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1-15 16:31:17

김명호(1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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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명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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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6월 17일 경기도 남양도호부 장안면 삼동(현재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에서 출생했다. 1919년 4월 3일 경기도 수원군 장안면과 우정면 일대에서 차희식, 차병혁, 차병한, 장제덕, 장소진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여 2천여 군중의 선두에 서서 장안면 사무소로 행진해 면사무소를 파괴하고, 인근의 쌍봉산으로 올라가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이후 군중과 함께 우정면 사무소로 가서 서류를 끄집어내 불태우고, 투석으로 건물을 파괴했다. 오후 5시경 군중과 함께 몽둥이를 가지고 화수리 경찰 주재소를 습격하여, 경찰과 투석전을 벌여 일본인 순사 카와바타 토요타로우를 죽이는 데 한 몫 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20년 12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소요, 살인, 방화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51년 4월 18일 화성군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김명호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8년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출처: 독립유공자공훈록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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