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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68a46> 속명 |
<colbgcolor=#ffffff,#191919>바르폴로메이 키릴로비치 (Варфоломе́й Кириллович) |
수도명 |
세르기 (Се́ргий) |
출생 | 1314년 5월 14일 |
블라디미르-수즈달 로스토프 벨리키 바르니차 | |
사망 | 1392년 1월 2일 (향년 78세) |
모스크바 대공국 세르기예프 파사드 | |
직업 | 성직자( 수도자) |
가족 |
부 키릴 모 마리아 |
종교 | 정교회 |
성인명 |
세르기[러시아정교회] 세르기오스[그리스정교회] 세르지오[가톨릭] |
축일 |
9월 25일[4] 7월 5일[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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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의 수도자.중세 러시아의 대표적인 수도사제이자 영적 지도자로 사로프의 세라핌과 함께 러시아 정교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인으로 공경받는다.
2. 생애
1314년[6] 로스토프 벨리키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 키릴과 마리아는 보야르 혈통의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 속명은 바르폴로메이(Варфоломе́й)인데, 이는 사도 바르톨로메오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바르폴로메이는 15세 때에 로스토프 벨리키가 모스크바 대공국로부터 침략을 당하자 그의 가족은 결국 정처 없이 고향을 떠나야 했다. 피난을 하면서 그들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후 모스크바 교외인 라도네즈 지역에서 농사를 지으며 지냈다. 1335년 부모와 사별한 바르폴로메이는 당시 그의 형 스테판이 수도자로 지내고 있는 호트코보 지역으로 가 조금 더 외진 장소를 찾아달라고 설득했다. 이로써 형제는 마코프카 언덕의 울창한 숲을 발견해 그곳에서 조그만 은수 생활용 공간과 삼위일체를 위한 성당을 짓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이 훗날 세르기예프 파사드에 위치한 삼위일체 수도원으로 발전했다.
한편 바르폴로메이는 은수 생활을 하던 중 모스크바의 수도원으로 들어가서 수행을 거친 뒤 그곳에서 세르기(Се́ргий)란 수도명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러시아의 살벌한 추위를 견디며 은수 생활을 계속하였으므로 그의 성덕이 널리 알려졌다.
그의 명성을 듣고 제자들이 몰려들자 세르기우스는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삼위일체 수도원을 세워 원장이 됨과 동시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타타르족의 침략 이후 사라졌던 러시아의 수도 공동체를 재건한 것이었다. 비록 그는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관여하지는 않았지만 러시아 국민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타타르족의 침입으로 분열되어 있던 조국 러시아의 일치를 위해 제후들의 통합과 일치를 요청했다. 이에 그는 1380년 모스크바 대공국의 벨리키 크냐즈였던 드미트리 돈스코이가 돈강 상류의 쿨리코보 지역에서 타타르족과 전투를 벌인 뒤 러시아를 해방시켰을 때 그를 축복해주어 러시아에 퍼진 갈등을 평화로 봉합하기를 빌었다. 이 승리 이후 세르기우스의 명성은 더욱 퍼져나갔고, 여러 러시아 귀족들이 협조해 수많은 교회와 수도원을 짓게 되었다. 그리고 1392년 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 세르기우스는 자신이 세운 수도원의 원장직을 사임한 후 6개월 뒤에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