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8 16:34:28

마키하라 타이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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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하라 타이세이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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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No.8
<colbgcolor=#ffd300><colcolor=#000> 마키하라 타이세이
牧原大成 | Taisei Makihara
생년월일 1992년 10월 15일([age(1992-11-05)]세)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학력 죠호쿠고등학교
신체 172cm|73kg
출신지 후쿠오카현 우키하군 타누시마루정
포지션 유틸리티 플레이어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2010년 육성선수 드래프트 5라운드
소속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1~)

1. 개요2. 경력
2.1. 프로 입단 전2.2. 프로 입단 후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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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소속의 유틸리티 플레이어.

2. 경력

2.1. 프로 입단 전

고교 시절 3년간 고시엔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나마 1학년일때 학교가 본선에 진출했지만 그땐 벤치 멤버로도 들어가지 못했고 2, 3학년 때는 3루와 2루를 보며 팀을 이끌었지만 끝내 고시엔 무대를 밟지는 못하고 고교 생활을 마치게 되었다.

3학년 가을, 드래프트에 참가하였고 육성 드래프트 5순위째에 소프트뱅크의 지명을 받고 육성 선수로 프로에 입단했다.

2.2. 프로 입단 후

정식선수 전환 자체는 2012년으로 제법 빠른 편이었지만 2014년까지는 별다른 기회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2014년 당시 참가했던 U-21 야구 월드컵에서 타율 .455(33타수 15안타) 4도루를 기록하며 맹활약했고 대회 베스트나인과 최우수 수비 선수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2015년부터 외야에 도전하면서 유틸리티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고, 그 결과 처음으로 개막 엔트리에 진입하는 성과를 남겼다. 하지만 이후로는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2017년에는 부상까지 겹치며 10경기에만 출전하는 등 힘겨운 시기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2018년, 길고 길었던 재활을 마치고 7월에 1군으로 올라와 공수에서 활약하면서 단숨에 1번타자-2루수 자리를 꿰차며 드디어 야구 인생에 꽃이 피나 싶었지만 9월 말 세이부전에서 포수 모리 토모야와 충돌하면서 부상을 당해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타율 .317 3홈런 26타점으로 데뷔 이래 가장 뛰어난 성적을 남겼지만 부상으로 인해 일본시리즈 엔트리에 들어가지 못했다.

2019년에는 지난해의 활약에 힘입어 주전 2루수로 출발했으나 타격 부진과 허리 통증에 시달리며 힘겨운 시즌이 계속되었다. 그래도 다양한 포지션을 볼 수 있는 유틸성을 앞세워 114경기에 나섰고 최종적으로는 타율 .242 3홈런 27타점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내는데 그쳤다. 그러나 클라이맥스 시리즈가 되자 맹타를 휘두르며 팀 타선을 이끌었고 팀도 그 해 일본시리즈에서 4:0 셧아웃 우승을 달성하면서 생애 처음으로 우승을 맛봤다.

하지만 19시즌에 떨어진 성적은 20시즌에도 영향을 미쳤는지 좀체 타격이 나아지질 않았고, 결국에는 출전 기회가 줄어버리는 신세가 되었다. 20시즌 성적은 타율 .241 1홈런 8타점.

2021년에는 벤치 멤버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5월 초부터 말까지 4할이 넘는 뜨거운 타격감을 과시하면서 선발 출전 기회를 다시 잡게 되었다. 하지만 어렵게 찾은 주전 자리는 단 7경기 만에 부상으로 내려놔야만 했고 이후 6월 말에 복귀했으나 다시 부상을 당하며 2군행. 21시즌 기록은 타율 .278 4홈런 21타점으로 확실히 지난해에 비해 타격 성적은 향상되었으나 그놈의 부상 때문에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한 아쉬운 시즌이 되고 말았다.

2022년에는 부상으로 고생한 21시즌의 아쉬움을 날리는 활약을 펼쳤다. 데뷔 이후 가장 많은 120경기에 나서면서 올스타전 출전까지 경험하는 등 상당히 의미있는 시즌을 보냈다. 규정타석에 단 2타석이 부족해 규정타석 3할은 아쉽게 놓쳤지만 타율 .301 6홈런 42타점으로 단일 시즌 개인 최다 홈런과 타점을 기록했다.

2023시즌을 앞두고 부상으로 WBC 대표팀에서 물러나게 된 스즈키 세이야의 대체 선수로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주로 대주자, 대수비 요원으로 출장했고 예선 체코전에서는 적시타도 하나 때렸다.

정규시즌에서는 또다시 잔부상에 시달렸다. 8월 30일 오릭스전에서 오른 손목에 사구를 맞고 그대로 시즌아웃되는 부상을 입는 불운도 있었다. 91경기 출전에 타율 .259, 2홈런,32타점에 머물렀다.

3. 기타

  • 육성선수 동기들 중 메이저리그 진출까지 이뤄낸 센가 코다이나 수비력을 앞세우며 여러 수상 실적을 쌓은 카이 타쿠야 만큼은 아니지만 이쪽도 육성선수로는 상당히 성공한 케이스이다.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팀 내에서 본인의 입지를 다지고 대체 선수이긴 하지만 국가대표로 발탁되기까지 했으니 성공신화의 사례로 남을 법한 커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