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비니아 베이옹고는
통가의
왕비이다. 1879년에 태어났다. 귀족 집안 태생으로 아버지는 통가 경찰국장을 지냈다. 친할머니는 통가의 귀족인 투이 통가의 마지막 작위자였던 라우필리통가(Laufilitonga)의 딸이었다.
1899년 6월 1일에 미혼이었던 국왕
조지 투포우 2세와 결혼하였다.[1] 본래 라비니아 외에 오파키바바우(ʻOfakivavaʻu) 공주도[2] 신붓감 중에 있었으나 국왕이 라비니아를 간택하였다. 통가의 귀족들이나 국민들은 오파 공주를 지지했기 때문에, 수도인
누쿠아로파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통가의 왕비로 오른 후 1900년에 장녀 살로테 마필레오 필로에부(Sālote Mafile‘o Pilolevu) 공주를 낳았다. 이 공주가 뒤에 왕위에 올라
살로테 투포우 3세가 된다.
결혼 문제로 오파 공주의 지지자들과 라비니아의 지지자들 간에 갈등이 있었지만, 정작 두 사람은 친했다고 한다. 오파 공주는 1901년에
결핵으로 사망하였고, 라비니아는 장례식에 참석하였다. 이후 라비니아도 결핵에 걸려 1902년에 세상을 떠났다.
왕비의 사망 후에, 투포우 2세는 재혼하였으나 왕위를 이을 아들을 낳지는 못 하여서[3] 라비니아의 딸인 살로테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1]
조지 투포우 2세의 외증조할아버지는
조지 투포우 1세이다. 시외증조할아버지의 아내인
살로테 루페파우는, 라비니아의 친할머니의 아버지의 전처였다. 통가의 귀족 집안이 몇 개 안 되어 워낙 얽혀 있어서 그렇다.
[2]
흔히 오파 공주라고 했다.
[3]
통가에선 왕자가 우선 상속 권한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