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4세기의 중국인을 주제로 다룹니다. 과일 단감에 대한 내용은 감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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段龕
(? ~ 357)
단부의 인물.
광고를 점거하고 제나라로 독립했다가 351년에 청주를 들어 동진에 귀부해 2월 23일에 진북장군에 임명되어 제공에 책봉되었으며, 355년에 사촌간의 관계를 믿고 연나라에서 모용준이 칭제한 것을 비난했다가 11월에 모용준이 보낸 모용각의 공격을 받았다.
모용각이 공격한 것을 보고 단비가 항복을 권하자 화가 나서 죽였으며, 356년에 모용각과 광고에서 100여 리 못 미친 곳에서 단감은 3만 명을 이끌고 싸웠지만 치수에서 격파당했다. 단감은 도망가서 성을 굳게 지키다가 모용각에게 포위되었다.
단온을 보내 동진에게 원군을 요청했지만 동진의 구원군으로 온 순선은 연나라의 군사에 눌려 구원하지 못했으며, 결국 성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을 정도의 상황에 빠지자 성 밖으로 나왔다가 모용각에게 격파당하자 성 안으로 돌아갔지만 11월 14일에 연나라에 항복해 복순장군에 임명되었다. 357년에 모용준에게 살해당하고 그의 무리 3천여 명도 생매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