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의 난 莊蹻之亂 Rebellion of ZhuangQia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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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 | 기원전 287년 | |
장소 | 초나라령 강동일대 | |
원인 |
초나라의 지속적인 강동지역 공출[1]로 인한 인민들의 불만 폭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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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세력 | 봉기군 | 초楚 |
지휘관 | 봉기군 수장 장교 |
초 토벌군 사령관 소어 초 원릉군수 굴위 초 연릉군수† |
병력 |
봉기군 본대 7천 강북봉기군 2천6백 총합 9천6백 |
초 토벌군 1만5천 초 원릉주둔군 2천8백 초 연릉주둔군 1천5백 총합 약 1만9천3백 |
피해[2] | 봉기군 약 2천7백 | 초군 약 4천2백 |
결과 | 토벌군 반란 진압 실패 | |
영향 |
초조정과 장교와 협상하여 장교를 강동후로 봉작하고 구 월나라 일대[3]를 봉지로 줌 강동후령 형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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