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5:56

노전(고려 거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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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장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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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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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서도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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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70707><colcolor=#fff> 노전
盧戩
파일:노전.jpg
캐릭터
지위 도관원외랑·행영도통판관[1] (6 ~ 8회, 16회)
→ 거란 관리[2] (8 ~ 15회)
→ 서경판관 (18회)
→ 어사중승 (25 ~ 29회)
→ 중추원부사 (30 ~ 32회)
등장회차 6 ~ 8회, 13 ~ 16회, 18회, 24 ~ 32회
배우
김태한[3]

1. 개요2. 작중 행적
2.1. 6 ~ 8회2.2. 13 ~ 16회2.3. 18회2.4. 24 ~ 25회2.5. 26 ~ 28회2.6. 29회2.7. 30회2.8. 31회2.9. 32회(최종회)
3. 묘사4. 어록

[clearfix]

1. 개요

KBS 대하드라마 〈 고려 거란 전쟁〉의 등장인물. 배우는 김태한으로 전작 태종 이방원에서 민무구를 연기했다.

2. 작중 행적

2.1. 6 ~ 8회

6회에서 강조와 같이 작전 회의를 하는 모습으로 첫 등장하였고, 7회에서는 노의와 더불어 선봉으로 뽑혀 거란군의 공격을 막아낸다. 8회에서 역사대로 강조와 더불어 생포된 이들 중 하나로 나오며, 강조에게 구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사죄하지만, 결국 이현운, 노의에 이어 야율융서에게 항복한다. 다만 완전히 거란의 앞잡이가 된 이현운이 고려의 각 성에 항복을 권유하자고 하자 아직 강조의 시신이 식지 않았다며 그를 질책하고, 자신을 비롯한 항장들에게 줄 음식을 가져온 포로로 잡힌 고려 포로의 몸에 난 상처를 보고 마음 아파한다.[4] 결국 통주성에 사절로 가서 항복을 권유하다 최질에게 얻어 맞고 다시 붙잡히는데, 일말에 양심은 있는지 별다른 항의나 저항 없이 가만히 있는다.[5]

2.2. 13 ~ 16회

13회에서 거란 사신과 함께 서경의 감옥에 갇혔다가 양규의 명으로 나와 개경으로 향했다. 본인은 죽여달라고 했지만, 끝내 가긴 했는데, 믿을 수 있냐는 강감찬의 물음에 양규는 그가 아직은 고려의 신하라고 말했다.[6] 이후 개경의 거란 진영으로 건너가 소배압을 만나게 되는데, 고려의 항장 출신이라 고려 사람들이 살려둘 리가 없는데 어떻게 살아돌아왔느냐는 추궁에 "자신은 거란의 신하가 된 사람이며, 통주성 무장들은 날 죽이려 들었지만 도순검사가 날 방면시켜주며 은밀히 말을 전하라고 했다"라며 강감찬과 소배압의 만남을 접선한다. 이후 상황(강감찬과 소배압의 절령 회동)으로 보아 이들이 합작해서 나름 거란의 철군을 유도하기 위한 공작을 벌이려는 것으로 보인다.

14회에 소배압에게 서경과 통주의 군사 현황을 20만이라 부풀려 설명하면서[7] 이들이 함마갱을 파고 매복을 기다릴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후 소배압이 이미 노전과 합을 맞춰놓은 양규가 서경지역에 함마갱을 파면서 펼친 공성계[8]에 넘어간 척후병의 보고를 듣고 노전의 말이 사실인 것으로 오판하게 된다.[9]

15회에서 결국 그의 내부 교란이 성공하면서 거란군은 귀주 방면으로 철군하게 되고, 이를 하공진에게 알리면서, 하공진은 사신으로 왔으니 거란군과 함께 가야 한다고 전한다. 이후 양규의 계책으로 귀주 협곡에서 거란군의 선봉이 전멸하자, 그의 역정보에 속은 걸 안 소배압은 노발대발하며 바로 노전을 잡아오라고 명하지만, 이미 노전은 도주 중이었고 거란군의 추격을 받다가 양규의 부대에게 구조되며 고려로 완전히 귀환한다. 이후 16회에서 다른 장수들과 함께 흥화진에서 양규와 김숙흥의 시신이 수습되어 온 것을 지켜보며 침통해한다.

2.3. 18회

조원과 함께 서경 판관에 임명되었다. 비록 한동안 거란에 항복하여 거란의 신하가 되긴 했지만, 같이 항복한 이현운과는 달리, 자신의 행동에 끊임없이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고, 거란군의 동태를 양규측에 귀띔하는 등 공을 참작받은 것으로 보인다. 볼일이 있어서 개경에 왔다가 강감찬을 만나 서경의 현황에 대해 말하던 중 탁사정이 조정에 있는 것을 보고 분개한다는 조원의 말에 이를 두고 서북면의 장수들과 군사들이 거란보다 황제를 원망한다는 우려를 밝혔다.

2.4. 24 ~ 25회

24회에서는 불타버렸던 정전이 재건되어 현종이 대소신료과 함께 이궁했을 때 김훈의 뒤에서 모습을 비췄고 25회 에선 강감찬과 함께 말을 타고 이동하다가 최질이 이끄는 반란군을 보고 놀라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장연우의 뒤를 이어 어사대에 부임했다. 최사위에게 박진에 대해 조사하라는 말을 듣자 그들이 김훈, 최질과 가깝게 지낸다는 것을 알린다. 그 후 최사위의 명으로 김훈과 최질을 감시하다가 최질이 문신을 베고 반란을 일으킨 것을 본 후 즉시 정전으로 가서 김훈과 최질이 6위의 군사들을 동원해서 반란을 일으켰음을 현종에게 고한다. 그 후 반란을 제압하기 위해 강감찬과 같이 호부를 받고 김종현과 함께 서북면으로 가서 구원을 요청한다.

2.5. 26 ~ 28회

26회에는 황후의 교서를 받고 회군 하려는 유방에게 이 교서는 믿을 수 없다면서 말리고 27회에는 서경에서 이자림이 가지고 온 현종의 밀지를 받든다.
28회에는 박진과 최질이 현종의 옥새를 빼앗아 작성한 조서를 서경의 신하들과 보고 그걸 보고 떠나는 유방이 자신들까지 떠나면 의심할지도 모른다고 말해 일단 서경에 남는다. 하지만 서경에 남은 군사와 무장마저 최질이 보낸 개경의 군사들에게 진압되자 좌절한다. 최질이 도착한 후 최질을 죽이자는 조원에 이야기에 그것도 힘들겠다고 말하던 와중에 서경으로 잠입한 김씨부인을 만나게 되어 일을 논의한다. 그리고 연회장에서 잡입한 지채문, 도용수와 함께 역도들을 척살한다.[10]

2.6. 29회

현종의 명으로 지채문 등이 최질을 척살하기 위해 움직이자 김종현 양협 등과 함께 재빨리 현종의 곁을 지켜 서고, 이후 최질과 김훈 등이 최후를 맞이하는 것을 담담히 지켜본다. 지채문이 최질을 베자 현종을 협시하던 자리에서 내려왔는데, 그 바람에 박진을 막지는 못했다.[11] 이후 개경으로 달려가 대전에서 노숙하며 기다리던 대신들에게 달려가 거사가 성공했음을 알린다. 이후로는 주로 대전에서 회의하는 모습에서 간간이 잡히는데, 대회전을 치러야 한다는 강감찬의 주장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는 와중에도 별다른 말은 없다.[12] 단, 화면에서 주로 강민첨의 옆쪽에 있는 것으로 비쳐지는데, 강감찬의 주장에 동의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처럼 연출되며, 이후 개경 나성에서 현종을 위시한 신하들과 함께 고려군이 출전하는 것을 지켜본다.

2.7. 30회

당시 벼슬이 어사중승이었기 때문에 관복을 입고 등장했으나, 소배압의 본군이 개경으로 달려온다는 소식[13]을 들은 이후부터는 유방, 지채문(고려 거란 전쟁), 이자림 등과 함께 다시 갑옷을 입고 등장하며, 주로 이 네 명과 함께 움직인다. 교외의 백성들이 청야전술에 참여하도록 하고, 이들을 개경까지 호위하는 일을 돕는다. 매우 짧게 등장한다.

2.8. 31회

소배압이 개경을 염탐하기 위해 보낸 척후병 300을 참지정사 유방 지채문과 함께 막아낸다. 주로 유방과 지채문, 그리고 군사를 다른 곳으로 이끌고 간 이자림의 활약에 묻혀 있지만, 자세히 보면 화면에서 유방의 좌측에서 창을 들고 싸우는 기병으로 출연하며 유방이 적장의 목을 벨 수 있게 적장의 주의를 끈다거나 소소하게 활약한다. 주로 현종을 호위하며 군사적으로 문제가 생기면 유방과 지채문을 돕는 역할로 출연하고 앵글에도 자주 잡히는 편이나, 대사는 거의 없다.

2.9. 32회(최종회)

황보유의에 의해 강감찬이 귀주에서 승리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다른 대신들과 함께 기뻐하며 눈물을 흘린다.

3. 묘사

원작 소설에서는 42세의 나이로 강조와 동갑으로 설정되어 있고, 키가 작고 얼굴이 큰 편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얼굴 빛이 검고 말수가 적은 등 양규와 성향이 비슷하다.[14] 통주 전투에서 긴장을 놓지 않은 채 여러 활약을 하지만[15], 강조의 죽음을 눈 앞에서 보며 공포에 떨어 하지 말야할 항복을 한 후 통주성 앞에 사신으로 가서 침울한 표정으로 패배를 전하여 2차례 항복을 유도하면서도 결국 굴욕과 부끄러움에 자신도 다시 싸울 기회를 달라고 청하는 등 고려에 충성하는 면모를 보인다. 또한 잠시 통주성에 갇힌 뒤에 양규가 풀어준 후 곽주성 탈환에 선봉으로 참여하여 성문의 빗장을 푸는 활약을 한다.[16]드라마에서는 거란에 항복할 때에 다른 장수들보다도 자기 자신에 회의감을 느끼며, 양규가 곽주성을 탈환한 후에 더 이상 거란의 신하로 살기 싫으니 죽여달라고 청하는 노전에게 작전을 세워 일단 노전을 거란군에 돌아가게 한다. 직후 노전은 아직 자신이 고려가 아니라 거란에 충성하는 척하여 거란군이 오판을 하도록 속이는 식으로 묘사되는데, 원작에서 곽주 탈환에 참여하도록 설정한 방식과는 다르나 고려사에서 실제로 노전의 공을 치하한 사실을 토대로 그 역시 항복한 후에도 고려를 위하는 신하로서 활약한다고 볼 수 있다.

4. 어록

벌써 거란의 신하가 다 되셨군요.
도통사의 시신이 아직 다 식지도 않았습니다! 제발 자중하십시오!
도순검사, 저는 여기서 죽여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더는 거란의 신하로 살기 싫습니다! 제발 죽여 주십시오...
예, 맞습니다. 농사 짓다 끌려온 광군들입니다. 하나, 도순검사가 서경에 머물고 있습니다. 흥화진에서 40만의 거란군을 막아냈던 사람이고, 곽주를 탈환한 사람입니다. 군사들의 사기가 매우 높을 겁니다.


[1] 드라마에서 따로 표기되지는 않았지만, 고려사에서는 그의 직책이 본래 '도관원외랑'이었으나 제2차 여요전쟁에서 '행영도통판관'이 되었고, 원작 소설에서는 그가 판관에 도관원외랑을 역임한다고 설명한다. [2] 정확히 무슨 관직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실존 인물 노전이 거란에 의해 통주성에 마수와 함께 항복을 권하러 온 사실을 바탕으로 거란의 관리가 되었다고 각색한 듯하다. 다만 13-15회에 다시 등장했을 때에는 사실상 고려 저항군의 첩자였고, 16회에선 고려군의 갑옷을 입은 모습이 나온 것으로 보아 사실상 다시 고려의 신하로 인정받은 듯하다. [3] 배우 김지영의 동생. [4] 이현운을 제외하고 다른 장수들도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아무래도 자기 살자고 조국을 배반한 게 걸린 듯하다. 그런데 이현운은 이들을 달래고 어르기는커녕 반발감을 키웠다. [5] 다만 고려사 등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노전은 결국 고려로 다시 귀환하는 데다가, 그 뒤로도 멀쩡히 관직을 수행하고, 심지어 후일 충선왕 때는 서희, 하공진, 양규 등과 함께 거란군을 물러나게 한 공신으로 언급이 되기 때문에, 아마 공을 세우고 다시 고려로 귀환할 것으로도 추측해볼 수 있다. [6] 이때 떠나기 전 양규와 눈빛을 마주했는데, 뭔가 꾸미는 것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원작에서는 양규가 그를 풀어주자 운이 나빠서 이 꼴이 되었지만 이미 한 번 죽은 목숨이니 구차하게 살 생각은 없다면서 기회를 준 것만 해도 감사하다고 말한다. [7] 정확히는 만약 통주에서 고려군이 패했을 때를 대비해서 각 장수들은 군사들을 수습해서 서경으로 모이라는 계획이 있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소배압도 통주에 있던 고려군 30만을 모두 죽이지 못해서, 흩어진 고려군이 다시 결집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었다. [8] 노전은 소배압에게 현재 서경에 주둔한 잔류병력이 20만, 통주가 3만명은 된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양규는 함마갱을 파러 나갈 때 성곽에 경비를 세운 병력을 제외한 성내 모든 가용병력을 동원해 보냈다. 상식적으로는 성을 완전히 비우고 외부작업을 시킬 리는 없으므로 마치 성 전체의 병력이 정말로 수십만은 되는 것처럼 블러핑을 한 것이다. [9] 고려군의 사정을 잘 아는 이현운이 살아있었다면 공성계를 간파하거나 적어도 의심할 가능성이 높다. 그가 죽으면서 고려 포로 출신 중 가장 높고 서경의 최신 사정을 아는 사람이 노전뿐인 것이 천운이다. [10] 재미있는 사실은 예전에 삼수채에서 패배 후 노전이 거란에 항복했을 때는 최질에게 얻어맞고 갇히는 신세였는데, 이제는 입장이 거꾸로 되어 최질이 역적이 되고 노전이 이를 진압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11] 박진은 지채문이 벤 후, 확인사살까지 한다. [12] 2차 여요전쟁에서 포로가 되었던 경험이 있어서 말을 아끼는 것으로 보인다. [13] 이렇게 다른 곳을 공격하지 않고 수도로 바로 진격하는 것을 직도 전술이라고 한다. 임진왜란의 일본군과 병자호란에서 청군이 사용하기도 했다. 잘 알다시피 임진왜란은 실패했고, 병자호란은 성공한다. [14] 원작 설정상 거란이 침략을 공표할 당시 연주에 방어사로 있었던 그의 휘하에 7개월간 방어부사으로 일했기에 서로 잘 통하는 사이였다고 하며, 양규에 대해 뜻과 생각이 크고 행동에 과단성이 있어 실전에도 머뭇거림이 없다고 보면서 곽주 탈환 계획 당시 그가 아예 거란군을 섬멸하기로 결심하자 역시 양규답다는 생각을 하여 자신도 분발하기로 한다. [15] 검차진이 거란군과 격전하는 동안 진격하거나 진을 재정렬해야 할 때를 판단하고, 거란군이 고려군을 지치게 하려는 듯하자 역으로 그 의도를 이용하자는 계책도 내며, 강조가 죽은 적군의 갑옷과 병장기를 회수한 후 진을 뒤로 물리자고 주장한 것에 대해 적군이 직접 시신을 수거할 시간을 주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16] 원작에서 곽주 탈환 당시 선봉대를 대기시켜 양규가 선두에서 신호를 주자 다른 인원들과 짐들을 내려놓고 성가퀴 사이를 넘어 성벽에 올라선 후 화살이 날아오는 상황에서 정신용과 함께 방패를 등에 진 채 달려가 창에 찔려가면서 빗장을 모두 풀어내고 뿔나팔을 분다. 다행히 양규가 거란군에 발각될 위험을 무릅쓰고 제때 사다리에 올라타 성벽을 오르며 출발하였고 본인도 탈환이 끝나고 나서 말에 올라 마음이 가벼워진 채 거란군이 회군하면 당도할 완한령 쪽을 보며 작전 회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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