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10 16:29:56

리 딕슨

리 딕슨의 수상 이력
{{{#!folding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베스트팀
파일:PFA_UK_logo.png
1989-90 · 1990-91
}}} ||
파일:NBC 로고.svg
National Broadcasting Company
파일:external/i.telegraph.co.uk/PF-LeeDixon_2014355c.jpg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이름 리 딕슨
Lee Dixon
본명 리 마이클 딕슨
Lee Michael Dixon
출생 1964년 3월 17일 ([age(1964-03-17)]세)
잉글랜드 그레이터맨체스터 주 맨체스터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조건 178cm
직업 축구선수( 라이트백 / 은퇴)
축구해설자
방송인
경력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선수 번리 FC (1982~1984)
체스터 시티 FC (1984~1985)
베리 FC (1985~1986)
스토크 시티 FC (1986~1988)
아스날 FC (1988~2002)
방송인 NBC (축구해설가)
국가대표 22경기 1골 ( 잉글랜드 / 1990~1999)

1. 개요2. 클럽 경력
2.1. 초창기2.2. 아스날 시절
3. 국가대표 경력4. 은퇴 후
4.1. 인종차별 논란
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

[clearfix]

1. 개요

리 딕슨은 잉글랜드의 前 축구 선수다. 그는 1988년에 아스날에 입단한 뒤 2002년까지 14년간 아스날에서 활동하면서 나이젤 윈터번 - 토니 아담스 - 스티브 볼드 - 리 딕슨으로 이어지는 강철의 포백을 구축했다.아스날이 조지 그레이엄 집권 시기 컵 대회 및 국제대회에서 강세를 보이고 아르센 벵거가 아름다운 축구를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포백이 든든한 받침대가 되어줬기 때문이다. 현재는 선수 생활을 정리한 뒤 방송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2. 클럽 경력

2.1. 초창기

번리 시절 딕슨.

맨체스터에서 태어난 딕슨은 본래 맨체스터 시티를 응원했다. 그래서인지 지역 라이벌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대한 적개심이 대단했다고 한다. 그는 1980년 번리에 입단한 후 2년간 유스팀에서 활동했고 1982년에 1군 팀에 올라오지만 1984년까지 단 4경기만 출장했다. 이후 1984년엔 체스터 시티와 계약을 맺었고 1년간 57경기에 출장하여 한 골을 넣었다. 딕슨은 이후 베리 FC로 이적하여 다시 한 시즌을 치르고 1986년 스토크 FC에 입단하여 2시즌 동안 71경기 5골을 기록했다. 특히 특히 1986-87 시즌엔 무려 50경기를 출장하여 3골을 기록하여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그러던 1988년 1월, 수많은 경기를 꾸준히 치르고도 아무렇지도 않는 그의 강철 체력을 눈여겨보던 조지 그레이엄 아스날 감독이 37만 5천 파운드의 이적료를 지불하고 아스날로 데려갔다.

2.2. 아스날 시절

아스날에 처음 입단했을 때는 미청년이었던 분이...

파일:external/0797ca69d11f300d2c2c39ea36014c719ff168b059856e07e3e91d5bcc63e1ff.jpg
이렇게 변했습니다.
아스날에도 삼적화가..

딕슨의 아스날에서의 삶을 다룬 6분짜리 다큐멘터리

딕슨은 아스날에 임단한 뒤 곧바로 아스날의 주전 라이트백으로 활동했다. 그는 레프트백으로 활동하고 있던 나이젤 윈터번과 훌륭한 팀워크를 형성하며 아스날의 호성적을 이끌었다. 사실 그는 윈터번과 라이트백 포지션을 둘러싸고 경쟁하는 관계였지만 윈터번이 치명적인 실수를 연이어 한 후에 본래의 자리인 레프트백으로 돌아가자 경쟁관계에서 서로 협조하는 관계가 된 것이다. 딕슨은 등번호 2번을 챙기고 10여년 동안 활동했다. 훗날 딕슨은 영국의 언론지 인디펜던트지에 다음과 같은 칼럼을 올렸다.
내가 아스날의 풀백으로 활동한 것은 그럴 만한 자질이 있는 지를 돌아봤을 때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본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가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확실히 나의 모든 약점은 토니 아담스, 나이젤 윈터번, 마틴 키언, 그리고 스티브 볼드에 의해 메꿔졌다. 우리 중 누군가가 잘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를 대신해줬다.

이렇듯 조지 그레이엄에 의해 결성된 최강의 포백들은 아스날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아스날은 1988-89 시즌 리버풀과 치열한 접전 끝에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이는 아스날 역사상 18년 만의 우승이었다. 이후 딕슨은 아스날의 우측 윙어 데이비드 로캐슬을 도와줬고 그의 공격력은 탁월했다. 하지만 그레이엄은 그에게 오버래핑보다는 수비에 집중할 것을 지시했기 때문에 이 시기 그가 보여준 플레이는 주로 수비적인 것이었다. 그와 동료 수비수들의 활약에 힘입어, 아스날은 조지 그레이엄 집권 시기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리그 우승 : 2회(1988-89 시즌, 1990-91 시즌)

FA컵 : 1회(1993년)

리그컵 : 1회(1992-93 시즌)

커뮤니티 실드 : 우승 - 1회(1991년), 준우승 - 1회(1993년)

유로파 위너스컵 : 우승 - 1회(1993-94 시즌), 준우승 - 1회(1994-95 시즌)

1996년 9월, 아르센 벵거가 아스날에 부임했다. 이후 딕슨은 벵거의 지휘하에 플레이스타일을 바꿨다. 그는 다이어트를 하여 체중을 조절하고 보다 공격적인 플레이를 했다. 벵거는 훗날 자신은 딕슨을 대체할 선수를 데려올려고 했지만 딕슨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빠르게 이해하는 것을 보고 그를 계속 기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딕슨은 1996년부터 2002년까지 벵거의 지휘하에 꾸준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이 시기 아스날이 거둔 기록은 다음과 같았다.

리그 우승 : 2회(1997-98 시즌, 2001-02 시즌)

리그 준우승 : 3회(1998-99 시즌, 1999-00 시즌, 2000-01 시즌)

FA컵 : 우승 - 2회(1998년, 2002년), 준우승 - 1회(2001년)

커뮤니티 실드 : 우승 - 2회(1998년 1999년)

UEFA 컵 : 준우승 - 1회(1999-00 시즌)

딕슨은 2002년 38세의 나이로 은퇴를 선언했다. 이때 그의 동료 토니 아담스 또한 그와 함께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딕슨은 아스날에서 14년을 활동하면서 458경기 동안 25골을 기록했다.

3. 국가대표 경력

딕슨은 1990년 4월 월드컵 대비 친선경기인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그날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지만 게리 스티븐스 폴 파커에게 밀려 대표팀 승선은 좌절되었다. 월드컵이 끝난 뒤, 잉글랜드의 새 감독으로 부임한 그레이엄 테일러는 스티븐스와 파커를 제외하고 딕슨을 대체자로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딕슨은 유로 92 지역 예선에서 아일랜드를 상대로 골을 기록하며 1:1 무승부를 이끌었다. 이후 그는 1991년 말까지 A매치 11경기를 출장했다. 그러나 딕슨은 잉글랜드가 유로 대회로 진출하기 위한 마지막 고비인 스웨덴과의 경기를 치르기 직전에 부상당하고 말았다. 그를 대신하여 게리 스티븐스가 호출되었지만 그 또한 부상당하고 말았다.(...) 결국 잉글랜드는 변변한 라이트백 없이 스웨덴과의 경기를 치러야 했고 결국 유로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이후 딕슨은 1994 월드컵 지역 예선에 줄곧 출장했지만 잉글랜드는 월드컵에 가지도 못하고 탈락하고 말았다. 이후 새 감독으로 부임한 테리 베너블스는 딕슨을 배제하고 맨유의 라이트백 게리 네빌을 발탁했다. 그러다가 1999년 1월, 잉글랜드의 신임 감독으로 부임한 하워드 윌킨슨은 그를 잉글랜드 스쿼드로 재기용했고 딕슨은 1999년 2월 1일에 프랑스와의 경기에 출전했지만 잉글랜드는 2:0으로 패했다. 그후 그는 A매치 22경기 출장, 그러나 주요 대회에는 단 한번도 출전하지 못했다는 아쉬운 기록을 남긴 채 국가대표를 은퇴했다.

4. 은퇴 후


딕슨은 선수 생활을 정리한 뒤 BBC의 Match of the Day 2 프로그램에서 패널로 활동했다. 풋볼 포커스, 스코어 등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종종 출연했고, FIFA 시리즈의 해설자 역을 맡기도 했다. 2012년 7월, 딕슨은 BBC를 떠나 ITV와 계약을 체결하고 친구인 Adrian Chiles와 함께 패널로 활동하고 있다.

4.1. 인종차별 논란

2017년 2월 12일 리버풀 vs 토트넘과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태클하는것을 보고 '하이야 가라테킥'이라고 말 했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하이야'는 일본의 닌자의 기합이면서 주로 동아시아인을 비하 하는데에 쓴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 PFA 올해의 팀: 1989-90, 1990-91
  • 스토크 시티 팬 선정 올해의 선수: 1987
  • 2부 리그 올해의 팀: 1986-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