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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호 | 없음 |
시호 | 없음 |
연호 | 꽝티에우(光紹, 1516 ~ 1522) |
성 | 레(黎 / Lê / 여) |
휘 | 이(意 / Y / 의) |
생몰기간 | ? ~ 1530년 |
재위기간 | 153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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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월 후 레 왕조의 외척으로 레왕조가 막당중의 찬탈로 멸망하자 레왕조 부흥운동을 일으켰다.2. 생애
초기 생애는 전해지지 않으며, 성은 레(黎)씨이나 레러이의 후손이 아닌 외척이며 타인호아(淸化) 출신이다.1530년, 여의가 자주(椰州)에서 거병해 소종의 연호 광소(光紹) 부활을 선언하자 후 레 왕조의 유신들이 그 휘하에 붙으면서 짧은 사이에 각 군현이 호응하여 병사가 수만 명에 달했고 말들이 강을 뒤덮을 수준이 되었다. 태상황 막당중이 몸소 군대를 동원했지만 연전연패하여 탕롱에서 퇴각할 수밖에 없었고 막국정(莫國楨)에게 방어를 맡겼으나 역시 패배했으며 여의는 서도성(西都城)으로 쳐들어갔다.
막당중은 이를 알아채고 군대를 거느린 후 친히 징집하여 막국정과 함께 협공했으나 패배했고 아들 막당조아인은 탕롱으로 퇴각했다. 이때 여의는 연전연승으로 명성을 떨쳤으나 해이해져 향락을 즐기게 되었다. 이 틈을 타 막국정이 여의를 격파하며 생포했고 여의는 탕롱에 압송된 뒤 거열형에 쳐해져 죽었다. 비록 레이는 1530년 처형되었지만 그가 수복한 고토는 다음 부흥군 수장인 응우옌낌, 찐끼엠 시기에도 유지되어 남북조 통일의 초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