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6 11:03:52

낙관주의와 비관주의

1. 설명2. 상세
2.1. 설명 양식2.2. 비교2.3. 다른 개념들과의 관계
3. 작품 내에서의 모습4. 관련 문서

1. 설명

"어,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네?"
"어, 컵에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
우리 사회엔 낙관주의와 비관주의가 모두 필요하다. 낙관주의자는 비행기를 만들고, 비관주의자는 낙하산을 만든다.

첫 번째 예시는 낙관주의 염세주의( 비관주의)의 예시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다. 첫 번째 예시의 상황에 대한 사실 판단은 "해당 컵에 물이 반이 차 있다"이고, 저 둘은 그 상황에 대한 각각의 성향이 반영된 가치 판단이다. 이는 자연 환경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적용된다. 아름답고 신나며 경이롭고 조화로운 풍경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안하고 위험할 뿐더러 치열하고 고통스러운 생존 경쟁의 각축장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 식.

두 번째 예시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가져오는가에 대한 얘기다. 하늘을 날 수 없는 인간이 땅 위에서의 삶에만 안주하며 살았으면 비행기는 발명되지 않았을 것이고, 비행기의 결함이나 자연재해로 인하는 추락과 같은 위험한 상황을 생각하지 않았으면 낙하산 등의 안전 장치가 발명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낙관론과 비관론은 쓸데없는 사상이 아니라 인류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사상이다.

낙관주의란 세상과 인생에 대하고 밝게 보는 것 또는 앞으로의 일들이 잘 될 것이라고 믿는 태도이며, 비관주의와 염세주의는 반대로 세상과 인생에 대하고 어둡게 보는 것 또는 앞으로의 일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태도이다.[1] 이들은 합리적인 이유에 근거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일종의 믿음이나 기대에 해당한다.

2. 상세

이러한 기대를 거쳐서 낙관주의자들은 더욱 자신감 있고 집요하지만, 비관주의자들은 이러한 기대가 부족하므로 의심이 많으며 망설이는 경향이 많다. 어느 연구에서는 낙관론자들이 현재와 미래를 비슷한 수준으로 긍정적으로 보는 반면, 비관론자들은 미래를 다소 밝게 전망하되 현재와 과거를 비슷한 수준으로 불행하다고 생각함이 확인되었다.
이반: 지금 세상은 충분히 살 만해. 자연은 아름답고, 사람들은 겉으로는 쌀쌀맞아도 조금 이야기해 보면 본심은 착하고 친절해. 세상은 분명히 여러 방면에서 지난 세기보다 발전했잖아. 나조차도 어제 수프를 끓일 때 빼먹은 당근을 오늘은 잊지 않듯이 어제와 오늘을 다르게 살고 있어. 나도 몸이 건강하고, 나를 믿는 가족과 사랑하는 연인이 있고, 좋은 친구들도 있고, 힌디어를 공부하며 새로운 지식을 알아 가는 기쁨을 느끼고 있어. 괴테의 책을 읽거나 트롬본을 연주하면서 영혼을 풍요롭게 하기도 하지. 앞으로 나한테는 많은 시간이 남아 있고, 무수히 많은 갈 곳, 만날 사람, 읽을 작가, 먹을 음식, 들을 음악, 깨달을 지식과 지혜가 나를 기다리고 있어.
찰리: 요즘 세상은 그렇게 좋지 않아. 강대국들은 냉전 시대에 비해 나아진 것 없이 이권 다툼에만 힘쓰고, 가진 자들은 봉건 시대에 비해 나아진 것 없이 더욱 가지지. 내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계속 올라. 상사는 무능하고, 동기는 간사하고, 후배들은 믿을 수 없어. 별 볼 일 없는 회사에 다니다 보니 가족과 연인 앞에서 얼굴을 들기 부끄러워. 내 친구는 아직 취준 중일 정도로 실업 문제도 심각해. 그래도 내게는 가족과 연인, 친구들이 있고, 나도 비록 무능한 상사 아래에서나마 일하며 배고프거나 춥지 않을 정도의 돈을 벌고 있고 결정적으로 내겐 나의 권리를 부르짖을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정당한 한 표도 있어. 우리 모두의 노력과 표가 모여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거야.
위의 연구에 기반한 이반과 찰리의 예문으로 설명했듯, 낙관론자들에게 현재는 '최고'이고, 이것은 미래에도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비관론자들에게 '최고'란 아직 오지 않은 것[2]이다. 한편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는 미래에 대한 예측이라기보다는 현재에 대한 평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낙관주의/비관주의가 전체적으로 이뤄지기보다 특정 분야나 환경 등에 따라 마구 섞이거나 대조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국가의 현재 경제적 상황에 대해서는 비관주의이면서 미래의 경제 전망과 자신이 하는 일이 잘 될 가능성에는 대해서 낙관주의가 되는 등이 있다. 그래서 일부 부분에서 낙관주의/비관주의를 보인다고 다른 부분에서도 일관적으로 똑같은 경향을 보인다는 보장도 없으며, 또한 어떤 사람을 일관되게 '비관주의자다, 낙관주의자다' 등으로 일반화하는 것도 위험할 수 있다.

2.1. 설명 양식

설명 양식은 다음의 3차원에서 이해된다.
  1. 이 사건은 내가 원인이 되어 발생했는가? 아니면 외부의 무언가가 원인이 되어 발생했는가?
    • 시험을 망쳤다 → 공평하지 못한 시험이었고, 논란이 있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vs 내가 충분히 대비를 하지 못했다

  2. 이 사건은 일시적으로 발생한 것인가? 아니면 항상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인가?
  3. 이 사건은 내 인생에서 제한적인 영향력을 갖는가? 아니면 내 삶의 여러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가?
    • 친한 친구와 소원해졌다 → 단순한 친구관계에서의 충돌일 뿐이다 vs 내 전반적인 대인관계 역량의 부족을 보여주는 사례다

보면 알겠지만 전자는 낙관적 설명양식, 후자는 비관적 설명양식에 속한다. 즉 낙관적인 사람은 좋은 일에 대해서 내 덕분, 항상 있는 일, 내게 중요한 일[3]이라고 생각하지만, 비관적인 사람은 남 덕분, 가끔 있는 일, 시답잖은 일[4]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나쁜 일에 대해서는 설명이 거꾸로 흘러간다. 낙관적인 사람은 남 탓, 다시는 없을 일, 별 것 아닌 일이라고 생각하고 떨쳐내지만, 비관적인 사람은 내 탓, 항상 있는 일, 내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괴로워하게 된다.

이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용어와 관련이 깊다. 회복탄력성은 현재 시련이나 안 좋은 결과를 심리적으로 극복하는 특성이나 능력을 말한다. 한 마디로 '좋은 일'에 실제보다 과장하고 정서적으로 큰 느낌을 갖느냐 '나쁜 일'에 실제보다 과장하고 정서적으로 큰 느낌을 갖느냐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정리한다면 다음의 표와 같다.
  낙관적 설명양식 비관적 설명양식
좋은 사건 1. 내 덕분에 생겼다.
2. 좋은 일은 또 만날 것이다.
3. 내 삶의 모든 면이 좋아졌다.
1. 남 덕분이거나 우연한 일이다.
2. 다시는 없을 행운일 뿐이다.
3. 내 삶에 큰 의미가 없다.
나쁜 사건 1. 내 잘못이 아니다.
2. 이런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3. 내 삶을 위협하지 못한다.
1. 전적으로 나 때문이다.
2. 내게는 항상 있는 일이다.
3. 내 삶의 전부를 무너뜨렸다.
허나 낙관적 설명방식에는 약점이 있는데, 어떤 행동의 결과가 분명히 자신에게 있음에도 그것을 남 때문이거나 환경 탓으로 심리적 정당화를 해서 책임를 회피하거나, ' 좋으면 내 탓, 나쁘면 남 탓'이라는 논리로 이기주의(이기적 편향)로 발전할 수 있다.

2.2. 비교

다른 모든 조건들이 동일하다면, 낙관주의자는 동기의 수준이 더 높고, 역경에 부딪혀도 더 오래 견디고, 더 높은 수준의 성취를 이룬다. 낙관론자들은 힘든 시기가 와도 동기를 잃지 않지만, 비관론자들은 어려움이 닥쳐오면 포기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학습된 무기력도 주로 비관주의에서 많이 나타난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써 낙관하라(Pessimismo dell'intelligenza, ottimismo della volontà).
- 안토니오 그람시
걱정은 미래의 불행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상황에 따라서는 비관론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공무원 시험과 같이 과제의 양이 과중하거나 실패 위험이 높을 때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동기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앞서 예를 든 공무원 시험을 다시 한번 예로 들면, 많은 노력을 하면 합격하거나 점수가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면 노력을 쏟는 데 도움이 되지만 반대로 많은 노력을 해도 분명히 탈락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다른 분야에서 낙관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한[5] 시작조차 힘들어지게 된다. 반면 오로지 긍정적인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부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거부하고 회피하려는 해로운 긍정성(toxic positivity) 역시 경계할 필요가 있다. 부정적인 현실을 무작정 회피하거나 왜곡하는 것이 아닌 명확히 상황을 인지한 후에 부정적인 것들조차 긍정적인 결과에 이르는 과정 혹은 원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낙관주의의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연구자들은 비관론자들이 우울증에 취약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최선을 다하기 위해 사전에 기대 수준을 낮추려고 하는 것인지 구별하기 힘들다고 경고한다. 비관주의의 분명한 결점이라면 그것이 사람을 소극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들은 성취를 위해 소극적인 방략을 동원하며, 목표의 구체성이 부족하고 조언도 덜 구하는 경향이 있다. 성공적인 사람들은 반드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어려움들을 잘 대처하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의미심장한 것이다.

2.3. 다른 개념들과의 관계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는 통제소재(locus of control)와는 비슷해 보이지만 그다지 관계는 없다. 낙관주의나 비관주의는 자신감이나 자괴감을 느끼기 위하는 데에 자신의 운명을 지배할 수 있거나 없다는 믿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반면은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는 설명양식(explanatory style)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약간 다르다. 설명양식은 일종의 귀인(attribution)의 차원, 안정성의 차원, 보편성의 차원에서 무엇을 설명하고자 하는 방법이다. 설명양식에도 낙관적인 것이 있고 비관적인 것이 있는데, 이하에서 이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설명양식과 분리하여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를 설명하면, 오히려 무엇을 설명한다기보다는 삶의 전반적인 측면에 대해서 확신한다는 쪽에 더 가깝다.

3. 작품 내에서의 모습

3.1. 생활과 윤리

과학기술 윤리를 배울 때 나온다.

4. 관련 문서



[1] 불확실한 미래보다 확실한 현재를 선호한다. [2] 현재는 최악으로 치닫는 중이고 이것은 미래에도 지속된다고 하면서 최고는 결코 올 수 없다는 것을 비관주의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허무주의이며 관점에 따라 평가가 갈리는 낙관주의, 비관주의와는 다르게 옳은 태도가 아니다. [3] 즉 1인칭 관점에서 주관적이고 정서적인 느낌을 갖고, 실제보다 과장하여 느끼는 경향 [4] 3인칭 관점에서 '내 자신'을 해당 사건에서 거리를 어느 정도 둔 중립적 객관적인 관점에서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실제보다 축소하여 느끼는 경향 [5] 예시: '공무원 시험에 나는 적성이 맞지 않아서 노력을 해도 분명히 탈락할 거야.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내 요리를 칭찬하고 나도 손재주에는 일가견이 있으니 호텔 요리사에 도전해 봐야겠어. 이건 분명히 잘 될 거야.' [6] 이상적 낙관주의를 지향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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