다. 그 당시 경건주의는 많은 귀족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는데, 젋은 백작 니콜라우스 루드비히 폰 진젠도르프도 그중 하나였다. 보헤미아 형제단의 전통을 따르는 한 그룹이 1722년 모라비아를 떠나 작센에 있는 진젠도르프 백작의 영지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그들은 헤른후트(Herrnhut)[1]라는 기독교 공동체를 세우게 되었다.
헤른후트 기독교 공동체에는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에서 온 망명자들 뿐만 아니라 독일과 그 외의 지역에서 온 경건주의자들이 모여들었고, 이 공동체는 헤른후트의 집회장소에서 집회를 시작했다. 이들은 1727년 8월13일 특별 성찬식을 통해 여러 그룹들간의 갈등과 불화를 해소하고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 올라, 1732년 첫 선교사들을 외국에 파송하기 시작했다. 이 공동체는 남미와 북미, 아프리카등 오지에 이르기까지 1760년까지 약 200여명의 선교사들을 파송하였다. 헤른후트는 시민으로서의 생활과, 교회 생활이 신정 사회로 통합된 독특한 기독교 공동체가 되었으며 이는 유럽, 영국, 미국등에 약 20여개의 기독교 정착촌의 원형이 되었다.[2]

2. 모라비안 형제회 기원


3. 선교 역사 요약

  • 작센주의 작은 공동체인 헤른후트는 전 세계 40개국 이상에 약 1,700개의 교회를 가진 모라비안 교회(유니타스 프라트룸)로 성장
  • 1732년, 설립 10년 후 헤른후트의 인구는 400명 미만이었으나, 오늘날 전 세계 모라비안 교회는 약 140만 명의 회원을 보유
  • 선교는 전문가의 일이 아니라 모든 기독교인의 임무라는 인식이 일찍이 교회에 적용되었다.
  • 모라비안 교회는 처음부터 전체 교회가 선교에 열정을 가진 최초의 교회로 여겨진다.
  • 선교의 목표는 "이방인들이 우리 구주에 대해 많이 배우게 하는 것"이다.
  • 1732년 8월 21일, 두 명의 선교사인 레온하르트 도버와 다비드 니치만이 헤른후트에서 파견되었다.[4]

[1] 주님(Herr)이 보호하시는 곳(Hut)이라는 의미 [2] 출처 : Britannica 인터넷판 [3] https://www.ebu.de/brueder-unitaet/geschichte [4] https://www.herrnhuter-missionshilfe.d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