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2 08:53:53

구스타프 프레드리크 폰 로젠



파일:Gustaf_Fredrik_von_Rosen.jpg

1. 개요2. 일생
2.1. 7년 전쟁 이전 경력2.2. 7년 전쟁2.3. 말년

1. 개요

스웨덴의 군인. 7년 전쟁 시기 포메른에서 프로이센군과 맞섰다.

2. 일생

2.1. 7년 전쟁 이전 경력

로젠은 1688년 8월 6일 레발(현재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서 태어났다. 1705년 폴란드의 스텐보크 연대에서 용기병 부대 소속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으며, 1706년 그로드노 전투 이후 기수로 임명되었고 노라 코렌스카 기병대에서 중위로 진급했다. 1709년 로젠은 칼 12세와 동행하여 7월 8일 폴타바 전투에서 참전했다. 이후 그는 살아남은 몇 안되는 스웨덴군을 따라 오스만 제국까지 내려갔고, 이후 오스만 궁정에서 억류 생활을 하면서 칼 12세의 총애를 받았다.

1711년, 로젠은 기병대 대위로 승진했고 칼 12세의 보좌관으로 발탁되었다. 이후 1714년 칼 12세와 함께 스웨덴으로 돌아갔는데, 그 과정에서 포메른에서 프로이센군에게 포위된 스트랄순트에 머무르며 척탄병 부대를 이끌고 적과 맞서 싸우려 드는 칼 12세 때문에 많은 고생을 겪었다. 그는 여러 장교들과 함께 국왕을 설득해 간신히 스트랄순트 요새에서 나오게 한 후 작은 배를 타고 발트 해안을 따라 스코른 남쪽 해안의 이스타드 마을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 덴마크군 대포 12문이 뤼겐 섬에서 배를 향해 발사되어 칼 12세 옆에 있던 두 사람이 죽고 주요 마스트가 떨어졌다. 칼 12세와 로젠 등 남은 동료들은 스웨덴 해안 멀리서 순찰 중이던 스웨덴 배 두척에 의해 구조되어 마침내 스웨덴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1717년, 로젠은 카를크로나 항구에 배치된 포병 자원병 연대의 대령이 되었다. 그후 1718년 12월 11일 칼 12세의 원정에 동행하여 노르웨이의 프레드릭스할 요새 포위전에 참가했다. 그러나 칼 12세는 포위전 도중 전방 참호에서 요새를 살펴보다가 머리에 총탄을 맞고 즉사했다. 칼 12세가 허망하게 죽어버리자 사기가 꺽인 스웨덴군은 로젠의 인솔하에 스웨덴으로 복귀했다. 그 후 로젠은 1719년 달스 연대의 대령이 되었고, 1722년에는 보병대 소장이 되었다. 1731년, 로젠은 남작의 칭호를 받았고 1738년 스웨덴에서 정권을 잡은 하타르당에 가입했으며 1739년에는 국왕 평의회의 회원이 되었다.

1741년, 로젠은 대북방전쟁에서 패해 러시아에게 발트해의 패권을 넘겨준 것에 복수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데 적극적으로 찬성을 표했다. 이리하여 벌어진 러시아-스웨덴 전쟁은 1743년까지 진행되면서 스웨덴에게 재앙과도 같은 결과를 안겼다. 스웨덴은 1743년 전쟁 중에 빼앗긴 핀란드를 돌려받긴 했지만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고 상당수의 영토를 러시아에게 넘겨줘야 했다. 하지만 로젠은 이러한 재앙을 야기한 장본인이었음에도 1747년 핀란드의 장군으로 임명되었다가 1751년에 철회되었다. 이후 1751년, 스웨덴 국왕 아돌프 프레드리크의 즉위식에 참석한 로젠은 백작이 되었다. 그는 내각의 일원으로서 스웨덴군을 정비하는 임무를 맡았다.

2.2. 7년 전쟁

1757년 12월 20일 마티아스 알렉산다르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 원수가 포메른의 스웨덴군 지휘관 직을 사임한 뒤, 로젠이 그의 뒤를 이어 지휘관으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1758년 포메른에서의 스웨덴군의 공세는 악몽으로 시작되었다. 1758년 초 겨울이 워낙 추웠기 때문에 뤼겐 섬과 서 포메른을 가르는 해협에 두꺼운 얼음이 형성되면서 스웨덴군이 이 섬을 점령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이 때문에 스웨덴군은 프로이센군의 통행을 막기 위해 이 얼음을 부숴야 했다. 이후 프로이센군이 스트랄순트를 육지 쪽에서 포위하자, 로젠은 6월 18일까지 스트랄순트에서 방어에 전념할 뿐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6월 18일 러시아군이 동프로이센을 침공하자, 스트랄순트를 포위하고 있던 프로이센군은 본국으로 소환되었다. 이로서 간신히 숨통이 트인 로젠이었지만, 당시 그는 중병에 걸려 스웨덴 야전군을 지휘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7월 22일에 스트랄순트를 떠났고 구스타브 다비드 하밀톤 중장이 그를 대신해 포메른 방면 스웨덴군 지휘관으로 발탁되었다.

2.3. 말년

이후 로젠은 하타르당의 일원으로서 스웨덴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1765년 하타르당이 실권하자 정계를 은퇴했다. 그러다가 1769년 하타르당이 다시 집권한 뒤 그에게 정계 복귀를 권유했지만, 로젠은 고령을 이유로 사양했다. 이후 1769년 6월 17일 로젠은 스톡홀름에서 사망했다. 향년 81세.