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니시지마 요스케 ([ruby(西島, ruby=にしじま)] [ruby(洋介, ruby=ようすけ)]) |
출생 | 1973년 5월 15일 ([age(1973-05-15)]세) |
도쿄도 이타바시구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권투 전적 | 27전 24승 2패 1무 (15KO) |
입식 전적 | 3전 1승 2패 |
종합격투기 전적 | 5전 5패 |
승 | 없음 |
패 | 2KO, 3판정 |
체격 | 180cm / 90kg / 185cm |
링네임 | Yosukezan |
주요 타이틀 | WBF 8대 크루저급 챔피언 |
OPBF 6대 아시아태평양 크루저급 챔피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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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전 권투, 종합격투기 선수.2. 전적
※ 종합격투기
- 주요 승: 없음
- 주요 패: 마크 헌트, 요시다 히데히코, 에반겔리스타 산토스, 필 바로니, 멜빈 만호프
※ 입식
- 주요 승: 밥 샙
3. 커리어
도쿄도 이타바시구에서 태어났고 히로시마시 니시구에서 성장했다. 초등학교시절 리틀야구팀에 속해있었다. 이후 사이타마를 거쳐 고등학교땐 도쿄로 돌아왔다. 고등학교때도 야구부에 속해있었으나 복싱체육관인 오사무짐의 관장인 와타나베가 우연히 본 니시지마에게 넌 헤비급 챔피언이 될수 있다는 말을 솔깃하게 듣고 야구부를 떠나고 복싱을 시작한다.고등학교를 졸업한 1992년 프로로 데뷔해 자국 선수들이 없어서 해외에서 데리고 와서 경기를 치렀다. 마이너 단체긴 하지만 중량급에서 벨트를 둘러봤으며 WEC에서 크루저급 6위에 랭크된적이 있었다. 하지만 JCB와 벨트 반납문제로 인해 오사무짐을 떠났으며 JCB[1]는 무기한 라이센스 금지 처분을 내려 일본내에선 경기를 뛰지 못하게 했다. 미국으로 거점을 옮겼다. 이후 경기 텀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3년 복싱을 은퇴하고 2005년부터 종합격투기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PRIDE 31에서 마크 헌트와 맞붙었고 경기전 도발을 했고 경기 초반 좋은 잽을 헌트에게 맞췄으나 헌트의 폭발적인 훅이 터지며 3라운드 TKO패했다.
프라이드 무제한 토너먼트에서 요시다 히데히코와 맞붙었다. 복싱이 유도보다 낫다. 왜냐하면 그라운드로 끌고가기 전에 KO로 끝낼수 있기 때문이라는 발언을 했으나 요시다의 그래플링에 밀리며 트라이앵글 초크로 서브미션패했다.
PRIDE Finale Conflict Absolute에서 에반겔리스타 산토스와의 맞대결에서 산토스의 카운터는 아프지 않다고 트래시토크를 걸었다. 하지만 산토스는 니시지마를 테이크다운시키고 파운딩연타로 니시지마가 백을 보이자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니시지마가 탭을 치며 서브미션 패했다.
PRIDE 32에서 필 바로니를 상대로 기무라 락으로 테크니컬 서브미션패했다.
K-1으로 옮겨 Dynamite 2007에서 멜빈 만호프와의 대결에서 만호프의 타격을 아마추어 레벨수준이며 빨리 끝내겠다고 발언했으나 훅 연타로 넉다운당했고 풀마운트에서 파운딩을 맞고 실신하며 KO패했다.
그 후 종합격투기는 뛰지 않고 2009년 킥복싱에 도전했고 피터 아츠, 레이 세포에게 KO패 당했다.
2013년 LEGEND 4에서 밥 샙을 상대로 은퇴전을 치렀고 1라운드 KO승을 거두며 유중의 미를 장식했다.
2019년, 2022년 복싱 특별매치를 열었다.
4. 파이팅 스타일
경기 내내 잽을 계속 던지고 상대가 나오면 풀백, 체크훅 카운터로 맞받아치거나 들어오지 않으면 리드훅으로 과감하게 들어가는 패턴을 잘 활용했다. 핸드스피드, 맷집이 준수했다.종합격투기에선 그라운드에 대한 대처는 거의 없었고 킥복싱에선 킥에 대한 대처가 부족했다.
감정적인 부분이 있다. 세포의 도발에 반응을 보이거나 아츠전에서 경기가 풀리지 않거나 아츠에게 넉다운을 허용했을때 과한 감정 표현을 했다.
5. 여담
한때 일본 복싱계에서 중량급 스타로 키우려 했던 선수였으나 계약과 챔피언 벨트로 인해 니시지마가 프로모터, 단체와 갈등을 빚어 떠났고 거의 없는 존재 취급을 받았다.2007년엔 생계로 인해 운전업에 종사했으며 2012년부터 경비업체에서 근무하다가 2019년엔 헬스장을 차렸다.
[1]
일본 권투 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