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시기인 1704년 8월 24일 스페인 말라가의 남쪽 바다에서 영국-네덜란드 연합 함대와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가 맞붙은 해전. 양측 총합 100여 척이 맞붙은 대규모 해전으로, 승부는 명확히 가려지지 않았다.2. 배경
1704년, 프랑스는 지난해 포르투갈이 영국-네덜란드-오스트리아 연맹과 한 편이 되면서 이베리아 반도의 형세가 불리해진 것에 대응하기 위해 스페인에 육군을 파견하는 동시에 지중해의 해상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 강력한 함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1704년 5월 14일, 툴루즈 백작 루이 알렉상다르는 브레스트에서 30척의 함대를 출발시켰고 6월 초 툴롱에 도착했다. 이후 그는 툴롱에서 50척의 함선을 모은 뒤 7월 22일 툴롱에서 출항해 카디스 항으로 향했다.한편, 영국-네덜란드 연합 함대는 포르투갈로 육군을 수송하는 걸 핵심 목표로 삼았다. 2월 23일 포츠머스에서 출항한 영국-네덜란드 연합 함대는 3월 7일 리스본에 도착하여 육군을 하역시켰다. 이후 연합 함대는 지브롤터로 진군해 몇 달 간 포위 공격했다. 이 소식을 접한 툴루즈 백작은 지브롤터를 구하기 위해 카디스에서 출항했다. 그러나 지브롤터 수비대는 8월 4일 항복했고, 영국-네덜란드 연합 함대는 적 구원함대가 올 것을 예상하고 척후선들을 파견해 적 함대를 탐지하게 했다.
8월 22일, 프랑스 함대는 물을 보충하기 위해 말라가에서 동쪽으로 3마일 떨어진 벨레즈-말라가 해안에 정박했다. 이때 영국 척후선이 적의 위치를 알아채고 본 함대에 이 사실을 알렸다. 영국-네덜란드 연합 함대 지휘부는 전쟁 평의회를 열고 장시간 논의한 끝에 적과 교전하기 위해 동쪽으로 항해하기로 결정했다. 8월 23일 출항한 연합함대 사령관 조지 루크 경은 적이 아군의 눈을 피해 서쪽으로 향하여 지브롤터를 기습할 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래서 그는 이날 저녁 전에 적 함대가 보이지 않으면 지브롤터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날 오후, 연합 함대는 말라가 해안 근처에서 바람을 타고 서쪽으로 향하는 프랑스 함대를 포착했다. 이에 연합 함대는 밤중에 그들을 추격했고 8월 24일에 마침내 프랑스 함대를 따라잡았다. 이리하여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최대의 해전인 말라가 해전의 막이 올랐다.
3. 양측의 전력
3.1. 영국-네덜란드 연합군
- 총사령관: 조지 루크 경
- 병력: 전열함 53척, 프리깃 6척, 화선 7척, 22,543명
3.2. 프랑스-스페인 동맹군
- 총사령관: 툴루즈 백작 루이 알렉상다르
- 병력: 전열함 51척, 프리깃 6척, 화선 6척, 갤리선 28척, 24,275명
4. 전투 경과
8월 24일 오전 10시, 해전이 시작되었다. 양측의 선봉, 중앙, 후위대가 서로 맞붙은 전형적인 전투였으며, 양측의 함선 수가 비슷했기 때문에 승부는 쉽게 가려지지 않았다. 다만 프랑스 함대는 선봉, 중앙, 후위대 모두 함선 수가 비교적 균일한 반면, 영국-네덜란드 연합 함대는 중앙에 다수의 함선을 편성하고 선봉과 후위 함대엔 상대적으로 적은 함선을 배치했다. 툴루즈 백작은 이러한 적의 편성을 보고 선봉 함대의 후미 함대와 후위대 1개 함대를 중앙으로 끌여들임으로서 적이 아군의 중앙을 돌파하는 걸 저지하게 했다. 이후 벌어진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서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양측 모두 이번 전투에서 상당한 손실을 입긴 했지만 상대를 결정적으로 패배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몇 시간 동안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양 함대는 어둠이 깔리자 전투를 중단하고 각자의 기지로 후퇴했다.5. 결과
영국 함대의 손실은 695명 전사, 1663명 부상이었다. 또한 네덜란드 함대의 손실은 말라가 해전 당시엔 92명이 전사하고 268명이 부상당했다. 그러나 말라가 해전 사흘 후인 8월 27일 알베마르 호가 폭발 사고를 내면서 그 배에 타고 있던 300명 중 불과 9명 만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 알베마르 호 폭발 사고까지 합친다면, 영국-네덜란드 함대의 사상자는 2,718명이었다. 반면 프랑스군은 1,585명이 전사하고 부상자는 수백 명이었다. 다만 알베마르 호 폭발 사고를 제외한다면, 양측 모두 배를 한 척도 잃지 않았다.말라가 해전은 전술적 의미로 볼때 무승부였다. 양 측 모두 말라가 해전 이후에도 여전히 강력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전략적으로 볼때 영국-네덜란드 연합 함대가 이득을 취했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은 말라가 해전을 통해 지브롤터 탈환을 노리던 프랑스 함대를 격퇴시켰고 지브롤터의 지배권을 확고히 했다. 이후 영국 해군은 지브롤터를 발판으로 삼아 지중해에서의 해상권을 장악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