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11-28 07:55:47

김현민(시인)



농민신문 1999년도 제3회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
마늘을 까면서(김현민)
겨울을 잘 넘겼는지
올해 시집살이 참을성이 있었나 속이야기 좀 들어보자
세상 바닥같은 신문지 펴서 불러 모은 때묻은 집합체
허물벗기는 작업이 시작된다. 하나둘 신체검사를 하듯
숨긴 몸들을 두루두루 만져 본다
쌀쌀한 손의 감촉은 벌써 탄력을 잃었다
체질도 변했는지 맛조차 톡 쏘는 것을 모른다
겨울 내내 우울히 드러누웠는지 슬그머니 부스스한 얼굴을 내민다
잘 들지 않는 칼로 먼저 머리채부터 잘라주마
빗지도 않아 엉킨 파마끼 남은 곱슬머리가 툭 떨어진다
봄에는 산뜻하게 긴머리 짧게 커트해야 기분이 좋지
꼭 다문 입을 성급히 벌려보니 사이사이 썩은 이가 보인다
하기야 이제 이빨도 자주 아릴 나이겠네
다행히도 성한 것이 더 많은 사랑스러움이 꼭
가짜 다이아몬드 같다면 또는 덜 익은 석류알처럼 보여
아직 쓸만한 모양새 남아 있구나
지저분한 얼굴을 깔끔히 씻으면 윤기 없는 허깨비 탈을 벗으면
아직 나름대로 독특한 냄새 손끝에 묻어난다기에
모두 싫어하지만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일찍 부름받은 일꾼이었다
닦고 씻는 재주밖에 없는 어미의 불규칙한 갱년기의 표정들
그래 겨울나기가 힘들었다 말하지 마라
언제나 귀한 양념의 자리란다
전무가도 젊어지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소외된 쭉정이처럼 날아가지 말아야지
쭉정이는 부피만 많고 근사해 보인다
이렇게 한 겨울을 지나면서
빈 껍질 안에 갇혀서 먼지 안에 들어서
가지 못한 곳이 많다 해도
하지 못한 것이 많았다고 해서 잘못 산 것은 아니다
몇 개의 희망이라도 건질 수 있는 때
껍데기 속의 즐거움이 젊은 너희를 다스린다
좋은 씨종자를 남기는 희생으로
그렇게 봄을 맞는 자도 많지 않을 것이다

1. 심사평

예선을 거쳐 심사위원에게 넘어온 작품은 <20세기 허수아비><우물><깻돌노래><뜨묵골 이야기><예당평야에서><마늘을 까면서> 등 6편이었다. <21세기 허수아비>는 관념과 유행적 시어 등 기성시인에게서 볼 수 있는 타성을 배제하지 못한 흠이 지적되었다. <우물><깻돌노래><뜨묵골 이야기> 등은 체험의 육화를 이루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예당평야에서>와 <마늘을 까면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으나 <예당평야에서>는 작품이 고르지 못하다는 지적으로 결국 <마늘을 까면서>를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당선작 <마을을 까면서>는 그 발상과 시형에 있어 참신함과 선명함은 물론 그 수준이 고르고 시인으로서의 새로운 화법과 관찰력이 돋보인다.
▶문덕수<시인>·함동선<시인>

현재 보험개발원 재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