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15:24:21

나카야마 마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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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술 클라로 누마즈 감독
나카야마 마사시
中山 雅史 / Masashi Nakayama
<colbgcolor=#0f58a8><colcolor=#ffffff> 출생 1967년 9월 23일 ([age(1967-09-23)]세)
시즈오카현 후지에다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신체 179cm
포지션 공격수
학력 시즈오카 현립 후지에다 동고등학교 (1983~1985)
쓰쿠바대학 (1986~1989)
소속 <colbgcolor=#0f58a8><colcolor=#ffffff> 선수 주빌로 이와타 (1990~2009)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 (2010~2012)
아술 클라로 누마즈 (2015~2020)
지도자 주빌로 이와타 (2021~2022/ 수석 코치)
아술 클라로 누마즈 (2023~ / 감독)
국가대표 53경기 21골 ( 일본 / 1990~2003)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지도자 경력4. 기록
4.1. 대회 기록4.2. 개인 수상
5. 기타

[clearfix]

1. 개요

일본의 전 축구 선수. 일본인 최초 FIFA 월드컵 득점자이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1990년 주빌로 이와타의 전신인 야마하 발동기 축구단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1998년에 27경기 36골로 J리그 MVP와 득점왕을 차지했다.[1] 그리고 2000년에도 29경기 20골로 득점왕을 차지했다. J리그에서 1998년 4월 15일~ 1998년 4월 29일까지 4경기 연속 해트트릭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원래 수비수였던 선수로 쓰쿠바대학 시절 초년에는 이하라 마사미와 센터백 콤비를 짰다가 대학 재학 중에 포지션을 변경했다. 그 때문인지 일본의 주전급 스트라이커 치고는[2] 상당히 투박한 플레이를 하던 선수였다. 그 대신 박스에서 쉴새없이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플레이가 주력이었으며 또한 수세시에는 하프라인 밑으로도 내려와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편이었다.

2015년부터 아술클라로 누마즈(당시 JFL 소속)와 선수 계약을 맺었고, 2017년에 누마즈가 J3리그로 승격되었으나, 동년배 미우라 카즈요시와는 달리 누마즈 소속으로 정식 경기에 출전하지는 않았다. 단 2019년에는 팀의 U-18팀 코치를 겸임하고 있으며 이 경력을 인정받아 2020년에는 JFA S급 지도자 자격을 취득했다.[3] 현역 J리거로는 최초라고.

2.2. 국가대표 경력

1988년 AFC 아시안컵에 처음으로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활약하였다. 그리고,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도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예선에 도전하였으나, 그 유명한 마지막 이라크전에서 통한의 실점으로 인해 2-2 무승부로 경기 종료되는 바람에 도하의 기적으로 대한민국에 밀려서 경기 종료 1분을 남기고 극적으로 본선진출이 좌절되었다.

심지어 나카야마는 그 이라크전에서 자파르의 동점골을 목격한 뒤 그대로 머리를 감싸고 바닥에 쓰러져버렸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이 때 나카야마 마사시가 벤치에서 미우라 카즈요시가 이라크 선수의 역동작에 걸리면서 크로스를 허용했을 때, "カズさん! カズさん! ああ!! もう!!" (카즈씨! 카즈씨! 아!! 진짜!!!) 라면서 왜 크로스를 허용해서 골을 내줬냐고 원망하는 목소리를 냈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 잔인한 경기에서 MOM으로 나카야마 마사시가 선정되었으나 당연히 전혀 기뻐하지 못하고 얼굴을 아예 못 드는지라 MOM으로 잘했다고 칭찬을 듣는 것이 벌칙게임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이후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 출전하였다. 1998년 월드컵에서는 자메이카를 상대로 득점하였는데, 이것이 일본의 월드컵 첫 번째 골이었다. 2000년 AFC 아시안컵 예선 경기인 브루나이전에서는 킥오프 3분 15초만에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1998년 3월 1일 요코하마 국제종합 경기장에서 열린 다이너스컵 한국과의 개막전 당시 전반 18분 나나미 히로시의 코너킥을 곧바로 헤딩으로 연결시켜 선취골을 기록했다. 전반 22분 이상윤이 동점골을 기록했으나 후반 43분 나나미의 왼발 크로스를 조 쇼지가 골로 연결시키면서 결국 1-2로 패배했다.

3. 지도자 경력

2020년을 마지막으로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이후 주빌로 이와타 코치로 부임하며 바로 지도자가 되었다.

2023년에는 J3리그 아술 클라로 누마즈의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 J1리그 MVP: 1998
  • J1리그 득점왕: 1998, 2000
  • J1리그 베스트 XI: 1997, 1998, 2000, 2002
  • JFA 올해의 축구선수: 1998
  • AFC 이달의 선수: 1998.4
  • AFC 올스타 팀: 1999
  • J리그 20주년 베스트 XI: 2013

5. 기타

  • 상기한 해트트릭 관련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국가대표로서 브루나이 전 해트트릭은 축구 국제경기 최단시간 해트트릭으로 지금도 유효하다. 1998년 J리그의 4경기 해트트릭 기록 또한 최다 연속 해트트릭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 기네스북 사이트에 기재되어 있지는 않다.[5]
  • 앞서 언급했듯이 도하의 비극을 그라운드에서 목격하고 머리까지 싸매며 주저앉았을 정도로 격분했었는데, 정작 4년 후 1998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때는 엔트리에 오르지 못하고 TBS 테레비의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도쿄 대첩 현장을 보게 되는 운명의 장난을 맞이했다. 경기 종료 직후 캐스터가 애써 밝은 표정과 말투로 멘트를 날리는 옆에서 분노를 억누르는 듯한 표정을 지었으며, 차범근 당시 한국 감독이 인터뷰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는 대놓고 분노를 곱씹는 듯한 표정을 보여줬다.
  • 아내는 여배우로 활동하는 이쿠타 토모코(生田 智子).


[1] 2020년 기준, J1리그 단일 시즌 역대 최다 득점 기록. [2] 특히 나카야마가 주력으로 활약했던 1990년대에는 미우라 가즈요시의 영향으로 현란한 페인팅을 끼고 드리블 돌파를 못하는 선수는 공격수 취급도 안하다시피 하던 시대이다. [3] AFC P급에 해당한다. 일본을 포함해 아시아에서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출전이 가능한 수준의 프로리그에서 감독이 되려면 필요한 등급이다. [4] AFC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 [5] 기록 자체는 2016년 크로아티아 지역리그(6부급)에서 5경기 연속 해트트릭이 나왔을 때 함께 언급된 만큼 세계적으로 지명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