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24:55

루시 -그녀가 바라던 것-/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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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편
1.1. 현재
1.1.1. 그녀와의 첫 만남1.1.2. 평범하지 않은 그녀
1.2. ???
1.2.1. 기나긴 여정의 끝1.2.2. 눈을 뜨렴, 루시1.2.3. 가깝고도 먼 그녀1.2.4. 로봇이란 무엇인가
2. 엔딩
2.1. 공통 엔딩2.2. 잊혀진 기억
3. 특전 시나리오
3.1. 초로의 기억3.2. 백정필 박사의 일기

1. 본편

1.1. 현재[1]

1.1.1. 그녀와의 첫 만남

2050년 10월 12일,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던 주인공은 거리에 가득한 불빛 공해와 소음 공해 탓에 몹시 괴로워한다.[2] 그러나 이래도 저래도 달라질 것이 없어서, 외진 길로 가기로 한다. 그러던 중 "K Robotics Co. Ltd" 라는 한 로봇 회사의 건물을 보면서, 자신의 가치관[3]을 플레이어에게 전한다. 그 뒤로는 외진 공원을 지나서 폐기장으로 향하는데...[4]

그곳에서 웬 사람의 형상을 목격한다. 원래는 단지 집으로 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지나치는 잡동사니가 널부러져 있을 뿐인 지름길에 불과한 폐기장이었지만, 아무래도 사람의 형상을 본 것이 신경쓰여서 한 번 가까이 가보기로 한다.

가까이 가서 확인해보니... 그것은 여성형 안드로이드였다.[5] 코드가 1번인 것과 본 적도 없는 디자인, 이로 미루어 신형 기종 같기는 한데... 이렇게 버려진 것으로 미루어 아무래도 뭔가 큰 문제가 있던 것 같다고 주인공은 생각한다. 일단 작동은 하는지 시험 삼아 말을 걸어보는데, 안 들리는지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해서 이번엔 발로 다리를 건드려 보는데... 아주 구시대적인 동작이기는 하지만, 로봇은 움직였다.

이때 주인공은 잠깐 주변을 살피는데, 소음이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그 말은 즉슨 폐기로봇이 근처에 왔다는 것이고, 곧 이 안드로이드도 파괴될 거라는 뜻이었다. 주인공은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안드로이드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6] 그렇지만 자신에게 안드로이드가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고... 그러던 차에 경비 로봇에게 걸리고 만다.

결국 주인공은 양심을 못 이기고 안드로이드를 집으로 가져온다. 일단은 가져온 안드로이드를 깨끗이 닦아내고, 의사소통을 시도하는데... 이상하게 말을 걸어도 제대로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혹시 전력이 부족한가 싶어서 전원을 넣어볼까 하는데... 정작 그 방법은 모르고 있었다. 혹시 콧구멍에 꽂는 건가 했지만... 역시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전원 공급부를 찾아보기로 한다. 그러던 차에 마침 안드로이드가 뒤를 봐달라는 듯 행동해서 뒤통수 부근을 살펴보는데... 목 뒷쪽에 마침 홈을 찾아낸다. 홈을 통해 뚜껑을 열고 보니 다양한 형태의 삽입 구멍이 있었고, 주인공은 단자가 일치하는 것을 찾아 꽂아본다.

과연 전원 공급부가 맞는지 안드로이드도 제대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전력이 부족해 절전 모드로 실행한다느니 소유자 등록을 한다느니 온갖 당혹스러운 짓을 하는 거였다. 한 차례 그렇게 정신없는 일이 있은 뒤, 일단은 로봇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정보를 모아보기로 한다. 그리고 정리해보자면 대강 다음과 같았다.
1. 안드로이드의 모델명은 루시 발렌타인이다.
2. 루시는 다양한 기능이 내장되어 있는 다재다능한 로봇이다.
3. 관절 부위 여럿이 망가진 상태인 데다가 시스템 락이 걸린 상태라 지금으로서는 단순한 고철덩어리에 불과하다.

그 말은 즉슨 당장이라도 수리점에 맡겨야 한다는 것. 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어차피 밑져야 본전인 데다가, 고물이라면 당장 팔아도 될테니 일단 고칠만 한 장소를 물색하기로 한다. 그리하여 학교 근처 상점으로 선택한 주인공은, 당장 내일 아침에 맡기기로 하고 이만 잠들기로 한다.

1.1.2. 평범하지 않은 그녀

10월 13일, 자명종 소리를 듣고 일어난 주인공은 시간을 확인한다. 그리고 평소처럼 다시 자려는데··· 루시를 고쳐야 한다는 걸 떠올리고는 곧바로 다시 일어난다. 그리고 그녀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그녀의 에너지 상태를 묻는다.

그 뒤 화장실에 가서 용변 해결 및 세면세족을 하고, 거실에 나와 보는데··· 탁자 위에 샌드위치 조각 2개가 있었다. 편의점에서 파는 평범한 샌드위치 조각을 먹으면서 집을 둘러보니··· 아버지는 평소처럼 없었다.[7] 어쨌든 방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학교 갈 준비를 하는데, 그러다 루시에게 전력도 충분한데 이제 걸을 수 있겠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녀의 대답은 한마디로 "불가능합니다." 였다.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등에 업고 수리점에 가기로 했는데···[8] 그녀는 다행히 생각보다 가벼웠다. 또한 날씨도 괜찮아 그녀를 운반하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9]

여차저차해서 목적지에 도착해서 들어가보는데··· 형이라 할지 아저씨라 할지 애매한 연상의 남자인 가게 주인장이 주인공을 퉁명스럽게 맞이한다. 주인장은 주인공의 안드로이드 수리 요구를 듣고는 루시를 가만히 살피는데··· 그러다가 "뭐야 이건? 내가 모르는 기종이잖아. 신형인가? 이름없는 회사의 잡동사니가 아니라면 아직 정식 발수가 안 된 제품일 텐데··· 이봐 이거 언제 산 거야?" 라고 묻는다.

주인공은 이에 잠깐 고민하다가 적당히 대답한다.[주웠다][하늘][폐기장] 그리고 대답을 들은 주인장은 "아니 그건 됐고··· 어쩌다 이렇게 심하게 망가진 거야? 이봐 잘 들어, 안드로이드라는 건··· 작은 실수만으로도 망가지는 섬세한 존재야. 이렇게 막 다루면 안 된다고. 요즘 손님들 중엔 안드로이드를 단순히 일만 하는 장난감으로 여기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야, ···물론 나야 그런 작자들 덕에 먹고 살지만, 평소 그 녀석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들어보면 울화통이 터져. 안드로이드가 얼마나 고귀한 생명체인지 전혀 이해 못하고 있어.[13] 알았어? 즉, 고치긴 쉽지만 너도 평소에 소중히 다루라고." 라고 말한다. 이에 주인공은 '뭐야, 내가 망가뜨린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런 건 만든 회사에 따져야지.' 라고 생각하지만, 논쟁하기는 싫어서 그냥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주인장은 이에 "그래, 말을 잘 알아듣는군. 뭐, 오늘의 첫 손님이니 특별히 반값으로 해주지.[14] 어디 보자··· 학교 끝나고 네가 돌아올 무렵까지 수리해 달라고? 좋아, 오늘은 다른 일이 없으니까 되겠지." 라며 계산 결과를 보여주는데··· 이를 본 주인공은 '끙, 사고 싶은 책도 많이 있고 참고서도 필요한데··· 별 수 없군, 이 원한은 나중에 저 고물을 들볶는 걸로 갚아야겠어.' 라며 비용을 내겠다고 대답한다. 그 뒤 주인공은 루시에게 "고물. ···고물! ······루시, 학교 갔다 올테니 이 아저씨 말 잘 들어. 알았어?" 라고 말한 뒤 학교로 뛰어간다.[15]

그 뒤 학교로 뛰어가는 동안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본 옛날 영화도 바로 지금인 2050년이 배경이었지. 그 영화에선 우주 전쟁이 터지거나 하늘을 나는 자동차도 나왔는데··· 실제로는 학생들은 아직 걸어서 다니고, 자동차는 땅을 달리고, 자전거나 인라인 스케이트도 아직 건재하고··· 21세기 중반인 현재까지도 21세기 초와 크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네. ···크게 발전한 건 안드로이드가 고작인가.' 하고 생각한다.

그 뒤 교실에 가까스로 늦지 않게 들어오니, 기박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짝꿍이[16] "아슬아슬했네, 늦잠 잤어?" 하고 말을 걸어 왔다. 그런데 때마침 담임이 들어왔고, 일단 주인공은 나중에 이야기하겠다고 신호를 보낸다. 그 뒤 점심 시간이 되자 매점에서 빵들을 사와서는 기박사와 같이 점심을 먹기로 한다.[17] 그렇게 평범한 크로켓을 먹다가 주인공은 기박사에게 문득 "너 안드로이드 많지?" 라고 질문한다. 이에 기박사는 "엉? ···집에 6기 정도 있던가?[18] 근데 갑자기 왜? ···혹시 안드로이드에 관심 생겼어? 만약 그렇다면 이건 좋은 일이군. 혹시 살 거라면 동행할게. 내가 이 방면엔 연줄이 좀 있으니까, 혹시 가격이 걱정된다고 해도 내가 동행하면 거저 먹기 하는 거나 다름 없을 테니 걱정마." 라고 대답한다. 이에 주인공은 "···아니, 살 필요가 없어. ···주운 게 있거든. ···폐기장에서." 라고 말하는데, 그러자 기박사는 "흠, 무슨 기종인데 그래? 궁금한데 나중에 보러 가야겠군. 어쨌든 네가 안드로이드에 관심이 생긴 건 좋은 일이니까. 다만··· 조심해, 안드로이드에게 너무 지나친 의미 부여는 삼가라고. 로봇과 인간은 다르니까. 둘의 경계를 잊지 않아야 너도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을 거야." 라고 말한다.

아무튼 시간이 흘러 하교 시간이 되었고, 주인공은 루시를 회수하러 수리점에 간다. 그런데 들어가보니 "안티크 샵에 어서 오세요! 손님, 뭘 찾으시나요?" 라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아르바이트생인가 싶어 고개를 돌려보니··· 목소리의 주인은 루시였다. 아침까지는 꼴통의 고물 안드로이드였는데, 지금은 마치 사람 마냥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웃고 있었다. 이 모습에 주인공은 크게 놀라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는다.[19]

그 뒤 가게 주인장을 찾는데 루시가 말하길 필요한 거 사러 외출 했다는 거였다. 가게는 루시에게 맡겨 두고. 그러다가 주인공은 "이봐, 주인님이라 부르는 것 좀 그만해. 낯 간지러우니까. 부를 거면 이름으로 부르라고." 라고 하지만, 정작 처음에 이름을 안 가르쳐 줬었다. 주인공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20] 그냥 주인님으로 부르는 걸로 하기로 한다. 어쨌든 그렇게 됐는데, 루시가 "주인님. 주인님. ···그냥 불러봤어요. 주인님이라 부를 분이 생긴 게 기뻐서요." 하는 거였다. 이 모습을 본 주인공은 '얜 뭘 이렇게 기뻐하는 거야? 아니 것보다 주인 아저씨는 왜 안 오는 거야?' 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십 몇 분 후, 주인장이 돌아와서는 주인공에게 달려들어 두 손을 잡고는 "학생! 루시를 내게 주시게!" 하는 거였다. 이에 대한 주인공의 대답은 "난 이 결혼 반댈세." 였다. 이에 주인장이 다시 말하길 "아아, 미안. 좀 이상하게 들렸나? 내 말은, 루시를 나에게 판매할 생각 없냐고. 만약 그렇게 한다면 이 정도 쳐 줄게. 난 장난으로 권유하거나 이 정도 금액을 제시하는 게 아냐. 게다가 이 정도 거금은 어른도 쉽게 만져볼 수준이 아닌데, 나쁜 거래는 아니라고 생각해." 라는 거였다. 이에 주인공은 '이런 낡은 가게나 꾸리면서 이런 거금이 있을 리가 없는데··· 딱 봐도 무리하고 있군. ···이런, 게다가 루시 본인도 무슨 납치당해 팔려나갈 위기에 처한 사람 같은 표정이네.' 라고 생각하며 "왜 이만큼이나 내겠단 거에요? 이만한 가치가 있는 고성능 로봇인가요?" 라고 질문한다. 이에 주인장은 "물론이지! 자 잘 들어, 너 혹시 안드로이드가 인간의 감정을 따라하는 수준이 어떤 단계인지 알아? 정답은 '아직 인간의 발끝에도 못 미친다' 야. 아무리 잘 만들어진 녀석들도 인간을 흉내내는 수준에 불과해. 인간 마냥 느끼고 사고하고 표현하고 소통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이거지. 그런데 루시는 어떨까?" 라고 말하는데, 이에 주인공이 정답을 말하자[인간][저주] "그래, 루시는 누구보다 인간에 가까운 로봇이야. 즉 철로 된 인간! 로봇 인간! 아이언맨! 로봇 산업의 혁명! 개발자는 천재가 틀림없어!" 라며 감탄을 뱉어낸다. 그러면서도 "아, 근데··· 이상하게 대부분의 기능을 못 쓰게 락이 걸려 있더라. 뭐, 장식에 불과한 수준이었으니 푸는 건 간단했는데··· 왜 이런 걸 걸었는지가 의문이란 말야." 라고 하는데, 이에 주인공은 "시스템 락이 있었다는 건 제작자가 본 기능의 공개를 원치 않았단 거잖아요. 뭔가 심각한 시스템 오류라도 있는 거 아닐까요?" 라고 묻는다. 그러나 주인장 말로는 "나도 뒤가 켕겨서 여러 가지 간단히 테스트 해봤는데, 별 문제 없더라고. 로봇 공학 3원칙은 확실히 지키고 있어." 라고 하는 거였다. 그 뒤 주인공은 주인장이 지불하겠다는 금액과 루시를 보는데, 그러더니 루시가 와서는 "···저, 주인님? 이야기 중 실례지만··· 루시는 다목적용이라서 정말 무궁무진한 응용이 가능하답니다. 어떤 일에도 도움이 될 거에요. 그러니까···" 라며 필사적으로 자신을 선전하는 거였다.

이에 주인공은 "걱정마, 안 팔아. ···어쨌든 다 고친 거 맞죠? 수리비는 여기요." 라며 주인장에게 돈을 건넨다. 이에 주인장은 씁쓸한 얼굴로 돈을 받으며 "일단은. 하지만 다리 관절을 아직 무리하게 쓰지 않는 게 좋아. 5분 이상의 장거리 이동은 한동안 자제시켜." 라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 주인공은 루시를 다시 한 번 업어 가기로 하고, 주인장과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23]

그렇게 루시를 업고 가는 도중, 루시에게서 아까와는 다른 평범한 소녀에게서 날 만한 냄새를 맡는다. 이에 대해 물으니 주인장이 "여자애는 스스로 관리할 줄 알아야 해." 라면서 이것저것 내어줬다고 한다.[24] 이에 대해 "로봇에게 이것저것 챙겨준다라··· 거 별난 사람 다 보는군." 하면서 가는데, 루시가 "루시의 몸, 안 무거우세요?" 하는 거였다.[가볍다][무겁다]

그렇게 루시를 업은 채 걸어가는데, 루시가 아무 말이 없는 채로 있자 잠깐 봤더니··· 그녀는 주변을 막 둘러보고 있었다. 이에 주인공이 "이 주변의 모습이 그렇게 신기해?" 라고 묻자, 루시는 "···네. 정말 근사해요, 모든 것이. 전에는 외출할 때 허가가 꼭 필요해서, 이렇게 밖을 돌아다닐 기회가 거의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움직이는 동안 풍경이 천천히 변하는 모습이 정말 신기해요." 라고 대답한다.

그 뒤로는 "주인님, 오늘은 너무 떠들었죠? 죄송해요. 원래는 침착하고 포용심이 많게 설계됐는데···[27] 아무래도 첫 주인을 맞아서 기뻐서 그런 것 같아요. 오랜만에 작동해서 들뜨기도 했고요." 라고 하는데, 이에 주인공이 이전에는 주인이 없었냐고 하자 루시는 주인공이 첫 주인이며 "연구소 생활은 즐거웠어요. 모두 친절하셨거든요. 여러 이야기를 하고, 여러가지 가르쳐 주셨거든요. 무언가 재밌는 대답을 하거나 지시한 걸 잘 해내면 많은 분들이 기뻐해주셨죠. 기대에 부응하면 참 똑똑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기도 했고요. 루시는 그게 정말 좋았어요. 신이 나서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이야기했죠. 그럴수록 귀여움도 많이 받았답니다." 라면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주인공은 '제작 과정 상 성능 테스트일 텐데··· 내가 보기엔 그렇게 아름다운 광경은 아니지만, 이 녀석은 좋은 추억으로 여기나. 아니 그렇다면 왜 버려진 거지?' 하고 생각하지만, 쉽사리 물어볼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다잡고 의문점을 묻는데, 이에 루시는 침묵하더니 이내 "···아마, 루시가 싫어져서 같아요. 언제부터인지 다들 루시에게 웃어주지 않으셨어요. 루시를 칭찬하지도 않으셨죠. ···루시의 메인 시스템 가동을 하지 않으셨어요. 예비 전력으로 시간의 흐름만 알 수 있었어요. 아무것도 못하고 시간의 흐름만 느끼는 나날이 계속되었죠. 그러다가··· ." 라고 대답한다. 주인공은 이에 '그러다가 버려졌다, 이거군.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니면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는지는 모르겠군. 하지만 한창 좋아해 하다가 마음에 안 드니까 바로 내다버리다니, 마음에 안 드는군. 너무 제멋대로잖아. 책임감 없는 작자들 같으니라고. ···아니 잠깐,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냥 쓸모없는 로봇이 버려졌을 뿐인데, 인간이 버림받은 것도 아니잖아. 쓸모없는 기계는 버려야 정상, 그렇다면 내가 그 작자들에게 분노할 이유는 없어.' 라고 생각한다.[28]

그러다가 루시는 "···그래서 주인님껜 정말 감사해요. 까마득할 정도로 오래 버려져 있으면서, 정말 외로웠어요. 그런데, 주인님이 절 찾아내 말을 걸어주셨어요. 그래서, 전 있는 힘을 다해 움직였죠. ···절 거줘주셔서 감사해요." 라고 말을 한다. 이에 주인공은 '나 참, 그냥 지나가면서 몇 마디 걸었을 뿐인데. 따뜻하게 속삭이는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데려온 것도 단순한 변덕에 불과하건만, 그게 이 녀석에게 그 만큼이나 큰 힘이 됐다는 게 놀랍군.' 라고 생각하다가 "···시끄러. 본전 뽑을 생각으로 거둬준 거니 각오나 해." 라고 말한다. 이에 루시가 "네! 각오하고 있답니다. 후훗··· 웃음이 자꾸 나오네요. 고장났나? 아하하···" 라며 자신에게 기대자 '이 피부 질감, 내가 업고 있는 게 로봇이 아닌 사람처럼 느껴지게 하는 군. 단순한 플라시보 효과인가, 아니면 아침과 비교해 정말 뭔가 변한 걸까. 만약 바뀐 게 있다면, 그건 나일까 이 녀석일까?' 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걸어간다.

1.2. ???

1.2.1. 기나긴 여정의 끝

????년 5월 3일, 어떤 박사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을 잠시 되돌아본다. 돌이켜 보면 자신은 단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어 했다.[29] 장장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각고의 노력을 한 덕에[30] 마침내 어떤 존재를 탄생시킨 것이었다. 하지만 그 탓에 더 이상은 기다릴 체력도, 여력도, 인력도, 자본도, 무엇보다도 정신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고로 더 이상 기다릴 수는 없는 만큼 그 존재, 루시 발렌타인이 어서 눈을 뜨기를 간절히 바란다.

1.2.2. 눈을 뜨렴, 루시

5월 11일, 박사는 루시 발렌타인을 부르며 그녀를 깨운다. 눈을 뜬 루시는 눈 앞에 있는 박사의 정체를 묻는데, 이에 박사는 "날 못 알아보겠나···. 난 류원 박사다. 그리고 여긴 K 로보틱스 연구실[31] 안이지. 그리고 난 널 만든 사람이다." 라고 대답한다. 루시가 이에 "박사 류원, 나를 만든 사람···." 이라며 상황 인식을 시작하자, 박사는 "그래, 류원. 이게 내 이름이지.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기다만··· 난 류원이다. 자기소개가 너무 늦었구나. ···잊지 말고, 기억하렴." 이라며 다시 한 번 신분을 밝힌다.

1.2.3. 가깝고도 먼 그녀

7월 23일, 박사 류원은 루시로부터 "안녕하세요, 박사님. 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 라는 인사를 받는다. 이에 류원은 "···아, 그래. ···박사님이라, 어째 그 호칭은 익숙해지지를 않는구나. 좀 위화감이 들어서 말이지." 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박사라···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호칭이군. 나도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들었담···. 마음은 풋풋하던 어린 시절 그대로 같은데. 시간이란 참 빠르게 흘러가는군." 하고 중얼거리는데, 이에 루시는 "박사님은 아직 30대 초반이세요. 아직 정정하시다고요." 라고 웃으면서 위로한다.[32]

이에 류원은 "···빈말이나마 고맙군. 그보다 연구소 직원들과는 잘 지내고 있나?" 라며 화제를 돌린다. 이에 루시는 모두 다정하게 대해주고 여러가지 가르쳐 주고 있다고 말한다. 그때 앤드류 라는 로봇이 와서는 류원에게 자료를 건네준다.[33]

그 뒤 앤드류가 자리를 뜨자 루시는 이제 그와는 절친이라고 말하며 웃는다. 이를 본 류원은 잘 적응하고 있나 보구나 하고, 루시는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대답한다.[34] 그 뒤 류원은 오늘은 새로 배운 게 없냐고 묻고, 루시는 새로운 요리법들을 입력받았다고 대답한다. 이에 류원은 다음에 뭐라도 만들어 달라 부탁하고, 루시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다.

1.2.4. 로봇이란 무엇인가

9월 29일, 루시가 느닷없이 찾아오자 박사 류원은 약간 놀라며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이에 루시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루시는 언제쯤 주인님을 만날 기회가 있을까요?" 라고 묻는다. 이에 류원은 순간적으로 놀라 온몸이 굳지만, 이내 태연한 척 하며 무슨 소리냐고 묻는다. 이에 루시는 "루시는 언제쯤 정식으로 발주되어서, 주인님을 만나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요? 만약 루시가 사람이었다면, 매일같이 주인님을 만나는 꿈을 꿀 것 같아요." 라며 자신의 소원사항을 말하고, 이에 류원은 무슨 말을 돌려줘야 할까 생각한다.[35] 그러나 겉으로는 필사적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뭐. 너무 초조해 마라. 그런 날이 곧 올 거야. 이곳 생활도 괜찮지 않니?" 라고 말한다. 이에 루시는 "물론이죠. 얼마만큼 기다리면 될까요?" 라고 묻고, 류원은 "글쎄다, 윗선에서 허가가 있어야 하니 네 바람보다는 길어질지도 모르겠다. 윗선은 그다지 허가를 잘 내리지 않아서 말이다." 라고 대답한다. 이에 루시가 그 이유를 묻자 류원은 "아마, 두려움 탓이다." 라고 대꾸하는데, 루시는 이에 "혹시 사람들은 루시를 두려워하는 건가요?" 라고 묻는다. 류원은 그러자 "···그런 이들도 있지. 나는 아니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은 건 아니지. 연구소 사람들 중에도, 너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어. 내색하지 않는 것 뿐이지." 라고 대답하는데, 이에 루시는 "···잘 모르겠어요. 루시 안에 내장되어 있는 방범 기능 중엔 분명 위험한 것도 있어요. 하지만, 사람에게 위해는 가하지 못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어요. 루시는 로봇 3원칙을 분명하게 따르게 되어 있어요. 사람을 지키기 위한 룰을 따르니까··· 무서워 않았으면 해요." 라고 말한다. 이에 류원은 '아마 루시가 정식으로 발주되는 일은 없겠지. 윗선은 보수적인 자들이니까. 윗선은 위험을 짊어지는 변화를 원하지 않지.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그렇지. 나처럼 생각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아. 그런 이들은 대개 인간에게 환멸을 느낀 자들이니까. 예나 지금이나,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긋고 있지. ···분명히 그녀는 위험해. 그녀는 인간을 완전히 대체가 가능하니까. ···이런 말이 있지, [예술을 알면 미를 알고, 과학을 알면 세계를 알고, 종교를 알면 생명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로봇을 알면 사람을 알게 된다.] 라는 명제도 성립할 지 몰라. ······어쩌면 인간은 자기 자신들에 대해 알게 되는 걸 원치 않는지도 몰라. 로봇을 통해, 자신의 모습이 재조명되는 것이. ······곧 루시를 떠나 보낼 시간이 온다. 그녀와 함께 지낼 날은, 이제 얼마 없어.' 라며 독백한다.

2. 엔딩

2.1. 공통 엔딩

주인공의 반항과 관련된 얘기로 새 아내와 대화하던 아버지는 결국 루시를 집에서 쫓아내려고 하고, 집에서 나가달라고 한다. 이에 루시가 거절하자 기름을 뿌리고는 안 나가면 태워버리겠다고 협박한다. 하지만 집 밖으로 나간 루시가 주인공을 마중하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위험해지면 도망가라는 주인공의 명령을 어기고 집 앞을 떠나지 않자 결국 불을 질러버린다. 마침 집앞에 도착한 주인공에게 루시는 자신을 기억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기능이 정지되어 버린다.[36]

2.2. 잊혀진 기억[37]

루시와의 만남이 이렇게 끝날 바에야 차라리 처음부터 보지 않는 게 나았을 거라고 생각한 주인공은, 결국 루시와의 추억은 전부 잊어버리기로 한다.[38] 그리고···
20년 후[39]
택시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한국과도 이제 안녕이다.
미국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짧은 기간은 아니다.
아마 한동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며 추억에 잠긴다.
이곳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금껏 계속 이곳에서 태어나 자라왔으니까.
이렇게 다른 나라 땅으로 터전을 옮기는 것이 감회가 새롭다.
비행기 시간을 기다려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한동안 비행기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안드로이드가 다가와 기내식 메뉴를 건넨다.
간편하고 먹기 좋은 음식을 주문했다.
주문을 받자 미소를 남긴 채로 로봇이 떠나간다.
그 뒷모습을 잠시 동안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생각이 났다.
......아주 어렸을 적의 기억이었다.
로봇 한 기가 망가졌었다.
이름을 떠올리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루시 발렌타인.
아마도 그런 이름이었을 것이다.[40]
지금 떠올려 보면 정말 철이 없던 시절이었다.
한낱 로봇 한 기에 그렇게가지 울고불고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대단하다고까지 느껴진다.[41]
그때의 나는 정말, 세상이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괴로워했던 것 같다.
철부지 같았고... 또 순수하기도 했던 시절이다.
성숙하기 전의 기억을 떠올리자니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다.
...뭐 어떤가. 누구나 부끄러운 기억이 하나 둘 쯤은 있는 법이다.
그때의 내가 바보 같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립기도 하다.
문득 생각한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난 많이 변해버린 걸까.
...스스로는 잘 알 수 없었다.

휴대폰의 배경화면이 비추는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감상에 잠겼다.
안정된 직장. 높은 사회적 직위.
으리으리한 집과 비싼 외제 차.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아들.
남 부럽지 않게 살아왔고, 남 부럽지 않게 인생을 즐겨왔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때 그대로 로봇에 빠진 채로 성장하지 않았더라면......
어수룩하던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었더라면......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전부 누리며 살아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42]

하지만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 것 또한 사실이다.
······좋든 싫든, 이제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다 큰 어른이 되었으니까.
언제까지고 세상 물정 모르던,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눈이 침침해 진다.
오랜만에 떠오른 그리운 이름을 가슴 한 켠에 묻고는 잠을 청했다.
눈을 뜨고 난 이후, 나는 그 이름을 다시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 것이다.
언제 다시 떠올릴지 기약도 없이 말이다.
그리고 다시 현실에 충실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 진정한 영원[43] #===
10월 12일, 박사 류원은 루시를 불러 오늘은 갈 곳이 있다고 말한다. 루시는 이에 오랜만에 하는 나들이가 되겠다며 기뻐하면서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묻고, 류원은 가까운 곳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먼 곳이기도 하다고 대꾸한다. 그렇게 류원은 비서 로봇 앤드류에게 뒷일을 맡긴 뒤 루시를 데리고 연구소 밖으로 나간다.

밖으로 나온 루시는 목적지를 묻는데, 류원은 이에 "요 앞의 폐기장이다. 가는 이유는··· 가 보면 안다." 라고 대답한다. 그 뒤 둘은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걷기만 하는데···[44] 그러다가 폐기장에 들어서니 루시가 "혹시 박사님은 루시를 버리시려는 건가요?" 하고 입을 열었다.

이에 류원은 "···그래. 나는 오늘 부로 연구소에서 내쫓을 생각이다." 라고 결국 털어놓는다. 루시가 이유를 묻자 류원은 "··· 윗선에서 지시가 있었다, 널 폐기하라고. 분명 넌 구미가 당기는 안드로이드다, 하지만 그걸 이유로 널 받아들이기엔 감당해야 하는 위험이 너무 큰 거지. 많은 이들이 그걸 바라고 있다. 너처럼 인간에 지나치게 가까운 안드로이드가 세상에 내놓아져서는 안된다고, 다들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넌 인간들에게 거부당한 거지." 라고 대답하는데,[45] 그러자 루시는 "···분명, 루시는 훌륭한 안드로이드가 아닐지도 몰라요. ···그래도, 노력하면 더 나은 안드로이드가 될 수 있을 거에요. 그러니까··· 버리지 말아주세요." 라며 필사적으로 류원에게 하소연하지만, 류원은 "미안하구나··· 이제 널 연구소 안에 둘 수는 없어. 이건 너와 관계된 거의 모든 사람의 의지가 담긴 결정이라서··· 나 하나가 반발해서 뒤집을 수가 없단다." 라며 루시의 부탁을 거절한다. 그 뒤 류원은 찢어질듯한 심정으로 "···하지만 그렇다고 널 이대로 폐기하진 않을 거다. 그런 건, 내겐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고로··· 나는 오늘을 기해서, 네게 자유를 주겠다. 넌 이제 누구의 명령도 듣지 않아도 좋고, 어디든지 가도 좋다.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가서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아라. ···그래, 원하는 곳으로 가서··· 좋은 주인을 만나 그 주인과 함께 살아라. 이게··· 내가 내리는 마지막 명령이다." 라고 내뱉었다.

이에 루시는 한동안 침묵하더니, "······그렇다면, 이게 박사님과 하는 마지막 나들이니까··· 이 순간을 소중히 해야 겠네요." 라면서 억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들은 종착지를 향해 마지막 나들이를 계속하기로 하는데···
류원: ······여기까지다. 여기가 종착점이다. 네가 갈 길을 찾아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루시: ·········
루시는 고개를 숙이며 침묵하고 있다. 그녀가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류원: 이제 나는 모든 명령권을 포기하겠다. 너는 이제부터 나를 비롯한 모든 인간의 명령을 듣지 않아도 좋다. 네가 원하는 대로 살아라. 인간을 흉내내며 살아도 좋고, 로봇임을 밝혀도 좋다. 다만 행복하게 살아라.
루시: ·········
그녀는 반응이 없었다. 내 말을 듣지 않고 있는 듯 했다. 멍하니 한 점을 바라보고만 있다. 의아한 마음으로 이름을 불렀다.
류원: ······루시?
루시는 한동안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 모습은 확실히 이상했다.
루시: ·········루시는······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단조로운 어조로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루시: 루시는······ 긴 꿈을 꾸고 있었던 것만 같아요. 아주 기나긴 꿈을, 꾸고 있었던 것만 같아요. ···꿈 속의 루시는 외로웠어요. 즐겁게 지냈지만 마음 속에서는 허전함을 느끼고 있었어요. 항상 웃고 있었지만, 연구소 안은 분명 즐거웠지만······ 다들 루시를 따뜻하게 대해주셨지만··· ···그래도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았어요. 가슴 한 곳이 항상 텅 비어 있었어요. 그게 뭔지 항상 생각했어요. 항상 생각했지만··· ···그렇지만 항상 답은 나오지 않았어요. ······지금에서야, 루시는 이유를 깨달았어요.
그 말에, 내 가슴이 뛰었다.
루시: 여기 이 곳에 이렇게 오고 나서야······
꽁꽁 얼어붙어 있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루시: 루시가 잃어버렸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어요.
떨리는 눈동자가 나를 돌아본다. 그리고 기대에 가득 찬 내 두 눈과 마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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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에요. 주인님.

본편 중간중간에 나오던 박사 류원은 루시를 개발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주인공 자신이었다. 즉 주인공의 이름은 류원인 것이며 이 날은 루시가 죽은 날인 2050년 10월 30일로부터 15년 후의 미래인 2065년 10월 12일인 것이었다.[46] 시열대를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1. 백정필 박사가 루시를 제작 & 폐기장에 버림
2. 주인공 류원이 루시 획득(본편 초반부)
3. 류원의 아버지가 루시를 파괴(본편 엔딩)
4. 이후 어른이 된 류원이 루시를 다시 제작(본편 박사 시점)
이렇게 되는것이다.

이렇게 15년 만에 루시와 재회한 주인공, 류원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류원: ······15년. ···15년이다. 널 다시 만들어내는 데 걸린 시간이다. 그 날 집 앞에서 너를 잃은 이후부터, 지금 이 자리에 서기까지···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렇게 싫어하던 로봇 공학을 전공하고, 밤낮으로 공부했다. 전 세계의 저명한 학자들을 찾아 다니며 자문을 구했다. 파손된 부품을 수선하고··· 대체 부품을 만들어냈다. 내부 기관을 연구하고··· 어렵기만 하던 각종 기술들을 끝끝내 구현하고··· 못 쓸 정도로 망가져 버린 메모리를 복구하는 데에도 피나는 노력을 했다. 전부······ 전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15년이라는 시간이 걸려서야······ 나는 겨우 너를 다시 재현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다시 깨어난 너는,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결국 기억의 복구는 실패했던 것이다. ······이후 나는 너에 대해 아무런 확신도 가질 수 없었다. 예전 일을 정말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네 모습이··· 나를 주인님이 아닌 박사님이라고 부르는 네 모습이···[47] 하루라도 빨리 주인님을 만나고 싶다고 전하는 네 목소리가··· 낯설기만 한 네 몸짓과 미소가··· ···예전에 알고 있던 루시와 동일한 것이라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네가 만일 내가 알고 있던 루시가 아니라면··· 나를 좋아해주던 그 루시가 아니라면······ ···그렇다면 너는 새 주인을 만날 기회를 얻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새로운 인생에는, 나보다 어울리는 또 다른 주인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마음은 아프지만 그게 너를 위한 것은 아닌가 하고······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너를 떠나 보내려고 마음 먹었다. 처분 결정은 내 의지를 조금 더 확고하게 했을 뿐이다. ······마음 속으로 이별의 날은 10월 12일로 잡고 있었다. 그 날이 너와 처음 만났던 날이니까. 처음 만났던 그 날, 그때 그 장소에서. ······그렇게 너에게 작별을 고하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 온 것이다. ······하지만.
목이 막혀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류원: ······하지만 넌 기억해 주었다. 이제서야 겨우 나를 기억해 주었다. 기다리다 녹초가 될 정도로 늦었지만··· 정말 진이 빠질 정도로 오랫동안 기다린 셈이지만······ ······너는 그래도 나를 기억해 주었다. 제대로······ 날 기억해 주었다.
루시: ······루시가. 루시가 분명 말했었지요? ······기억하겠다고. 주인님과 만났던 이 장소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기억하겠다고. 절대로··· 이 장소만은 잊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분명히 말했었지요?
류원: ······그래. 그러니까 이제 나는 믿을 수 있다. 그때 엉망진창으로 파손된 네 안에도···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메모리 칩 안에도······ ······여전히 너임을 증명해 주는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는 것을. 네가 예전의 루시라는 사실을······ 이젠 믿을 수 있다.
루시: ······루시도. ······아니.
그녀는 고개를 젓고는 말을 교정한다.[48]
루시: ···저도 이제는 믿을 수 있어요. 주인님은 15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변함없이 저를 필요로 하고 있어요. 이대로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또 30년 후에도. 주인님은 분명 변치 않고 저를 필요로 해 주시겠지요. 저는 이제 믿을 수 있어요. 주인님이 바라던 영원을 믿을 수 있어요.
내가 바라던 것. 내가 진정으로 바라던 영원. 어느새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입을 열려고 하니 짠 맛이 났다.
류원: ······긴 시간이었다.
루시: 긴 시간이었어요.
류원: ······정말 괴로운 나날들이었어.
루시: 이제는··· 이제는 편히 쉬어도 된답니다.
류원: 그동안······ 너무 외로웠어.
루시: 더는 외롭지 않을 거에요.
류원: ······많은 것들을 잃어 버렸어. 너와 함께 해야 했던 시간들을······ ······즐거워야 했을 그 시간들을. ···15년에 걸친 기나긴 시간을······ 전부 잃어버리고 말았어.
루시: 되찾을 수 있어요. 이제부터라도··· 반드시 되찾을 수 있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서서히 되찾아 나가기로 해요. 둘이서 힘껏··· 시간을 되돌리기로 해요.
류원: 난······ 나는 아직 불안해. 네가 바라보는 나는······ 정말 예전 그대로의 나일까? 나도 모르는 새에 변해 버리지는 않았을까?
루시: 변하지 않았어요.
류원: ······모습도 이제는 완전히 아저씨가 되어 버렸어. 아랫배도 나오기 시작했고··· 잔주름도 많이 늘었어.
루시: 아무것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답니다.
류원: 꺼끌꺼끌한 수염도 났고. ······피부도 예전 같지 않아. 그래도······ 이런 볼품없는 아저씨라도 좋다면······ 날 따라와 주겠나? 앞으로도······ 나와 같이 지내 주겠나?
루시: ······물론이에요. 제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주인님은, 정말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으니까. 여전히··· 제가 좋아하던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이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까. 저는 항상 주인님의 곁에 있을 거에요. 영원히······ 주인님과 함께 있을 거에요.
그 한 마디가······ 그 한 마디가 나를 구원해 주었다. 긴 세월에 찌들어, 너무나도 지쳐 있던 내 정신을. 오직 그녀의 한 마디만이 제대로 보듬어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할 수 있었다. 단지 그것 하나만으로도······ 지금까지 해 왔던 모든 고생을 보상받을 수 있었다.
···루시는 모조품이다. 세상에서 가장 인간과 근접한 모조품이다. 다만··· 내게 있어서 그것은 진짜보다 훨씬 커다란 가치가 있었다. 지금 내 눈 앞에서, 나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모습은······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존재였다. 그러므로··· 두 번 다시 잃지 않을 것이다. 이미 한 번 손에서 떼어 놓아야 했던 소중한 것을··· ···이제 다시는 품 안에서 떼어 놓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바라는 영원을······ ······그녀와 함께 살아 나갈 것이다.

이렇게 해서 류원과 루시의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3. 특전 시나리오

3.1. 초로의 기억[49]

시간이 흘러 노인이 된 류씨, 그는 창틈으로 들려오는 새 소리에 눈을 뜬다. 그 뒤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쳐 소리와 빛을 차단한 뒤, 다시 침대에 앉는데···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겉보기엔 손녀 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 들어왔다. 그녀는 밥 다 되었는데 어쩌겠냐고 물었고, 류씨는 가져오라고 지시한다.

이에 여성은 이동식 식탁을 가져와 침대 앞에 놓았고, 식단을 본 류씨는 지금 몇 시냐고 물었다. 그 뒤 류씨는 식탁 위에 있는 커피를 들이키고는, 식사를 가져온 여성에 대해 잠깐 생각한다.[50] 그러다가 문득 실버가 자신의 집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를 묻는데, 이에 그녀는 올해로 정확히 10주년이 된다고 대답한다. 그 말에 류씨는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나 하며 회상에 잠기고,[51] 이에 실버가 왜 그러냐고 묻자 류씨는 그냥 나이를 먹으면서 옛 기억들이 이것저것 떠오른다고 대답하면서 다시 상념에 잠긴다.[52] 그러다 입 맛이 없다면서 그만 먹겠다고 하는데, 이에 실버가 그럼 건강검진을 하자고 하니까 그냥 묵묵히 따라오게 한다.[53]

그 뒤 가게 문을 열려고 나서는데, 이에 실버가 "검진 결과 주인님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오늘은 그냥 쉬는 게 어떠십니까." 라며 류씨를 만류했다. 그러나 그는 괜찮다며 계속 나서려 했고, 이에 실버도 "가게 일은 제가 해도 됩니다. 도둑이 들어도 다치지 않게 제압 가능하고, 알람 기능으로 5분 안에 경찰도 부를 수 있습니다." 라며 계속 만류했다. 그러나 류씨는 "사람에게 거역 못 하는 네가 어떻게 도둑에 맞서냐? 됐으니까 집이나 봐라. 집에 도둑이 들면 어쩌려고?" 라며 그녀를 뒤로 한 채 출근했다.[54]

출근한 류씨는[55]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다가[56] 실버가 가져온 도시락을 먹는다.[57] 그러면서 류원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몹쓸 녀석. 얼굴 한번 안 비추면서 겉으로는 온갖 걱정을 다 하는 척 하는구나. 남들에게 얘기할 때는 항상 그러더군. 말로는 있는 말 없는 말 다 하면서 신경쓰는 척 생색은 다 낸다고. 누가 보면 지극 정성으로 효도하고 있는 줄 알 거야. 근데 정작 얼굴은 코빼기도 안 비춘다니까. 어떻게 되먹은 놈인지 르겠다. 자식이라는 게 이렇게 다 소용 없는 게야. 머리가 좀 크면 지 할 일만 하고 부모는 뒷전이니 원. 쯧쯧······[58]
외람된 말씀이오나 주인님, 다시는 얼씬거리지 말라며 2년 전 생신 때 찾아온 아드님을 집 밖으로 쫓아낸 것은 주인님이셨습니다.
그 녀석이 자꾸 얼토당토 않는 말만 하니 그렇지! 녀석이 하는 말마다 내 속을 살살 긁는데 어떻게 화나지 않고 배기겠나?[59]
아드님 입장에서는 그래도 주인님이 매정하게 느껴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난 잘못한 거 없다.
저 멀리 해외에서 주인님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찾아왔던 것인데, 작은 말다툼 때문에 그렇게 쫓아낼 필요는 없지 않았을지.
······그 얘기는 이제 그만 하거라. 어차피 한두 번 싸우는 것도 아니다. 늘 상 있는 일인 거 너도 알잖느냐.
하지만 이번에는 냉전 기간이 조금 긴 듯 싶습니다. 평소라면 말다툼을 하고 헤어진 후에도 몇 개월 후 명절 날에는 아무 일 없이 다시 찾아오고는 했습니다. 주인님께서 생각하시는 것 이상으로 감정의 골이 깊게 패인 것은 아닌지 염려됩니다.[60]
······요새 아들 녀석은 뭘 하고 있지?
순조롭게 사업을 진행하고 계신 듯 합니다. 해외 출장을 끝내고 1주일 전에 한국에 돌아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지금 한국에 있나 보구만.[61]
외람되지만 주인님께서는 아드님께 너무 화를 내는 경향이 있으십니다. 감정을 조금은 억제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62]
내가 아니라 그 놈 편을 드는 게냐?
편을 드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아드님과 화해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감정을 다스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을 드리는 겁니다.
나라고 화를 내고 싶어서 화내는 줄 아나? 화내고 싶지 않아. 그런데 녀석이 내 앞에서 하는 꼴을 보고 있자면 도무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거야. 엉뚱한 짓만 하는 그 녀석 잘못이지.[63]
그것은······ 가족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요?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 말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기에······ 무의식적으로 서로에게 일정 부분 마음을 의탁하고 있는 부자 관계이기 때문에 타인을 상대할 때처럼 감정을 다스릴 수가 없는 것이 아닐까요? 주인님께서 아드님을 대하실 때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경우는 좀처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저는 안드로이드입니다. 안드로이드이기에 주인님께서 느끼고 계신 감정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인지를 완벽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부정적인 부분, 불필요한 부분은 감정 모듈 내에 프로그램 되어있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느낄 수 없는 저로서는, 때로는 그런 인간적인 부분이 부럽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흥, 실없는 소리를 하는 구나.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비슷한 녀석이 있었지. 언제인지 기억도 잘 안 나는구나. 아주 옛날 얘기야. 아들 녀석이 이상한 안드로이드를 집에 가져온 적이 있었다. ······그 녀석은 너와는 조금 달랐어. ······그래. 마치 인간처럼 떠들어대던 녀석이었지.
인간처럼 말입니까?
얼굴이나 목소리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 원체 오래 전 일이니. 하지만 대단히 시끄러운 녀석이었다는 거 하나만은 기억하고 있다. 로봇 주제에 건방진 소리를 지껄이던 녀석이었지.
······주인님께서는 말을 많이 하는 타입의 안드로이드를 싫어하시는 줄로만 알았습니다만··· 실례로 저는 최소한의 말만 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습니다.
싫어했지. 지금도 질색이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아들놈과 많이도 부딪혔지.
어떻게 하셨습니까?
뭐가 말이냐?
안드로이드 말입니다. 어떻게 하셨습니까?
글쎄다. 어떻게 했었지.
집에다 두고 계속 사용하셨습니까?
······오래 전 일이야. 이미 잊어버렸다.[64][65]
······주인님. 아드님과의 화해를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떠십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거라. 일 없다.[66]
쓸데없는 소리였습니까? 아드님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만. 화해하고 싶지 않으신 겁니까?
시끄럽다. 이런 건 아쉬운 놈이 먼저 굽히고 들어오는 거야. 내가 뭐가 아쉬워서 그래야 되나? 내 눈에 흙이 들어와도 그런 짓은 못 해!
······주인님. 저는 오래 전부터 주인님을 봐 왔습니다. 그렇기에 주인님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거라 자부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인님에게 있어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알고 있습니다. 또한, 주인님께서 실제로는 무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시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너 오늘 좀 이상하구나.
주인님. 자존심보다 휠씬 더 소중한 것을 잊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자존심을 지키는 것보다 휠씬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무언가가 있지는 않으신지요? 한 순간의 체면 치레보다는 오랫동안 방치해 둔 응어리를 푸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 아닐런지요?
물론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해 보이지만 실행하기는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도 여러 데이터를 통해 인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님. 때로는 자존심을 굽히는 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곧 주인님의 환갑 생신이 돌아옵니다. 어떻겠습니까? 여느 때처럼 지인들과 모여서 추억을 곱씹는 것도 좋지만, 이번에는 조촐하게 아드님과 둘만의 시간을 가지시는 것은?
······오늘따라 수다쟁이로구나. ······그래. 가끔은 아들 녀석과 진득하니 앉아서 얘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렇다면 바로 일정을 짤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런데 주인님, 이번에는 제가 직접 아드님을 찾아가서 이 얘기를 전해드릴까 하는데 어떠십니까?[67]
일부러 찾아갈 필요가 있나?
이번 해에도 여느 때처럼 안드로이드 기사가 제 새로운 기체를 가치고 이 곳에 방문할 예정입니다.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지 않도록 이 기회에 제가 직접 가서 얘기를 전하는 쪽이 빠르지 않을까 합니다. 직접적으로 내용을 전달할 수 있고, 또 가는 김에 몸체도 교환을 하고 돌아오면 편하지 않을까 하고······ 물론 제가 없는 동안 주인님께서 조금 불편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게 편하다면 그렇게 하거라. 너 없을 때도 잘만 살아왔다. 이제 와서 무슨 문제가 있다고 그래.
알겠습니다. 즉시 이동할 준비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앞으로 바빠지겠구나.
그리고 며칠 뒤, 실버는 자신의 일정을 이야기하며 근처의 평이 좋은 음식점 목록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마음에 차지 않는 부분이라도 있으십니까?
도무지 뭔지 모르겠구나.
뭐가 말입니까?
아들이 좋아하는 것 말이다.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항상 알아서 사먹겠지 하고 용돈을 쥐어주기만 했으니까.
남들이 들었다면 어떻게 아들이 좋아하는 것도 모르냐고 핀잔을 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실버는 그런 말 대신에 류원이 좋아할 만한 음식의 목록을 적어 건네주었다. 아버지인 자신보다 안드로이드인 실버가 아들을 더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지만,[68] 이내 실버를 떠나보낸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일시적으로 혼자만의 삶을 지내는데, 일정 자체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실버의 도움 없이 혼자서 지내는 건 아주 어려웠다. 아침을 챙겨 먹기가 번거로워서 한끼를 거르고 매점을 열었지만, 배가 차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하자니 금방 지쳤다. 점심도 실버가 챙겨주는 게 없다 보니 매점에 진열된 주먹밥 몇 개로 때웠다.[69]

일하는 중간에 시간을 내 생일상을 예약하고, 퇴근해서는 또 매점의 군것질거리로 저녁을 때웠다. 그리고는 벗은 옷을 잘 개어두거나, 샤워를 한 뒤에는 세탁기를 돌리고 물건들을 정리했다.[70] 젊지 않은 몸으로[71] 가사 일을 하다 보니 고단함과 실버가 가사 일을 해 주던 것에 대한 고마움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류씨가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삭막함이었다. 물론 실버가 말을 많이 하게끔 설정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가사 일을 하면서 누군가가 존재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시계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주위에 아무도 없이 완전히 혼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 출근할 때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고, 집에 돌아가도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상상외로 힘들게 다가왔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부분을 실버에게 의지하며 살아왔는지를, 그토록 싫어하던 안드로이드가 얼마나 많은 부분을 지탱해주고 있었는지를 피부로 체감할 수 있었다.

그날 밤, 류씨는 문득 어릴 적의 류원의 모습을 상상했다. 쥐죽은 듯이 조용한 집 안에서, 식탁 위에 따뜻한 음식 대신 덩그러니 놓여 있었을 몇 푼의 돈. 그것을 시무룩한 얼굴로 집어 들고 있을 어린 아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시계 소리만 들으며 류원은 무슨 생각을 했을지, 매일 밤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부모를 기다리며 혼자 어떤 기분이었을지, 그리고 루시 발렌타인이 류원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였을지도 상상하며[72] 류씨는 밤잠을 설쳤다.

다음 날, 씻고난 뒤 류씨는 시간을 때울 겸 집안을 살펴본다. 실버가 항상 청소해주는 만큼 집안은 깨끗했기에, 류씨는 식탁보를 바꾸거나 장식을 하는 정도만 했다. 그러면서 류씨는 "생각해 보면 식탁에서 가족끼리 단란하게 진득하니 밥을 같이 먹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야말로 예전에 하지 못했던 단란한 식사 시간을 가졌으면 하고 바란다." 라고 생각한다.[73]

오후 5시가 넘어 주문한 음식을 받고, 나름대로 분위기를 잡고자 노력도 하고, 오랜만의 식사 자리를 평소처럼 싸우다가 끝낼 생각은 추호도 없다면서 류원과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을지도 머릿속에 그려봤다.[74]

그리고 밤 9시 30분이 지날 무렵, 초인종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처음 보는 안드로이드가 서 있었다. 그녀가 실버일 것이라 짐작한 류씨는 류원은 어딨냐고 묻지만, 돌아온 대답은 "일정이 바빠서 시간을 낼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죄송합니다." 였다. 아들이 오지 않음에 실망한 류씨에게, 그녀는 류원으로부터 편지를 받아왔다는 걸 알려주고 류씨 대신 그것을 읽는다.
아버지께.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2년 만에 이렇게 편지라는 수단을 통해 찾아뵙습니다. 먼저 생신 축하 드리며, 환갑 잔치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올리고 싶습니다. 직접 찾아가는 것이 도리이겠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이렇게 편지 한 통으로 답변을 대신하는 아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아버지와 얼굴을 맞대지 않고 지낸지도 벌써 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2년간은 제게 있어서 여러모로 생각할 시간을 주는 가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서로 다투기만 했던 부자지간, 서로의 얼굴을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려야만 했던 삐뚤어진 부자간의 관계에 대해, 저는 그간 넘치도록 많은 생각을 해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간 많이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와 저는 왜 별 일 아닌 일에도 성을 내야만 했는지, 서로의 의견이 부딪힐 때 왜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지, 왜 충돌을 피하지 못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많이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을 해봤습니다. 왜 아버지께서 저를 못마땅해 하시는지 머리로 이해하려고 해봤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의 입장에 서서 많은 생각을 하다 보니 이제는 아버지의 입장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제게 뭘 바라시고, 제 행동에서 어떤 것을 기대하고 계시는지도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버지. 아버지와 저는······ [75] ······아버지와 저는 처음부터 서로 맞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합니다.[76] 아버지에게 개인의 생활과 사고 방식이 있듯이, 저에게는 저만의 생활과 사고 방식이 있다는 것을 근 2년간 깨달았습니다. 서로 양보할 수 없는 가치관이 있다는 것을, 절대로 맞물릴 수 없는 사고 방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얼굴을 보지 않고 살았던 2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저는 서로 얼굴을 마주치지 않아야만,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야만 저도 아버지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서로 충돌하는 사이가 있다고 합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가 그렇듯이, 결국에는 서로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는 그런 사이가 있다고 합니다. ······아버지. 어쩌면 우리 부자는 처음부터 그런 관계로 태어났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올곧은 모습으로 아버지의 삶을 살아 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께서 바라던 모습은 아니겠지만 저 역시 제 나름대로 잘 살아나갈 생각입니다. ······이제 더 이상 얼굴을 마주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안드로이드가 제 몫까지 성심 성의껏 아버지의 수발을 들어주겠지요.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그럼 안녕히.
류원의 편지는 이렇게 끝났다. 류씨는 눈을 감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 앞으로 두번 다시 만나지 말자'는 내용의 편지를 받은 충격을 음미했다.

====# REUNION[77] #====
그런데 어디선가 흐느낌이 들렸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내는 소리였다. 그녀를 본 류씨는 기억 속에서 그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루, 루시입니다. 루시··· 발렌타인입니다. 아버님.[78]
편지를 읽고 눈물을 흘리는 루시에게 류씨는 그녀를 위로하려는 듯, 옛날 이야기를 하듯 허탈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는······ 열심히 살아왔다.
노인은 한 평생을 바쁘게 살아왔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일 하나만큼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했다고 자신할 수 있다.
노인은 회사 내의 누구보다도 훨씬 열정적으로 일했다. 남들은 기피하는 야근도 솔선해서 지원했다. 실적도 항상 상위권을 유지했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선망을, 상사로부터는 무한한 신뢰를 얻었다. 회사 내에서 노인의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늘어만 갔다.
뚜렷한 실적을 올리고, 여러 큰 계약도 따오고 하다 보니 자연스레 회사 동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더구나. 그러면서 회사에 애착도 생겼지. 열심히 일하다 보니 부가적으로 승진도 딸려왔다. 시작은 일개 사원에 불과했지만 어느덧 과장이 되어 있었다. 중소기업에 속하던 회사가 나름대로 인지도를 얻을 즈음에는 부장이, 또 나중에 입지가 탄탄해졌을 때는 상무 이사가 되어 있었다. 나중에는 능력 있는 타 회사 여사원과 마음이 맞아 재혼을 하기도 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일밖에 모르는 여자였지. 어쩌면 그 부분에서 마음이 맞았다고 할 수도 있겠구나.
추억을 회상하듯이 노인은 작게 미소 지었다.
끝내는 회사에서 큰 실수를 저질러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해야만 했지만······[79] 내가 쌓아 올렸던 것들이 쉽게 이룰 수 있는 것들은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아무 연줄도 없는 내가 일개 사원부터 시작해서 상무 이사의 자리까지 올라가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보통 노력으로는 이뤄낼 수 없는 일이었다. 내 피와 땀방울이 모여서 만들어진 결실이다. 하지만 시간은 유한하다. 시간을 투자해서 얻는 것이 있다면, 반대로 그 시간 때문에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도 나오게 된다. ······그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서 버려야만 했던 것도 있었다. 아들과의 시간, 아내와의 시간, 가족과의 시간. ······나는 일을 위해 그런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가족과 즐겁게 지낼 수도 있었던 여가 시간을 전부 일을 위해, 회사를 위해 투자했다. 그렇게 독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나는 성공할 수 있었던 게다. 아들이 일밖에 모르는 내 모습을 싫어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첫 아내(류원의 친모)도 마찬가지였지. 결국 참지 못하고 도망가 버렸으니 말이다. 나는 아버지로서, 그리고 남편으로서는 그리 좋은 남자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본받기를 바랐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를, 열심히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얻어 내는지를. 그런 내 모습을 아들이 보고, 내 모습을 본받아서 아들 역시 나처럼 열심히 살아줬으면 했다.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면 결국은 이렇게 인정받게 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싶었다.[80] ······허나, 결국 난 아들의 존경을 얻어내는 데에는 실패한 모양이구나.[81]
어느새 루시는 울음을 그쳤다. 슬픈 눈으로 노쇠한 목소리를 경청하고 있다.
아들 탓이라고 변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후회하는 것도 아니다. 후회라는 말을 쉽게 써버릴 정도로 내가 겪었던 삶이 가치가 없지는 않다.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나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게 내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 말이다. 다만······ ······다만, 좀 더 융통성 있는 방법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살아왔던 방식보다 좀 더 나은 방식이······ 내 1순위는 언제나 일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2순위인 가족을 조금 더 소중히 할 수 있는 방법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다 못해 일주일에 한두 번 씩이라도······ 가족끼리 모여 저녁 식사를 즐기는 것 쯤은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82]
자신의 옛날 이야기를 끝낸 류씨는 "···아니, 이제 됐다. 이제 나에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데, 이런 푸념 따위 해봤자 소용 없겠지." 라며 상을 치우려 일어섰다.

이에 루시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며 올해가 아니더라도 내년, 내후년이 되더라도 꼭 류원을 데려오겠다고 말한다. 류씨는 부디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답하며 루시의 머리를 인간을 대하듯, 손녀를 대하듯 쓰다듬으며 이렇게 생각한다.
지금의 자신은 이렇게 안드로이드를 쓰다듬을 수 있게 되었다. 아주 자그마한 변화일 뿐이지만, 분명 예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변화를 서로 반복해서 거쳐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기나긴 앙금도 풀릴 일이 오지 않을지. 그런 희망을 담은 기대를 해 본다.[83]
그 뒤 발자국 소리와 함께 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84]

3.2. 백정필 박사의 일기[85]

···루시 발렌타인. 그녀는 너무나도 뛰어났다. 내가 만들어 낸 최고의 발명품······ 아니, 아마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이전까지 누구도 구현해내지 못했던 완벽한 인간의 대체자. 나는 그렇게 대단한 것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인간처럼 사고하고, 인간처럼 행동하는 것이 가능한 존재. 1차 2차 3차 산업의 모든 면에 걸쳐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가능하다. 누구나 한번쯤 상상 해봤을 법한 완벽한 로봇인 것이다.
······그래. 그렇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아무 생각 없이 세상에 내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인간은 그런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지 못하므로. 인간은 언제나, 인간 이외의 우월성 지닌 것을 거부해 왔으니까. 안드로이드가 뭐가 우월하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어차피 사람에 의해 창조된 것일뿐, 생명체도 뭣도 아니니까. 그런 것이 인간보다 대단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가치는 언제나 변한다. 예전에는 땡전 한 푼의 가치도 없던 사이버 머니가 지금은 현금보다 비싸진 것처럼. 처음에는 단순히 공 차는 놀이에 불과했던 구기종목들이 큰 돈이 오가는 사업으로 발전한 것처럼. 가치라는 것은 그렇게 무형에서 유형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생명의 가치라는, 지금은 말초적이고 설명할 필요가 없는 고귀함 조차 나중에 가면 아무 의미가 없어질지도 모른다.[86] 안드로이드에게는 반영구적인 수명이 있다. 인간처럼 금방 죽어버리지 않는다. 어딘가 망가지더라도 금방 대체가 가능하다. 그 밖에도 여러가지 장점이 있다. 인간이 가지지 못하는 장점이 많다. 생명체가 아니고,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하지만 그 실속은 어쩌면 인간보다 훨씬 더 뛰어난 존재일런지도 모른다. 나중에 안드로이드가 범람해 있는 세계에서는······ 어쩌면 인간보다 그런 것들이 대단하게 취급 당할 지도 모른다. 이런 위험한 상황을 상정하고,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솔직히, 솔직히 말해서 나도 무섭다. 그녀와 닮은 수천, 수만, 수십만 명의 로봇들이 세상을 활보하고 다닌다면··· 그런 가정을 하면, 그 안에 과연 인간의 자리는 있는 것일지. 그 시대에 아직도 인간의 고귀함을 지키고 있을 수 있는 것일지······ 자신이 없다. 따라서, 나 역시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한다. 그녀를 폐기해야 한다는 의견을 이해는 할 수 있다. 나 역시 하나의 인간이니까. 또한 내 아들의 전례 역시 있으니까.[87]
하지만 그걸 부수는 꼴은 도저히 볼 수가 없다. 평생에 걸쳐 만든 내 최고의 역작을 한 순간에 무로 되돌리라니······ 그건 내게 있어서 사형 선고나 다름 없다.[88] 그렇기 때문에 나는 루시를 몰래 폐기장에 버리려고 했다. 한때 연구소의 관계자였던 제리얼 군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로 인해 생길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나에게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또 다시 그에게 큰 빚을 지게 된 셈이다. 폐기 로봇이 처리하지 못하도록 인식 코드를 바꿔 놓았다. 대부분의 고급 기능을 쓰지 못하도록 여러가지 제한을 걸어놓았다.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그런 조치를 취했다. 평범한 사람이 가져간다면 풀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제반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용하는 게 불가능은 아닐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미련을 그런 식으로 담았다. 그렇게 나는 루시를 폐기장에 덩그러니 놓고 돌아가 버린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기대했다. 누군가가 나타나서 이 로봇을 사용해 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내일이 될 수도 있고, 수 개월 후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수십 년 후에야 겨우 발견될지도 모른다.
미래의 일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루시가 누군가에 의해 쓰여지기를 바랐다. 이대로 그녀가 빛을 보지 못한 채 사라진다면, 내 인생의 의미가 전부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되니까 말이다.[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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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우에 따라 주인공 외 시점으로도 이야기가 진행되기에 편의상 시점이 아닌 시간 상으로 서술하고, 또한 게임 스토리에 있어서 트루 엔딩으로 가는 루트가 정사로 인정되는 관계로 편의상 트루엔딩으로 가는 선택지를 고른 경우만 서술한다. [2] 본인 말로는 자연친화적인 성향의 소유자라고 한다. [3] 싫어도 기계를 마주하는 세상에서 일부러 관심을 두고 싶지는 않다. [4] 회사에서 버린 물건들을 처분하는 곳으로 원래 출입 금지 지역인 폐기장이지만, 원래부터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라 넘는 건 쉽다고 한다. [5] 이 무렵은 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생김새만으로는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별할 수 없어서, 기계임을 인식 가능한 코드를 달아두었다고 한다. 주인공이 안드로이드임을 알 수 있던 것도 배에 새겨진 PIM-001 이라는 코드 덕이었다. 참고로 PIM이란 Precision Instrument for Multi-purposing(다목적 정밀기기)의 머리글자다. [6] 버림받지만 않았다면 누군가의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았을 거라고, 제작 목적은 몰라도 공개되기도 전에 부숴진다는 건 안타깝다고, 만들기 위해 쏟았을 인력과 노력이 아깝다고, 또한 앞으로 쓰여야 할 기능이 아깝다고, 주인공은 생각했다. [7] 아침 일찍 나가 밤 늦게 들어오며, 아예 안 들어오는 날이 더 많을 만큼 주인공을 돌보는 일에는 소홀히 하고 있었다고 한다. [8] 이때 첫번째 때에는 그녀가 너무 목을 강하게 조르는 바람에 주인공이 질식사할 뻔했다고 화내는 웃기는 장면도 나온다. [9] 이때 주인공은 그녀의 피부의 질감도 온도도 너무나 사람과 유사하다는 생각에 다시금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동시에 그게 분명한 인간의 모조품의 것이라는 사실에 약간의 두려움도 느낀다. [주웠다] 말을 들은 주인장은 "뭐, 이걸 주웠다고? 거 참, 버린 놈이 엄청난 부르주아였나 보군. 대중화되기는 했어도 아직은 고가품이건만··· 확실한 건 삼류 회사의 잡동사니는 아니군. 어디 자세히 볼까? ······P···IM···? 이건 K 로보틱스의 제품이군." 이라고 말한다. 이에 주인공이 "K 로보틱스요? 라벨도 없는데 어떻게 알죠?" 라고 하자 "저기 보이는 큰 회사 말이야. 안드로이드에는 저마다의 노하우가 묻어나는 법이거든. 이건 신형인데, 이 정도 기술력이 있는 회사는 세계적으로도 저기 뿐이야. 근데······ 이 방면엔 도사님인 나도 처음 보는 디자인이란 말이지. ···너 혹시 저 회사 사장 아들이냐? 아니라면 땡 잡았군. 이건 발주는 커녕 정보 공개도 안 된 신품이야." 라고 말한다. [하늘] 말을 들은 주인장은 "말하기 싫다 이거구나? 뭐, 좋아. 그런 걸 억지로 캐물을 생각은 없으니까. ···확실한 건 삼류 회사의 잡동사니는 아니군. 어디 자세히 볼까? ······P···IM···? 이건 K 로보틱스의 제품이군." 이라고 말한다. 이에 주인공이 "K 로보틱스요? 라벨도 없는데 어떻게 알죠?" 라고 하자 "저기 보이는 큰 회사 말이야. 안드로이드에는 저마다의 노하우가 묻어나는 법이거든. 이건 신형인데, 이 정도 기술력이 있는 회사는 세계적으로도 저기 뿐이야. 근데······ 이 방면엔 도사님인 나도 처음 보는 디자인이란 말이지. ···너 혹시 저 회사 사장 아들이냐? 아니라면 땡 잡았군. 이건 발주는 커녕 정보 공개도 안 된 신품이야." 라고 말한다. [폐기장] 말을 들은 주인장은 "뭐, 폐기장? 설마 저 회사의 폐기장 말야? 배짱도 좋네, 걸리면 벌금이 얼마인 줄 알아?" 라고 하지만, 그 이상 문제삼거나 신고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13] 이때 주인공은 주인장의 생명체라는 말에 실제로 이런 사람들(안드로이드를 인간과 같은 인격체로 대우하고 그들과 교감을 나누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단 걸 알고 놀란다. 게임 내 세상에서는 안 그래도 이 부분은 한참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며, 주인공 자신도 기술의 발전이 낳은 폐해이자 선진문명이 만든 사회악 이라며 학을 뗀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선 "세상엔 전자 생명체 복제 생명체 사이보그도 있으니 로봇을 인공 생명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라면서, 생명체라는 말을 쓴 게 그렇게 이상하게 볼 것은 아니라고 여기는 플레이어도 몇 있다. [14] 실은 주인장이 먼저 선심을 쓴 건 아니고 주인공이 가격 좀 깎아주면 안되냐고 하자 주인장이 특별히 들어준 거다. [15] 참고로 이 학교는 2년째 재학 중인 고등학교 라고 한다. [16] 이 녀석은 주인공과 완전히 반대되게, 기계류를 좋아하고 매사에 긍정적이라고 한다. [17] 그러나 주인공은 항상 매점에서 사오는 군것질거리로 끼니를 때우는 반면 기박사는 가정용 안드로이드가 항상 싸주는 도시락을 먹는다고 한다. [18] 이 정도의 안드로이드를 보유하는 건 평범한 가정에선 어렵다고 한다. 기박사는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이게 사실이든지 아니면 부모 중 누군가가 로봇 공학자일 것이다. [19] 본인이 말하길 "감정의 절제는 지성인의 미덕" 이기도 하고, 로봇에게 놀랐다는 사실도 인정하기 싫어서란다. [20] 이때 주인님 외에 다른 걸 입력하면 루시에게 주인공이 "난 김미남이야." 라고 대답하는데, 이에 루시는 "주인님! 거짓말은 안 돼요! ···아, 아니 주인님이 못 생겼다는 게 아니에요! ···그냥 주인님이 이름을 입력하시는 걸 봤거든요." 라고 대답한다. [인간] "즉, 루시가 실은 로봇으로 변장한 인간이었다는 말이잖아요. 저 속에 사람이 탑승하고 있는 거죠?" 라고 주인공이 말하자, 주인장은 할 말을 잃는다. [저주] "즉, 루시가 실은 저주에 걸려서 로봇으로 변해있던 공주님이고,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왕자님의 키스가 필요하다는 얘기잖아요." 라고 주인공이 말하자, 주인장은 진심으로 가여워하는 눈빛을 보낸다. [23] 이때 루시에게 인사하는 주인장의 얼굴은 마치 자기 딸을 보는 팔불출의 아버지 마냥 헬렐레 풀려 있었다고 한다. [24] 그 중에서 향수가 있었는데, 즉 주인공은 향수 냄새를 맡은 거였다. [가볍다] 이에 루시는 혹시 빈말 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고, 이에 주인공은 '끙, 너무 갈궜나? 방어본능을 숙지하게 됐군. 이 이상 피해망상이 심해지기 전에 좀 더 다정하게 대해야 겠어.' 라고 생각한다. 그 뒤 루시가 기분 좋다는 듯 웃자 '로봇도 보통 여자처럼 가볍단 소리 들으면 기분 좋나? ···모르겠다, 로봇의 마음을 인간인 내가 알 리가 없지.' 라고 주인공은 생각한다. [무겁다] 루시가 주인공에게 어울리는 갸름한 로봇이 되게 다이어트라도 하냐고 하자, 주인공은 "불가능한 소리 마. 내부 기관이라도 뜯어다 버리게?" 라고 응수한다. 이에 루시가 분위기 좀 내봤을 뿐이라며 툴툴대자, 주인공은 '마치 인간 여성 같은 반응이군. 이런 식이니 여태까지의 가치관이 뿌리채 흔들리고 있어. ···아냐, 상대는 로봇이야. 로봇이라고.' 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타이른다. [27] 이 부분에서 주인공은 '본인이 스스로의 성격을 단정하다니, 보통이라면 웃기는 소리라며 무시했을 이야기군. 성격은 거울과 같은 거라 다른 누군가의 존재가 있어야만 그들의 판단을 통해 객관적인 검증이 가능한 것, 스스로 왈가왈부 해봐야 본인의 희망사항을 떠들어대는 것에 불과하지. ···인간이라면. 하지만 이 녀석은 안드로이드, 그러니 이렇게 말해도 이상하지 않겠지.' 라고 생각한다. [28] 이때 루시가 주인공의 맥박이 올라가는 걸 느끼고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러냐고 묻자, 주인공은 "나 참, 명령인데 앞으로는 멋대로 체온 측정하지 마." 라고 한다. [29] 야근을 밥 먹듯이 계속했으며, 집에 돌아가 본 적이 언제인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였다. [30] 몇 번이고 포기하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고 하며, 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탓에 정신적으로 무척 피폐해진 상태였다. [31] 주인공이 맨 처음 루시와 만난 날 우연히 지나치던 바로 그 건물이다. [32] 그리고 루시의 이런 거짓 없는 청순함과 깨끗한 미소에 류원은 마음이 아파 제대로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33] 앤드류는 류원이 K 로보틱스 연구실에 오기 전부터 있던 안드로이드로, 제작 당시 경호용 로봇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복무기간이 만료되어, 지금은 회수되어 폐기장 경비를 담당하는 방범 로봇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가끔 연구소 잡무를 돕기도 하고 말이다. [34] 그리고 이렇게 즐거워하는 루시를 보고, 류원은 이게 자신에게 유일하게 남은 삶의 낙이자 동시에 가장 큰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35] 루시가 하는 말이 자신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것 마냥 괴로웠기 때문이다. [36] 작중 짧은 방염 기능이 있다는 묘사가 있다. 이를 고려하면 기능이 정지된 원인은 방화로 인한 고열이 아니라 주인공을 마중나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로봇 3원칙과 로봇 2원칙을 어긴 것이 킬 스위치를 작동시켜서일 수도 있다. [37] 진엔딩의 조건을 만족하지 못하면 볼 수 있는 배드엔딩 루트다. [38] 이때 루시와 있었던 일이 영상을 되감기하듯 거꾸로 흘러가더니, 이후 모니터 화면이 갑자기 꺼지듯 팍 어두워진다. [39] 본편이 2050년이었으니, 2070년 즈음이라는 뜻이다. [40] 이때 잊어버렸다가 가까스로 다시 떠올렸음을 반영한 것인지 떠올린 루시의 모습에서 그녀의 얼굴만은 떠오르지 않는다. [41] 자기 아버지와 비슷한 주장을 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아버지의 주장에 동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렇다면, 아마 주인공도 자기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일밖에 모르고 가정은 뒷전인 데다가 남에게 함부로 손찌검까지 하는 작자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 [42] 어쩌면 주인공의 아버지가 루시를 태워 죽였을 무렵, 주인공 아버지도 이런 사상을 갖고 있었기에 그런 짓을 저질렀던 건지도 모른다. [43] 진엔딩 시점으로, 16일 '광고지를 가진다' - 20일 '루시를 도와준다' - 21일 '더 찾아본다' - 29일 '기억이 남은 루시를 선택한다'- 에필로그 '후회하지 않는다'를 선택하면 볼 수 있다. 에필로그가 끝나고 타이틀로 돌아가면 시작하기가 이상한 글씨로 깨져 있다. 이걸 클릭하면 시스템 메세지 같은 영어들이 지나가고 '10월 12일'로 바뀌게 된다.(이 연출 때 나오는 영어는 두벌식/ QWERTY 자판에서 한글을 영어로 변환하여 친 것이다.) 또한 타이틀 화면에서는 부제목에 '그리고'라는 단어가 붙는다. '10월 12일'로 들어가면 박사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리고 이 시나리오를 클리어 하면 타이틀 화면의 부제목이 '그녀가 바라던 것 그리고 내가 바라던 것'으로 바뀐다. [44] 정확히 말하자면 서로 말을 주고 받기는 했지만, 제대로 대화가 이어지지 못하고 계속 끊어졌다. [45] 그리고 류원은 이때 '뭐, 이미 충분히 예상하고 있긴 했었지. 시간 문제였을 뿐. ···그래, 그들은 언제나 그래.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 라고 독백한다. [46] 화자가 바뀔 때마다 연도는 나오지 않은 데다가, 박사의 이야기가 나오는 날은 본편이 진행되는 10월 이전으로 나왔기 때문에 진엔딩을 보지 못했다면 그저 루시를 만든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제작사의 서술 트릭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폐기장의 경호 안드로이드도 일종의 떡밥이었는데, 본편에서는 잠깐 동안 경호 안드로이드 쯤으로 나오는데 상당히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주인공도 멍청하다고 까고 이때까진 이름도 없었다. 그러나 같은 SCG를 사용하는 안드로이드가 박사 시점에서는 대놓고 고급 안드로이드라고 나오며, 비서 역할을 척척 해낸다. 이로보아 미래의 주인공이 주워서 개조했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당연히 인공지능이 발달한쪽이 미래라고 보는게 타당하니 이것도 일종의 떡밥이었던 셈. 물론 초반의 루시처럼 락이 걸려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또한 루시가 류원더러 30대 초반이라고 한 것도 떡밥이었다. 30대 초반이라면 류원은 아무리 많아도 34세이며, 그 상태에서 15년간 루시를 만드는데 살았다면 적어도 고등학생 때부터 루시를 만드는 연구를 시작했다는 것인데 마침 주인공도 딱 고등학생이었다. 또한 루시 같은 고성능 로봇을 고등학생 때부터 만들기 시작했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우며, 그런 고성능 로봇을 처음으로 만드는데 15년 밖에 쓰지 않았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47] 박사가 나오는 파트 중, 루시가 '박사님'이라고 부르자 박사가 어색해하며 불편해하던 장면이 나온다. 일종의 엔딩 복선인 셈. [48] 본편에서 루시가 "루시의 기억은 인간의 것처럼 유일무이한 것이 아닌 교체 가능한 부품의 일부에요. 루시를 구성하는 것 중에서 유일무이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객체로서의 가치가 없지요."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루시가 자신을 더 이상 3인칭화 하지 않는다는 건 이제 더 이상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49] 엔딩을 보고 나면 해금되는 내용으로, 노인이 되어 환갑 생일을 앞둔 주인공 류원의 아버지(이하 류씨)의 모습을 다룬다. [50] 아침 인사 대신 사무적인 이야기나 나누는 걸로 보면 알았겠지만, 사실 그녀는 류씨의 손녀가 아니라 그를 수발하는 실버로이드(이하 실버)다. 시대가 흐르고 기술이 발달하며 효도의 방법과 자식의 역할도 달라졌는데, 이 무렵은 거의 자식이 부모를 직접 모시지 않고 이런 식으로 고성능 실버로이드에게 부모의 수발을 맡긴다고 한다. 또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부모에게 얼마나 좋은 실버로이드를 선물하느냐를 효도의 척도로 삼고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실버는 어떤 안드로이드와 같은 PIM 기종으로, 수많은 모델 중 가장 뛰어난 기종이라고 한다. 참고로 실버의 일련번호는 PIM-023으로, 말하자면 PIM-001의 동생 뻘이다. [51] 실버는 류씨가 평생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한, 그 해의 생일 때 류원이 찾아와서는 선물로 준 것이라고 한다. 물론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의 실버인 것은 아니고, 그보다 구식 모델이었던 실버로이드였다. 이런 식으로 류원은 매년 류씨의 생일이 되면 로봇 기사와 함께 최신 기종의 안드로이드를 류씨의 집에 배송했다고 한다. 그러면 이전 모델에서 메모리 칩을 신형에 이식시키고 구식 모델은 회수하는데, 현재의 PIM-023 모델은 무려 6번이나 몸을 바꾼 기종이라고 한다. 물론 신형이 되면서 더 많은 기능이 추가되기는 했지만, 정작 류씨는 뭐가 바뀐 건지 잘 모르고 있었다. 오히려 모습이 바뀔 때마다 낯설기만 해 불편한 거부감이 들었다고 한다. [52] 원래 류씨는 실버를 받지 않겠다고 한사코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간 살아왔던 부인(류원의 새어머니)하고 이혼한 것이 결국 계기가 되었다. 일 중독자였던 그가 아내와 이혼 후 혼자서 집안일을 해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처음에는 그것을 위해 가정부를 고용하기도 했지만, 모르는 사람과 부대 끼고 사는 것도 그의 취향은 아니었고··· 결국 여러가지 실패를 겪은 뒤엔 끝내는 울면서 겨자먹기식으로 실버를 받았다고 한다. 물론 첫 1년에는 건강 검사니 뭐니 하면서 작은 거 하나에도 일일이 걸고 넘어져서 꽤 사용에 애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계속 그렇게 부대 끼고 지내다 보니 적응이 되어서 이제는 그럭저럭 지낼 만하고, 게다가 이제는 실버의 보살핌에 너무 익숙해져서 실버 없이 혼자 지낼 자신도 없을 정도라고 한다. [53] 원래라면 노발대발 짜증을 냈겠지만, 자신도 이제 적응이 되어서 그냥 내버려두는 거라고 한다. [54] 이에 실버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했다가 포기했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고 하는데, 아마 류씨의 발언의 모순(가게의 도둑이 들 경우 실버가 대응 못 한다고 했으면서, 집을 보면서 도둑에 대응하라고 한 것)을 지적하려다가 그가 기분 나빠 하지 않게끔 그만둔 것 같다. [55] 이 곳은 류씨가 퇴직 후 개점한 구멍가게인데, 이 양반이 이렇게 퇴직 후에도 일을 하는 건 "일 말고는 시간을 때우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가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모르고 이제 와서 다른 취미를 만들 융통성도 없으니, 결국 퇴직 후에도 일을 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꼴인 것이다. [56] 원래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한 가게지만, 가끔 단골손님이나 회사의 옛 동료들이 찾아오기는 한다고 한다. 비록 류씨는 가정 일은 뒷전이었지만 직장에서는 유능한 상사였기에, 그들이 찾아올 때마다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한 잔 했다고 한다. [57] 류씨는 가게의 군것질거리로 때우면 된다고 만류했지만, 류원이 그의 음식 관리에는 신경쓰라고 말했기에 가져온 거라고 한다. [58] 하지만 효도 문서에도 나와 있듯이, 효도는 자식 스스로 부모를 진심으로 사랑해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류원을 잘 돌보기는 커녕 학대, 방치하였음에도 이런 소리를 하는 것부터 이 양반이 철면피라는 걸 알 수 있다. 게다가 어릴 적에 그런 학대를 당했음에도 꾸준히 생활비도 보내주고 생일 때는 선물을 들고 직접 찾아오는 등, 류원은 효도를 충분히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59] 류원과 얼굴을 보지 않은 건 2년째라고 한다. 그 뒤로는 생활비와 실버를 통한 생일선물이나 안부만 보냈다고 한다. 2년 전 싸움의 원인은 잊어버렸지만, 원래 만날 때마다 언쟁을 일으켰고 그게 2년 전 류씨의 생일 때 폭발해 이 작자가 류원에게 물건까지 집어던지며 쫓아냈다고 한다. [60] 사실 류씨도 내심 이 부분은 걱정하고 있었던 부분이라서, 이러한 실버의 지적에 아무런 대꾸도 못 한다. [61] 그리고 국내에 있음에도 자신을 보러 오지 않음에 역시 류원의 분노가 컸음을 느낀 그는 더 이상 음식을 먹지 않기로 한다. [62] 이런 식으로 실버가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건 드문 일이라고 한다. [63] 그러나 정작 류원이 어렸을 적에 했던 말이나 행동에서 잘못된 부분은 없었다. 즉 류원과의 불화는 류원의 언행이 잘못됐기 때문이 아니라, 이 작자가 류원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려고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의견만 피력하고 강요했기에 벌어진 인과응보다. [64] 거짓말이다. 류씨는 루시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자신이 그녀를 죽였고, 그 때문에 류원의 슬퍼하던 모습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불화가 심해졌다는 것도 돌이켜보면서 깨달았다. 그리고 조금 더 설득을 했다면 지금보다는 나은 관계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한다. 그러나 이제 와선 지난 일인 데다가 입장을 바꿀 생각도 없고,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며 생각을 관둔다. [65] 참고로 이 부분이 바로 이 양반이 자신의 악행을 제대로 반성한 거라고 할 수 없는 이유다. 설득은 상대가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으로, 곧 "자신의 의견이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야 했던 것은 류원이 아니라 이 작자였다. 아들의 의견은 묵살한 채 자신의 주장만 밀어붙여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데, 그런 것도 모자라 자신의 행적이 틀렸다고 생각도 하지 않는 시점에서 이미 이 양반은 반성을 시작도 하지 않은 것이다. [66] "소용이나 필요가 없다." 또는 "걱정하거나 개의할 필요가 없다." 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류원과 화해할 필요는 없다." 라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67] 류씨는 이때 실버가 어쩐지 들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68] 이때 "사내 자식이니 가만 놔 두어도 알아서 잘 클 줄 알았는데···" 라고 중얼거렸다. [69] 이때의 일로 류씨는 실버가 식사를 챙겨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알았다. [70] 원래 이것들은 전부 실버가 류씨를 위해 해주던 일이었다. 씻는 것도 원래라면 물을 받아서 목욕을 했겠지만, 그러기 귀찮아서 샤워만 한 거다. [71] 그런데 류씨는 이때 환갑이고, 이 이야기가 진행될 무렵은 2065년 이후다. 2020년대에도 60대는 아직 젊은 축에 속하는데, 하물며 2060년보다 이후에 환갑이 늙은 것으로 묘사되는 건 이상하다는 평도 있다. 어쩌면 류씨는 뭔가 사고가 있어서 환갑인데도 몸이 불편한 건지도 모른다. [72] 어디까지나 상상한 것이다. 류원의 마음을 이해한 것도, 공감한 것도 아니며 류원에 대한 미안함 내지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 것은 더더욱 아니다. 즉 루시를 잃은 류원의 아픔이 어느 정도였을지, 이 양반은 아직도 깨닫지 못한 상태다. [73]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니라 만들지 않은 것이다. 일에 파묻혀 살 것이 아니라 퇴근해서 간단히라도 상을 차리고 같이 먹기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룰 수 있는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본편에서도 한 번 류원과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에 대해서 로봇이 어떻다느니 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소리만 하고 류원의 말은 들을 생각도 않았다. 그런 분위기에서 한 식사였으니 단란하기는 커녕, 오히려 류원의 입장에서는 같이 먹고 싶다는 생각마저도 들지 않았을 것이다. 즉 있었던 기회마저도 본인이 망쳐버린 꼴이다. [74] 그런데 이게 좀 웃긴 것이, 이전에도 류원은 류씨와 싸웠더라도 몇 개월 후 명절 날에는 다시 찾아왔다고 했다. 즉 이 사건보다 공백기가 좀 짧았을 뿐이지, 이전에도 비슷한 상황은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런데도 이 작자는 이 무렵이나 되어서야 오랜만의 식사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여론이 거세지기 전까지는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가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서는, 그리고 그 때문에 수습을 한 뒤에도 욕을 먹는, 전형적인 꼰대 노릇인 꼴이다. [75] 여기서 읽는 소리가 잠시 끊어진다. 안드로이드가 읽는 걸 망설였기 때문이다. [76] 이 부분에서 류씨는 충격을 받은 듯 작게 신음한다. [77] 진엔딩을 보고 나면 '초로의 기억'이 'REUNION'으로 바뀌는데, 편지를 받고 난 다음의 내용이 새로 추가된다. [78] 사실 류원의 편지를 가지고 온 안드로이드는 SCG가 없이 실루엣만 보였다. 진엔딩과 마찬가지로 서술트릭이 돋보이는 부분. 류원을 데려오지 못한 것에 대해 바로 사과를 하거나 편지를 읽을때 멈칫한 부분이 떡밥이었다. 사무적인 타입인 실버는 이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79] 이 큰 실수라는 게 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지만, 회사를 크게 성장시키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류씨가 이런 처분을 받았다는 건 아마 이 작자 탓에 누군가가 목숨을 잃었다거나 높은 사람으로선 해서는 안 될 말이나 행동을 저지른 것일 가능성이 크다. [80] 예전에는 이 대목은 다시 말해 류씨가 류원을 모질게 대한 것은 뼛속까지 악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아들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단 걸 암시해 준다 라고 쓰여 있었지만, 절대로 아니다. 이 대목은 그저 류씨가 자신의 희망사항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푸념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설사 '류씨가 류원을 사랑했기에 모질게 대했다' 라는 명제가 사실이라 해도, 류씨의 행동은 이해받을 수 있거나 정당화될 순 없다. 그의 모진 행동에 류원은 류씨의 사랑을 느끼긴 커녕 깊은 마음의 상처만 입었으니 말이다. "사랑을 한다면 그것을 표현해라" 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81] 애초에 당연한 일이다. 류원이 회사에 간 적도 없을 텐데 류씨가 얼마나 열심히 일해서 얼마나 많은 걸 얻어내는지 류원이 무슨 수로 안다는 건가? 게다가 류원은 류씨에게 제대로 보살핌 받은 적도 없었다. 그런 양반에게 증오심을 품으면 품지 존경심을 품는 건 어림도 없는 소리다. [82] 바로 이 대목이 류씨의 반성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한평생 살면서 쌓아올린 명성과 실적도 사퇴하면서 모조리 흐지부지 해졌는데, 거기다가 이렇게 살아온 탓에 가족관계가 이렇게까지 파탄나고 말았는데도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다시 살게 된다 해도 여전히 워커홀릭으로 살아가겠다고 지껄이고 있는 것이다.(그리고 실버가 류원을 데리러 가기 전에도 "자존심이나 직장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라고 충고했음에도, 정작 이 양반은 루시와의 대화에서 여전히 직장 일이 최우선이라고 했다.) 또한 아까는 후회하지 않는다(=최선의 선택을 하며 살았다)고 했으면서 이제 와서는 더 나은 선택지가 있었다(=최선의 삶을 살지 못했다)고 하고 있는 것이, 이 양반은 자기 자신이 논리적인 인간인 척 떠들어대는 주제에 정작 자신의 발언의 모순은 깨닫지 못하는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것도 여실히 보여준다. [83] 그런데 이게 좀 웃긴 것이, 루시를 인간을 대하듯 다정하게 쓰다듬었다고 하면서 정작 진짜 인간인 데다가 친혈육이기까지 한 류원은 다정하게 대하기는 커녕 오히려 손찌검이나 했었다. 아무리 이때가 늙어서 생각이 바뀔 무렵이라고는 해도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건, 결국 젊었을 적에 한 악행의 미화 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84] 다만 이대로 류원이 집으로 들어와 류씨가 화해했다고 하기엔 악행 미화[90]인 데다가 개연성[91]도 맞지 않아서, 이 문 열리는 소리는 그냥 이야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장치이거나 혹은 문이 열리고 실제로 누가 들어왔다고 해도 그건 류원이 아닌 다른 사람일 거란 의견도 있다. [85] REUNION을 보고 나면 해금되는 내용으로, 진짜로 루시를 만든 사람인 백정필 박사의 일기이다. [86] 실제로, 인권이니 생명존중이니 하는 것은 20세기가 되어서야 만들어진 역사가 짧은 것이다. 또한 인간은 인권과 생명의 소중함을 역설하면서 동시에 식물과 동물을 함부로 대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모순도 저지르고 있다. 그렇기에, 백정필의 말대로 인권과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개념이 영원할 것이라는 보증은 어디에도 없다. [87] 여담으로 기박사의 본명이 백두산으로 같은 성씨라, 기박사가 바로 백정필의 아들 아니냐는 설도 있다. 기박사가 기계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기계는 기계일 뿐이라고 선을 긋는데, 인간에 가까운 안드로이드를 출시하지 못한 백정필 박사의 체념에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것. 다만 성이 같다는 것 외에 딱히 복선이 있지는 않았으며 백씨가 그렇게 드문 성씨도 아니므로, 어디까지나 가능성은 있다는 수준이다. [88] 실제로 우리 역사 상 최초로 화약 무기를 만든 최무선, 안전한 작업을 위해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한 노벨, 인류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암모니아 비료를 만든 하버, 이들 역시도 자신의 발명품이 겨우 몇 사람의 욕망을 위해 악용당하거나 외면당한 것에 대해 굉장히 괴로워했다. [89] 여담으로 이미 폐기하라고 윗선에서 지시했건만 류원이 15년 동안이나 같은 모델을 다시 만든 걸 놔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15년도 더 전에 폐기를 지시한 모델을 설마하니 다시 만들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애초에 제작한 곳이 다른 회사일 가능성이 제기된 적도 있지만, 나중에 백정필도 류원도 같은 K 로보틱스 회사의 박사였음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