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17 01:56:28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

 
{{{#FCE774 {{{#!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 -26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8F0E09, #9F0807 20%, #9F0807 80%, #8F0E09)"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letter-spacing: -1.4px"
{{{#!wiki style="margin: -5px -10px"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106px; padding: 4px; font-size: 0.95em"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
초대
로물루스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106px; padding: 4px; font-size: 0.95em"
제2대
누마 폼필리우스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106px; padding: 4px; font-size: 0.95em"
제3대
툴루스 호스틸리우스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106px; padding: 4px; font-size: 0.95em"
제4대
안쿠스 마르키우스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106px; padding: 4px; font-size: 0.95em"
제5대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106px; padding: 4px; font-size: 0.95em"
제6대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106px; padding: 4px; font-size: 0.95em"
제7대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 }}}}}}
{{{#FCE774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width: 37px; padding: 0 6px"
}}}}}}}}}}}}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제7대 로마 왕국 국왕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
Lucius Tarquinius Superbus
파일: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jpg
출생 불명
즉위 기원전 534년
폐위 기원전 509년
사망 기원전 495년
재위기간 로마 왕국 제7대 왕
기원전 534년 ~ 기원전 509년 (25년)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부모 父:데마라투스[1]
母:타나퀼
배우자 툴리아 마이너[2]
자녀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
아룬 타르퀴니우스,
티투스 타르퀴니우스
가족 장인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백부 아룬 타르퀴니우스
사촌 아룬스 타르퀴니우스
종질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콜라티누스
}}}}}}}}}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최후의 로마 국왕. 일명 거만한 타르퀴니우스.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의 아들이자 세르비우스 툴리우스의 사위였다.

2. 생애

장인인 세르비우스 툴리우스를 죽이고 왕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세르비우스의 딸이자 수페르부스의 아내인 소 툴리아는 아직 숨이 붙어있던 아버지를 마차로 짓밟아 확인 살해했다고 한다.

각종 기념물을 세우고 측근들이 전횡을 일삼아 로마인들의 불만을 많이 샀다가 아들인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가 친척 콜라티누스의 아내 루크레티아를 겁탈하였고 그녀가 자살하자 이를 방아쇠로 결국 반란이 일어났으며, 로마의 마지막 왕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폐위 후, 에트루리아계 도시의 지원을 받아 여러 번 로마를 침공하였으나 결국 실패한 후 타지에서 사망하였다. 콜라티누스는 이후 브루투스와 함께 로마 공화국의 첫 집정관이 되었다.

[1] 할아버지 라는 설도 있다. [2] 외조카 이기도 하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66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66 ( 이전 역사)
문서의 r (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