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도 장인 및 그가 만든 일본도
도다누키 마사쿠니(同田貫正国) | |||
도공 | 도다누키 마사쿠니(同田貫正国) | 도파 | 도다누키(同田貫) |
제작 시기 | 에도시대 | 종류 | 우치가타나 |
길이 | 미상 | 현존 여부 | 불명 |
명문 | 미상 | 문화재 등록 | - |
히고(肥後) 도타누키 도파의 시조의 이름, 혹은 그가 제작한 도검의 총칭이다. 이렇기 때문에 원래는 특정 도검을 지칭하는 이름이 아니다. 참고로 도타누키는 인명이 아니라, 히고 키쿠치(菊池)[1] 지방의 지명이다.
마사쿠니(正国)라는 이름은 구마모토의 다이묘였던 카토 키요마사(加藤清正)가 자신의 이름에서 마사(正)를 떼어 붙여준 것이다.[2]
보통 도타누키 마사쿠니라 하면 투구를 부순 일화의 도타누키를 일컫는다. 메이지 시대 마지막 검호로 알려진 사카키바라 겐키치가 온갖 명도들도 부수지 못했던 묘친[3]의 투구를 도타누키로 한 방에 부숴버렸다는 일화.[참조] 다만 이 투구 부수기 일화의 도타누키는 마사쿠니가 아니라 같은 도파의 다른 도공이 제작했다는 설도 있다.
미적인 가치가 부족한 검이었기에 평가는 다소 낮았다.[5] 애초에 도타누키의 도검들 자체가 실용성을 고려해 대량으로 생산된 도검이었던 데다, 하필 도타누키가 세상에 나온 건 비교적 평화로운 시대였던지라 검에게 미술품으로서의 가치를 더 요구했고, 그 때문에 도타누키에 대한 평가는 자연스레 낮아졌다. 그 덕분에, 쓸모없어진 도타누키 검들은 전부 소각되거나, 부서뜨리거나, 바다에 버리는 등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밑의 도검난무 캐릭터 외에도 아들을 동반한 검객과 풍래의 시렌 시리즈를 통해 알게 된 분이 많으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