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2-28 00:07:06

마우리키오스 차르툴라리오스

이름 마우리키오스 차르툴라리오스
(영어:Maurikios Chartoularios, 그리스어: Μαυρίκιος ὀ χαρτουλάριος)
출생 미상
사망 643년
직위 로마 공작
반란 대상 콘스탄스 2세

1. 개요2. 행적

[clearfix]

1. 개요

동로마 제국 이라클리오스 왕조의 반란자. 콘스탄스 2세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곧 진압당했다.

2. 행적

차르툴라리오스는 이라클리오스 황제의 비서이자 장군이었다. 638년, 이라클리오스 황제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세르지오가 제기한 단의론을 정식 교리로 삼으려 했다. 단의론은 그리스도에게는 인간으로서의 본성과 신으로서의 본성 두 개가 다 있지만, 단일한 의지를 지닌다는 이론이다. 그는 그리스도교권의 모든 주교들에게 널리 회람하도록 했고, 사본 한 부를 아야 소피아 성당의 현관에 부착했다. 그는 이를 통해 칼케돈 공의회 단성론의 갈등을 봉합하려 했다. 그런데 638년 10월 교황에 선출된 세베리노는 단의론의 신앙고백인 에크테시스(Ecthesis)에 서명하기를 거부했다.

이라클리오스는 세베리노를 교황으로 인정하지 않고, 차르툴라리오스에게 교황궁을 점거하게 했다. 차르툴라리오스는 로마로 가서 민병대를 동원한 뒤, 라테라노 궁전을 점령하여 약탈을 자행했다. 이때 라벤나 총독 이사키오스도 로마로 가서 라테라노 궁전에서 약탈한 보물을 확보했다. 이후 두 사람은 보물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운송하면서도, 상당한 양을 빼돌렸다. 세베리노는 이런 상황에서도 단의론에 절대로 동의하지 않았고, 결국 건강이 악화되고 심신이 지친 이라클리오스는 640년 5월 단의론을 인정하라는 요구를 철회하고 세베리노를 교황으로 승인했다. 그 후 640년 12월 새 교황에 즉위한 요한 4세는 공식적으로 단의론을 이단으로 선포하였고, 이라클리오스도 어쩔 수 없이 따랐다.

643년, 로마 공국의 공작을 맡던 차르툴라리오스는 이라클리오스의 사망 후 동로마 제국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 로마 공국의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자 라벤나 총독 이사키오스는 군대를 파견하여 로마 시를 순식간에 제압했다. 차르툴라리오스는 성 마리아 아드 프라세페 성당에 숨었지만, 곧 끌려나와 사슬에 묶인 채 라벤나로 보내져 참수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