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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드 왕조 제8대 샤
로트프 알리 칸 잔드 لطفعلى خان زن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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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191911><colcolor=#fff,#fff> 이름 |
로트프 알리 칸 잔드 لطفعلى خان زند |
출생 | 1769년 |
잔드 왕조 | |
사망 | 1794년 (향년 25세) |
카자르 왕조 테헤란 | |
재위 기간 | 잔드 왕조 샤[1] |
1789년 1월 23일 ~ 1794년 3월 20일 (6년) | |
전임자 | 사예드 모라드 칸 잔드 |
후임자 | 없음 (왕조 멸망) |
종교 | 이슬람 시아파 |
[clearfix]
1. 개요
페르시아 잔드 왕조의 마지막 군주로 아름다운 외모와 화려한 무예, 그리고 예의범절까지 겸비한 인물이었지만 아버지 대의 악연 때문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알려진 것으로 유명하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여자보다도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으나 용감하며 인내심이 강한 데다가 무예 실력까지 빼어나서 부하들도 잘 따랐다고 한다.로트프 알리의 아버지 자파르 칸 역시 엄청난 용력을 지닌 인물로 자신의 아버지이자 조부인 사디크 칸을 살해한 알리 모라트를 제거하고 왕위에 올랐다고 한다. 그는 용맹하기로 정평이 난 인물인 카자르 왕조의 아가 모하메드와 수십 차례 격돌하여 승리하였으나 불행하게도 재위 4년 만에 독살당했다.
2. 생애
가계도에 따르면 개국군주 카림 칸의 동생 사데크 칸의 손자다.
그렇게 아버지가 사망한 후 치열한 왕위 계승전 끝에 로트프 알리가 1789년 20세의 나이로 즉위했다. 이윽고 로트프 알리는 카자르 왕조와 전쟁을 벌였으나 카자르 왕조에 크게 패했고 결국 수도인 시라즈에서 농성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재상이었던 하지 에브라힘이 카자르 왕조와 내통하여 성문을 열어 젖히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트프 알리는 재기를 노리며 간신히 케르만으로 도망쳤으나 아가 모하메드의 카자르 군대가 그를 추격하여 6개월 동안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 끝에 케르만까지 함락되고 포로가 되고 만다. 야사에 의하면 이때 로트프 알리가 기력을 소진해 사로 잡히기 전에 혼자서 14명의 병사들을 상대로 2시간 동안 싸웠다고 하며 영국의 작가 하퍼드 존스 브리지스(Sir Harford Jones-Brydges)에 따르면 "페르시아 역사상 마지막으로 예의 범절이 무엇인지 알고 있던 인물" 이었다고 한다.
결국 사로 잡힌 로트프 알리는 산 채로 눈이 뽑히고 테헤란으로 끌려가 고문을 당한 끝에 몇 달 뒤 25살의 나이로 아가 모함마드 칸의 명에 따라 질식사 당했다고 한다. 물론 그의 가족들도 무사하지 못해서 로트프 알리 칸의 어린 아들은 대를 잇지 못하도록 거세되었고 왕비는 강간당했으며 공주들은 노예로 끌려갔다. 다만 로트프 알리가 고문을 당한 정황은 분명해도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고문당했는지는 카자르 시대의 공신력 있는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다. 아마 카자르 왕조 국왕들이 로트프 알리의 치욕적인 말년과 죽음을 부끄러워하여 이를 숨기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2]
로트프 알리가 이후 투르크 노예들에게 공개적으로 강간을 당했고[3] 눈알이 뽑힌 후 테헤란에 갇혀 고문을 당하다가 심장에 창이 꽂혀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러 역사책에서 언급되는 것을 보면 분명 이런 기록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신빙성이 확실하진 않다.[4] 하지만 아가 모하메드 칸이 시끄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종 2명을 죽일 정도로 잔인한 인물이었던 걸 생각하면 그리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 외에 로트프 알리와 함께 싸웠던 케르만 시민들 또한 2만여 명의 장정이 눈을 뽑힌 후 살해당했으며 그 눈들은 보란듯이 전시되었다고 한다. 여자와 어린이들은 죽지는 않았지만 노예가 되었다.
여담이지만 한국에는 카자르 왕조의 시조인 아가 모하메드가 잔드 왕조의 시조인 카림 칸 잔드(1705~1779)에게 거세당했다는 식의 잘못된 정보가 퍼졌는데 아가 모하메드를 거세한 건 나디르 샤의 조카인 아딜 샤이며 카림 칸 잔드는 아가 모하메드의 아버지 모하메드 핫산과의 세력 다툼 끝에 모하메드 핫산을 죽이고 아가 모하메드를 궁정에 데려와 그 정치적 능력을 인정해 조언가로 중용한 인물이다.
이렇게 로트프 알리가 사망하면서 44년간 유지된 잔드 왕조는 완전히 무너졌다.
[1]
잔드 왕조는 여타 페르시아 왕조들과는 달리
샤한샤를 칭한 적이 없기에 그냥
샤다.
[2]
이 고귀한 포로에 대한 고문은 역사에 대한 흠이라는 구절도 남아있어 분명히 굉장히 처참한 방식이었으리라 추측되기는 한다.
[3]
아가 모하메드 칸이 데리고 다니던
투르크멘 노예들에게 '롯의 사람들이 행하였던 일'을 로트프 알리 칸에게 시켰다고 한다. 성경 속 등장하는
롯의 도시가
동성애로 유명한
소돔인 걸 생각해보면 결국 로트프 알리 칸이 남성 노예들에게 강간당했다는 이야기.
[4]
Agha Mohammad Khan subjected his youthful rival to the harshest possible punishment. After having Lotfali raped in public in front of the Qajar troops, Agha Mohammad personally blinded him. Lotfali Khan was then taken to Tehran to be imprisoned, horribly tortured and finally killed by having a spear driven through his heart. 출처 : Kaveh Farrokh 저 Iran at War: 1500-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