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2 02:00:47

마치오네스호 참사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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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마치오네스호.jpg
사고 이후 강에서 건져진 마치오네스호

1. 개요2. 마치오네스3. 사고 당시4. 사고 이후5. 유사 사고

1. 개요

Marchioness Disaster

1989년 8월 20일 영국 런던 템스강에서 일어난 선박 충돌 사고.

2. 마치오네스

마치오네스 호는 1923년 제작된 관광선이다. 1940년에는 전쟁터에서 활약하면서 됭케르크 철수작전 당시 군인들을 구출하는 데 쓰이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다시 관광선으로 복귀했다. 디스코장과 뷔페, 바가 설치되어 템스 강 위에서 파티를 열어 왔다.

3. 사고 당시

당시 마치오네스호는 템스강을 항해하고 있었다. 안에서는 포르투갈 출신 은행원 안토니오 데 바스콘셀로스(Antonio de Vasconcellos)의 26번째 생일파티가 열렸다. 안토니오를 제외한 126명의 승객과 4명의 선원이 안토니오 데 바스콘셀로스의 생일을 축하해 줬다. 승객들의 나잇대는 대부분 20대로, 안토니오의 생일을 맞아 온 학창시절 동기와 같은 회사 동기였다. 승객 중엔 잉글랜드 럭비대표팀의 친누나도 있었다. 선장은 29세의 스티븐 팔도(Stephen Faldo)였다. 원래대로면 밤새 파티가 열리고 오전 6시에 다시 육지로 복귀할 예정이었다.

한편 길이 80m의 준설선 보우벨(Bowbelle)호가 일을 마치고 세척을 하러 나인 엘름스에서 템스강의 선박을 세척하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당시 보우벨호의 선원은 9명이었고 선장은 더글라스 핸더슨(Douglas Handerson)이었다. 더글라스 핸더슨 선장은 여러 을 돌아다니며 최소 6잔의 맥주를 마시고 잠을 청한 뒤 다시 배에 탔다. 배는 오전 1시에 출발했다.

그렇게 준설선이 캐논 스트리트의 철교를 지나던 오전 1시 45분, 템즈강 관광선 마치오네스호와 맞닥뜨렸다. 마치오네스호는 급히 회피를 시도했고 보우벨호 측에서도 마치오네스호를 목격하고 피하려 했으나 결국 두 배는 충돌했다. 보우벨은 마치오네스를 들이받으면서 닻 부분이 마치오네스와 충돌해 그대로 밀고 갔다. 충돌의 충격으로 닻이 마치오네스호의 창문을 뚫고 안으로 들어오고 내부 전기가 끊겨 어두워졌다. 이 상황에서 보우벨이 그대로 마치오네스를 밀어 버리면서 마치오네스호는 전복되어 구르기 시작했다. 결국 마치오네스호는 그대로 가라앉았고 충돌의 충격으로 두동강 나 버렸다. 충돌에서 침몰까지는 고작 30초 밖에 안 걸렸다.

사고를 목격한 인근 크루즈선 헐링험(Hurlingham)에서 급히 999에 신고한 후 구조대원들에 달려와 배의 잔해를 잡고 떠다니던 사람들을 구조했다. 신고한 헐링험 호와 근처를 지나던 또 다른 크루즈선 로얄 프린세스(Royal Princess)호에서는 구명튜브를 던지며 승객들을 구조했다. 경찰들도 보트를 끌고와 승객들을 구조했고, 구조된 승객들은 구급차를 타고 급히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헬기까지 동원되어 혹여나 휩쓸려간 승객이 없나 확인했다. 템스강의 유속이 너무 빨라 구조가 방해되던 가운데 보우벨호는 구조활동을 돕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갔고 네비게이션 서비스 쪽에 "배가 크루즈선을 들이받은 것 같다." 고 연락했다.

이 사고로 탑승객 131명 중 51명이 사망했다. 갑판 윗쪽에 탔던 사람들은 상당수가 생존했으나 밑에 탑승했던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다. 시신 중 24구는 마치오네스 호 안에 그대로 남아 있어 수습했고 다른 희생자들의 시신은 마치오네스 호에서 빠져나와 흘러갔다. 마지막 시신은 9월 4일에야 수습됐다. 희생자 중에는 생일파티의 주연이었던 안토니오 데 바스콘셀로스와 선장 스티븐 팔도도 있었다.

그나마 충돌 당시 강에 빠졌던 마치오네스의 선원 앤드류 맥고왠(Andrew McGowan)이 다시 배에 올라 타 댄스룸의 문을 열어서 사람들이 더 빠져나올 수 있어 희생자가 줄었다. 구조된 80명은 전부 충돌 후 30분 내에 구조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당시 구조를 도왔던 헐링험호(Hurlingham)[1]와 로얄 프린세스, 경찰선에게 구조됐다. 경찰선의 프로펠러에 다리를 베어 다친 부상자도 있었으나 경찰선에서 25명을 구출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가라앉은 마치오네스호는 오전 9시에 강바닥에서 건져졌다.

4. 사고 이후

1991년 보우벨 호의 선장 더글라스 핸더슨은 주의를 살피지 못해 충돌사고를 일으킨 혐의로 2번 기소됐다. 하지만 유죄 판결을 받진 않았다. 이에 유가족들은 힘을 합쳐 사고 관련 증거 자료들을 수집했고 당시 선장에 술에 취했다는 증거를 찾아내 법원에 내밀었다. 핸더슨은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다는 사실은 인정됐다. 하지만 2000년에 충돌의 직접적인 원인은 두 배의 디자인 상 당시 조타실에서 서로를 보기 힘들었다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사고 당시 구조선이 적었다는 의견이 받아들여져 영국에선 왕립 국제 구조선 기관(Royal National Lifeboat Institution)을 설립해 템스강에서 사고가 일어나면 바로 달려갔다. 이 기관에서는 2002년에 희생자 51명을 기리며 장미꽃 51송이를 강에 뿌리는 추모행사를 지냈다.

사우스워크의 성당엔 희생자들을 기리는 표지석이 설치됐다. #

Bowbelle호는 사고 이후에도 사용되다 몇 년 뒤 마데이라 제도에서 사고로 가라앉았다. 이후 스쿠버다이버들의 관광코스가 됐다.

5. 유사 사고


[1] 마치오네스호의 자매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