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5 20:17:03

와키타 나오카타

김여철에서 넘어옴
1. 개요2. 출신3. 관련 매체

1. 개요

와키타 나오카타(脇田直賢, 1585-1660)는 일본 사무라이이자 키리시탄이었다.

마에다 토시이에의 장남 마에다 토시나가의 가신으로 활약했으며 오사카 전투에서 용맹을 과시하고 행정 능력이 매우 뛰어나 마에다 가문의 큰 신임을 받았다. 어찌나 신임이 두터웠는지 마에다 가문에서는 와키타 나오카타를 사망하기 1년 전인 1659년이 되어서야 겨우 은퇴를 허용했을 정도였다. 오사카 전투의 군공으로 고쿠다카 1500석을 받았다.

2. 출신

사실 그의 정체는 조선인이다.[1] 본명은 김여철(金如鉄)로 본관은 광산 김씨, 아버지는 과거에 급제했으나 임진왜란으로 인해 전사한 김시성이었다. 한양에서 살다가 왜군의 공격을 받고 가족과 생이별을 했다. 이때 일본의 다이묘 우키타 히데이에가 주워서 임진왜란이 종결될 시기에 일본으로 데려갔다. 히데이에의 정실 고히메가 기르다가 마에다 토시이에의 아들 마에다 토시나가의 정실 에이히메가 마음에 들어해 마에다 부부의 손에서 자라 마에다 가문의 가신이 되었고 에이히메의 주선으로 와키타 가문의 양자로 들어가게 되었다.

마에다 가문은 친 도요토미 파였음에도 생존하는 것에 성공했을뿐 더러 카가 번 약 100만 석의 번주로 도쿠가와 막부 다이묘 중 유일하게 100만 석을 넘긴 다이묘로 특혜를 받고 대정봉환 이후에도 살아남았던 가문인 만큼 그 가신인 와키타 나오카타 역시 오사카 전투 후에는 꽤 유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비극 속에서 살아오면서 조선인이라는 자신의 원래 정체성과 일본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 사이에서의 갈등을 극복한 한 인물의 삶이었다. 타카야마 우콘의 영향을 받아 키리시탄이기도 했다고 한다.

양반 집안의 자손이라 그런지 렌가나 정원 조성 등의 문화 생활에 능했다.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에 있는 현지정 명승인 교쿠센엔은 그가 아들과 함께 조성하기 시작해 4대에 걸쳐 완성한 정원으로 조선에서 소나무 잣나무 종자를 직접 가져다 심기도 했는데 오늘날에는 굉장한 거목이 되었다. 여담으로 교쿠센엔의 수원지는 바로 옆에 위치한 일본 삼대 정원 중 하나인 겐로쿠엔에서 끌어왔는데 이 겐로쿠엔 역시 와키타 나오카타의 주군인 마에다 토시이에가 만들기 시작해 200년에 걸쳐 완성한 정원이다. 와키타 가문의 정원과 마에다 가문의 정원이 위치는 물론 수원까지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주가에 큰 신뢰와 총애를 받았다는 또다른 증거이기도 하다.[2]

본인의 저서 여철가전기(如鉄家伝記)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조선국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씨이고 자는 시성으로 한림학사였다. 어머니 성함은 잊었다. 이름은 여철이라 하였다. 나라의 풍습에 따라 어려서부터 문장을 배웠기 때문에 이를 기록할 수 있다. 분로쿠 원년, 임진년. 관백 히데요시 공이 조선을 습격하기 위해 히젠 나고야까지 출진하였다. 츄코쿠, 시코쿠의 다이묘들을 인솔하여 비젠 츄나곤 히데이에 경이 대소군과 같이 부산포로 도해하였다. 조선에도 요새를 구축하고 곳곳에서 방비하였지만, 수백 년 간 싸움에 익숙지 않았기 때문에 곳곳에서 패하고, 서울도 내주고 도망갔다. 그때 시성 부자가 전사하였다. 내가 일곱 살 때의 일이다. 히데이에 경의 포로가 되었다.

3. 관련 매체

  • "사무라이 로망스"라는 유투브 채널[3]에서 소개한 와키타 나오카타에 대한 정보 #
  • 민족을 넘은 삶 - 김여철 / 와키타 나오카타 : 한일 역사의 비밀의 문을 열다 (최관 지음)

[1] 김충선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2] 다만 현재 쿄쿠센엔은 와키타 가문의 소유가 아닌데 메이지 유신 시기에 후손이 자산을 정리하며 니시다 가문에 매각했기 때문이다. [3] 다만 이 유투버는 한일 갈등이 있을 경우 일본의 편을 들거나 일본 입장으로 기울어진 영상을 종종 내놓으니 시청 시 유의 바람. 일례로 731 부대 이시이 시로에 대한 건에서도 "국제관계가 힘의 논리에 의해 벌어지니 더 이상 일본에게 토를 달지 말라"고 하는 영상도 제작했다. 아무튼 중간중간 논란이 될 영상도 있으니 걸러가며 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