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니시야마 소키치(빅토르 사부로비치, NISHIYAMA Sokichi, Victor Saburovich, 1945년 1월 21일 - 2005년 5월 6일)는 러시아의 기업인이자 정치인이며 일본계 러시아인이다.2. 생애
1945년 1월 21일 당시 일본 영토였던 가라후토 혼토군 요시히토무라 미나미나요시(현 러시아 연방 사할린주 네벨리스크 지구 쉐브니노 마을)에서 7남매 중 막내로 출생했다.남가라후토에는 같은 해 8월 소련군이 침공했고 이후 소련의 실효 지배하에 놓였으며 이듬해인 1946년 이후 미소 협정 체결에 따라 일본인 인양 사업이 개시됐지만 그의 일가는 사할린에 잔류했고 토마리시(구 토마리군 토마리정)로 이주했다.
토마리시에서 학교를 졸업한 후 소련군에 입대했는데 스페츠나츠에서 무선병으로 근무했고 제대 후 고려인 여성과 결혼해 2명의 딸을 두었지만 큰딸은 성인 된 후 암으로 사망했다. 둘째 딸은 살아남았고 손녀에게도 축복받았다.1976년 유즈노사할린스크국립교육대(현 사할린국립종합대)에서 지리학 교원 면허를 취득한 뒤 토마리시에서 지리학과 생물학 등의 교사로 일했다. 페레스트로이카, 소련 붕괴를 거치면서 개인사업주로서 가족과 함께 다양한 사업에 나섰고 제과학교 설립, 경영 등을 했다.
2004년 10월 10일에 실시된 토마리 지구(토마리시·크라스노고르스크 마을·일리인스키 마을 관할)의 지구장 선거에 입후보했는데 45% 이상의 표를 얻어 당선(투표율은 60% 초과)되었으나 2005년 5월 6일 뇌출혈로 유즈노사할린스크 시내의 사할린 주립 병원에서 60세로 사망했다.
러시아가 남사할린을 실효 지배한 이래 일본계 주민이 러시아 내지 사할린에서 행정부 수장이 되는 것은 이례적으로 이례적이었다.
3. 기타
- 부모는 1936년 에스토리군 에스토리초(현 우그레고르스크시)에 탄광 노동자로 와타나기, 김에 사태 최남단에 있는 미나미 명호에 입식, 농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 어린 시절부터 러시아 이름은 "빅토르"였다. 토마리시민으로부터는 빅토르 소볼비치 혹은 사브로비치[1] 등의 애칭으로 사랑받고 있었다.
-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가 이끌던 극우 민족주의 정당 러시아 자유민주당 당원으로 해당 정당의 토마리 지구 조직 대표였다. 쿠릴 열도 분쟁에 대해서는 반환 반대론자였는데 일본과의 경제교류에는 긍정적이었다.
- 일본어는 「이제 잊었다」고 보도되었다.
[1]
아버지의 이름 「사부로」에서 유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