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카를 왕조 동프랑크 | ||||
루트비히 2세 | 카를로만 | 루트비히 3세 | 카를 3세♔ | 아르눌프♔ | |
카를 왕조 동프랑크 | 콘라트 왕조 동프랑크 | 오토 왕조 독일 | |||
츠벤티볼트 | 루트비히 4세 | 콘라트 1세 | 하인리히 1세 | 오토 1세♔ | |
♔: 신성 로마 황제 프랑크 · 동프랑크 · 신성 로마 · 라인 동맹 · 독일 연방 · 북독일 연방 · 독일 제국 · 바이마르 · 나치 독일 · 동독 · 독일 동프랑크 · 신성 로마 · 오스트리아 제국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오스트리아 |
}}}}}}}}} |
1. 개요
[clearfix]
1. 개요
라틴어: Ludovicus IV (루도비쿠스 4세)독일어: Ludwig IV. (루트비히 4세)
893년 ~ 911년 9월 24일 (향년 18세)
별명은 루트비히 유아왕(Ludwig das Kind)으로 별명 그대로 어릴 적에 단명했다. 동프랑크 카롤루스 왕조의 마지막 왕이었으며 부왕 아르눌프의 유일한 적자였다. 899년 부왕이 죽자 겨우 7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나 바깥에선 마자르족과 데인족이 처들어오고 안에선 귀족들이 서로 권력투쟁을 하느라 나라는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 심해졌다. 900년 8월 그의 이복 형이자 서출인 츠벤티볼트가 폭동에 휘말려 암살되자 어린 조카들을 제치고 로타링기아도 물려받았다. 그러나 로타링기아의 귀족들이 반발하여 제대로 통치는 하지 못하였다.
가뜩이나 몸이 안 좋았던 루트비히 4세는 성장하면서 마자르족에 대한 군사원정을 벌이기도 했으나 성과는 좋지 못했고 결국 무리가 겹쳐 18세의 나이로 병으로 사망하였다. 그가 죽은 뒤 로타링기아는 서프랑크 왕국의 샤를 3세에게 넘어갔다.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귀족들은 아르눌프의 외손이자 루트비히 4세의 외조카인 프랑켄 공작 콘라트 1세를 왕으로 선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