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16 21:46:18

레이날트 4세 폰 율리히

이름 레이날트 4세 폰 율리히
Rainald IV von Jülich
출생 1365년
율리히 공국
사망 1423년 6월 25일
헬러 공국 아른험
아버지 빌헬름 6세 폰 율리히
어머니 마리아 판 헬러
형제 빌헬름 7세, 요한나
아내 아르쿠르의 마리
직위 헬러와 율리히 공작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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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헬러와 율리히 공작. 저지대 국가에 대한 부르고뉴 공국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려 노력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 생애

1365년경 율리히 공작 빌헬름 6세 폰 율리히 마리아 판 헬러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형제로 빌헬름 7세, 요한나[1]가 있었다. 1397년 형이 클레버함 전투에서 사촌인 베르크 공작 빌헬름 2세와 함께 마크 백작 디트리히 2세, 클레페 백작 아돌프와 대결할 때 참여했다가 생포된 뒤 80,000플로린에 달하는 몸값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풀려났고, 에미리히암라인과 리머스 시를 담보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1401년 오를레앙 공작 루이 1세 도를레앙과 동맹을 맺고 그로부터 제르호르트스 성을 넘겨받았으며, 1404년 아르쿠르 백작 장 6세 다르쿠르의 딸인 마리 다르쿠르와 결혼했다. 1402년 형이 사망한 뒤 율리히와 헬러 공작위 및 영지를 물려받았고, 1405년 형 빌헬름 7세처럼 프랑스 국왕 샤를 6세에게 경의를 표하고 봉신이 되었다. 1406년 브라반트 공국에 부르고뉴 공작 용맹공 장의 형제인 앙투안 드 브라반트가 계승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하바이에른 공작이자 에노, 질란트, 홀란트 백작인 빌헬름 2세와 일시적으로 연합했지만, 끝내 저지하지 못했다.

1406년, 아르켈 영주 장 5세 다르켈은 빌헬름 2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상황이 갈수록 여의치 않자 레이날트 4세에게 영지를 넘기고 개입을 요청했다. 레이날트 4세는 이를 수락하고 아르켈을 헬러 공국의 영지로 선포했다. 이에 빌헬름 2세는 레이날트 4세에게 전쟁을 선포해 아르켈 등지에서 아르켈-헬러 연합군과 2년간 전쟁을 벌였다. 1411년, 빌헬름 2세는 많은 돈을 헬러 공국에 넘기는 대가로 아르켈 영지를 돌려받았다. 장 5센 다르켈은 레이날트로부터 아우엔 영지를 수여받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소규모 군대를 일으켜 빌헬름 2세의 영지를 공격했지만 즉각 역공을 받고 부랭에서 체포된 뒤 고우다 감옥에 갇혀 그곳에서 옥사했다. 이후 율리히 공국에서 통치를 이어갔으며, 헬러 공국 내 기사들의 특권을 갱신하고 확장했다.

1423년 6월 25일 아른험에서 자녀를 두지 못한 채 사망했고, 베르크 공작을 맡고 있던 친척 아돌프가 율리히 공작을 맡았다. 레이날트 4세의 미망인 마리는 아돌프의 아들인 루프레히트 폰 율리히베르크와 재혼했다. 한편 헬러 공작위는 레이날트의 여동생 요한나의 손자인 아놀드 폰 에그몬트에게 넘어갔다.


[1] ? ~ 1394, 아르켈 영주 요한 5세의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